[크리스천이 보는 성혁명사 96] 주디스 버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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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

20세기 성혁명은 급진 페미니즘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저명한 학자들이 많지만, 지면상 대표적인 주디스 버틀러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는 동구 유태인 가정 출신으로, 미국 철학자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젠더 및 퀴어이론가이며, 그 자신이 동성애자(레스비언)이다. 버틀러의 이론은 전통적 기독교적 성 규범을 해체하려는 대담한 시도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그녀(버틀러는 자신의 인칭 대명사로 she 대신 they로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의 이론은, 단순하게 말한다면,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즉 LGBTQ)가 “사회적 구성”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성애와 시스젠더처럼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버틀러의 이론의 근거는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 철학 이론과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는 이론이다. 이를 요약한다면, 통상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이나 역할이라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 사람들 사이에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 담론(discourse)이 되고, 결국 사회적 진리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담론이란 어떤 주제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 또는 말로 이루어지는 대화나 발표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디어에 반복 등장하는 말들(담론)에 주의하여야 한다.

버틀러는, 해체주의 철학자 작크 데리다의 citationality(인용하기) 또는 re-iteration(되풀이 말하기)의 개념을 자신의 이론 전개에 적용하였다. 그녀가 주로 “인용”하는 학자들에는 데리다 이외에도 언어학자 존 오스틴,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 전 칼럼에서 소개한 미셸 푸코, 등이 있다. 또한 헤겔, 시몬 드 보부아르, 사르트르,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 등이 있다. 인용하는 학자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모두 “천재적”인 데다 분야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이해하기 전에는 버틀러의 저술들을 읽어 내기 몹시 난해하다. 그래서 비판하기도 어렵다.

어쨌든 버틀러가 주장하는 바는, 젠더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이 반복 수행하는 또는 반복 말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드랙(drag)이 있다. 드랙은 파티, 무대, 예술활동 등에서 남장여성 또는 여장남성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드랙처럼 반대 성의 역할을 반복 표현하면, 다른 사람이 그의 반대되는 성(젠더) 정체성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모든 드랙이나 이성복장자들이 트랜스젠더인 것은 아니다.

버틀러는 젠더란 자주 반복되어서 우리가 믿게 된 일종 픽션일 뿐이라 주장한다. 심지어 버틀러는 생물학적인 성도 언어에 의해 사회구성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언어로 귀에 들려온 것을 믿기 때문에 존재할 뿐이라 주장하였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문화에 따라 성(sex), 젠더 및 섹슈얼리티 등은 절대적이 아니다. 다양하고 “유연”(flexible)한 것이고 자유스럽다. 즉 세상에 단지 이분법적인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젠더(시스젠더,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등)와 다양한 섹슈얼리티들(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무성애 등)이 존재한다. 버틀러는 이 모두를 정상적인 것으로 주장한다. 여기서 버틀러의 퀴어이론(queer theory)이 나오는 것이다.

버틀러는 “여성해방” 내지 남녀평등에서 더 나아가, 전통적 양성 시스템 자체를 해체(deconstruct)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남자’ 그리고 ‘여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남성적인 혹은 여성스러운 행동이 있을 뿐인데, 그런 행동은 어느 때고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버틀러의 주장은 일차적으로 그 자신의 급진 페미니즘을 옹호하려는 것이다. 그녀는 전통적 남녀 구별의 질서에 문제(트러블)를 일으키자 하였다. 즉 여성이라는 고정적인 젠더가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이 억압을 당해 왔다고 본다. 남자와 여자라는 양성 성별 시스템 자체를 감옥 내지 자유의 제한으로 여긴다. 오직 “강제적인 이성애적 정상성”이 있어, 다른 형태의 ‘욕망’(즉 LGBTQ 같은 행동들)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강제적인 이성애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수행이론을 적용하되, 반대로 반복 수행하거나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젠더의 경우 “de-gendering”(탈젠더) 하거나 젠더를 “undoing”(취소)하는 것이다. 버틀러의 관점에서는 성정체성은 유동적이고 언제든 변화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 언어적 의미를 해체하고, 대신에 그 반대되는 새로운 counternarratives(대항 서사, 대항 담론)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버틀러는 여성은 주체가 되어야지 객체가 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만들어진 섹스”에 대한 비판 없이는 페미니즘 운동은 실패할 것이라는 것이다.

버틀러는 남녀양성과 이성애 체제는 애초에 성적 금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특히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 그래서 그런 금기들을 “해체”하자고 주장하는 바, 그 자연스런 귀결은 근친상간이나 소아성애도 정당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버틀러의 주장은 빌헬름 라이히, 마르쿠제, 미셀 푸코, 주디스 버틀러 등등 성혁명 사상가들과 유사하다. 즉 그들은 거의 하나같이 전통적으로 성도착이라고 부르던 행위들을 정상화하려 한다.

이와 같은 젠더 이론에 인권 이론과 자기결정권 이론이 결합하면 혁명적인 정치이데올로기적 주장이 나오게 된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 이런 성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구성적 젠더이론의 결정적 약점은 그 이론에 과학적 내지 의생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물학적 섹스, 즉 남녀양성과 이성애 체제가 자연이며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다. 즉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억압을 없애기 위해 양성체계를 해체하자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그럴듯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 양성체제의 생물학이나 역사적 과정을 고려하는 것 같지 않다. 즉 궤변 같으며 자폐증적이다. 그러나 타고난 신체적 성에 대한, 또는 자신의 신체상(body image)에 대한 불만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성혁명적 젠더 이론은 복음이 된다.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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