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를 만든 신앙의 선배 열한 분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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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설교] 감사와 사랑과 존경의 이야기

장소: 개포동 사랑의빛 교회
일시: 2023년 4월 2일
본문: 히 12:1-2

▲김명혁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김명혁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저는 태어날 때부터 한평생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이고 게으르고 나태한 온갖 죄와 허물로 가득한 죄인 중의 죄인으로 살아왔는데 하나님께서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셔서 평생토록 하나님께서 쓰시는 심부름꾼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심부름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된 것이지만 또한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의 사랑과 기도와 가르침으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를 만드신 신앙의 선배님들 11분을 기리며’라는 제목으로 부족한 저에게 귀중한 신앙의 유산들을 물려주신 신앙의 선배님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의 이야기들을 하려고 합니다.

1.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
주일 성수와 새벽 기도와 순교 신앙

첫째로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는 목회의 길과 핍박과 고난과 순교의 길로 걸어가시면서 부족한 저에게 주일 성수와 새벽 기도와 순교 신앙을 물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께서는 처음에는 북한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9년 동안 목회하시고 그 다음에는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2년 동안 목회를 하셨는데 일본 시대에는 신의주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한다고 자주 감옥에 잡혀 가시는 고난을 당하셨고 공산 시대에는 평양에서 공산 정치를 반대한다고 자주 감옥에 잡혀 가시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저는 죽도록 충성하는 목회의 길과 핍박과 고난과 순교의 길로 걸어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주일 성수와 새벽 기도와 함께 핍박과 고난과 순교의 신앙을 조금씩 조금씩 몸에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저 남쪽으로 갈래요” 라고 말씀 드렸을 때 “그러면 가”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2. 어머니 유춘택 사모님
희생적인 사랑을 쏟아 부어주심

둘째로 저의 어머니 유춘택 사모님은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셨는데 저 없이는 못산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동생 하나는 10리쯤 멀리, 다른 동생 하나는 50리쯤 멀리, 그리고 다른 동생 하나는 100리쯤 멀리 두고 살지라도 어머니는 저를 언제나 곁에 두고 살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좀 심한 장난꾸러기였는데 자에게 야단을 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를 칭찬만 하시면서 “나는 너 없이는 못살아, 나는 너 없이는 못살아” 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저 남쪽으로 갈래요” 라고 말씀 드렸을 때 울면서 “그러면 가”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에게 희생적인 사랑을 쏟아 부어주신 어머니가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한 분이셨습니다.

사실 저는 어머니와 슬픔의 이별을 한지 17년 후에 미국에 가서 유학을 하던 중 어머니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냈는데 어머니가 받아보시고 다음과 같은 귀중한 답장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내 아들 명혁에게 9월 5일에 네의 편지와 동시에 외로히 자라 성인이 된 내 아들 명혁이에 얼굴 더구나 훌륭하게 된 내 아들을 나는 보고 십고나…. 부디 건강하기를 축원하면서 9월 29일 어머니 글”

3. 이인복·명선성·최병목 평양 서문밖교회 주일학교 선생님
주일 성수와 새벽 기도와 순교 신앙

셋째로 제가 평양에 있을 때 평양 서문밖교회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로부터도 주일 성수와 새벽 기도와 순교 신앙을 분명하게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은 저에게 주일 성수와 새벽 기도와 순교 신앙이 가장 귀중한 신앙이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저는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주일을 하루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성수했고 새벽 기도도 빠지지 않으며 참석했고 순교 신앙을 가장 귀중한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 평양 제5인민학교에 2년 동안 다녔는데 일요일에 학교에 오지 않는다고 2년 동안 월요일마다 벌을 서고 정학을 당하곤 했는데 저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은 저보다 나중에 모두 월남해서 목회사역을 하셨는데 저는 남한에서도 계속해서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4. 이성봉 목사님
회개와 기도와 은혜 사모와 성결과 청빈과 재림 신앙의 영성

넷째로 제가 11살 때인 1948년 8월 주일 성수의 신앙을 지니고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서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 서울에 와서 이모님 집에서 이별의 슬픔과 함께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감사를 지니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년 후인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서 대구로 피난을 가서 3년 동안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교회의 무디 라고 불리시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12번 참석하면서 너무나 큰 은혜와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정성껏 들었고 금요일에는 철야기도를 했고 토요일 새벽에는 이성봉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12번 받곤 했는데 “너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시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묻지도 않으시고 “너 기도 제목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거지” 라고 하시면서 기도를 해 주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기도와 은혜 사모와 성결과 청빈과 재림 신앙의 영성을 조금씩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5. 김치선 목사님
눈물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기도와 전도와 헌신의 영성

다섯째로 제가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 서울 창동교회에 다니면서 ‘한국교회의 예레미야’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눈물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기도와 전도와 헌신의 영성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새벽 기도회 때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사” 찬송을 부르시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시곤 하셨는데 저는 새벽기도 후에 남산으로 올라가서 30 여분 동안 더 기도하고 내려오곤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산 기도회에는 삼각산 관악산은 물론 대구 주암산까지 가곤 했습니다. 대구 주암산 기도회 때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고 울고 또 울고 또 운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새벽기도회 때마다 2만 8천여 동내에 우물을 파게 대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시던 김치선 목사님의 기도와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 저는 고 3 때와 대 1때 토요일과 주일에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찬송을 부르고 전도를 하면서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불러모으고 천막 교회를 세우고 목회 사역을 한 일도 있었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린이들 60 여명과 어른들 40 여명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6. 손양원 목사님
순수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희생적 사랑의 섬김과 순교 신앙의 영성

여섯째로 저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순수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함께 희생적인 사랑의 섬김과 순교 신앙의 영성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고등학교 2학년 학생일 때 여름 어느 날 남대문 네 거리에 있는 기독교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사서 들고 제가 새벽기도 후에 날마다 올라가서 기도하곤 하던 남산 어느 숲 속으로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랑의 원자탄」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나병에 걸려있는 아이들과 함께 산으로 소풍을 갔는데 점심을 먹는 시간에 아이들이 자기들을 너무 많이 사랑하시는 손양원 목사님께서 나병에 걸릴 까봐 자기들끼리 따로 앉아서 점심을 먹는데 손양원 목사님께서 아이들에게 가까이 와서 아이들의 점심을 빼앗아 먹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생각하면서 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고 그리고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양 아들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생각하면서 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제가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고 닮고 싶은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7. 한경직 목사님
회개와 기도와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섬김과 가난과 고난과 화해와 평화의 영성

일곱째로 저는 1살 때부터 평생 한경직 목사님의 친밀한 사랑과 가르침을 받으면서 살았는데 한경직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기도와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섬김과 가난과 고난과 화해와 평화의 영성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시면서부터 월남 후 영락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동안에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사람들을 정성껏 사랑으로 돌아 보시는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린원, 모자원, 경로원, 노인요양소, 농아원, 장애아원, 어린이집, 재가노인복지 상담소등을 세우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기독교의 노벨상 이라고 하는 템플턴 상을 받은 즉시 상금의 전부를 북한 동포들 돕기에 사용하도록 기증하시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 남한산성의 아주 작은 집에서 26년 동안 불편하게 사셨는데 3무 4무 5무의 가난과 고난과 청빈의 삶을 사셨습니다. 제가 남한산성을 제일 많이 찾아가곤 했는데 한경직 목사님을 마지막까지 돌아보시던 백운경 장로님이 “한 목사님이 김 목사님이 오면 제일 좋아하지요” 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8. 조동진 목사님
목회와 선교 사역에 헌신할 수 있는 계기

여덟째로 저는 조동진 목사님으로부터 목회와 선교 사역에 헌신할 수 있는 계기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11년 동안 하고 있을 때 뉴욕을 방문하신 조동진 목사님께서 저를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조동진 목사님께서는 제가 유학을 마친 후 후암교회에 교육 목사로 오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풀러신학교 선교신학원에 가서 선교학을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본래 남의 말을 잘 듣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조동진 목사님의 권면으로 1974년 1월 풀러신학교 선교신학원에 가서 리써치 어쏘우시에이트로 8개월을 지내며 선교학 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평생토록 연구한 역사 신학이 선교 신학으로 이어지고 보충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역사 신학과 목회 사역을 선교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후암교회에서 5년 동안 교육 목회를 하면서 목회 사역의 귀중성을 체험하게 되었고, 조동진 목사님과 국내외의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선교 사역의 귀중성을 체험하게 되었고, 총신과 합신에서 역사 신학과 함께 선교 신학 강의를 하면서 역사 신학과 선교 신학의 귀중성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9. 정진경 목사님
온유와 겸손과 포용과 협력과 따뜻함과 격려와 칭찬의 영성

아홉째로 저는 정진경 목사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과 포용과 협력과 따뜻함과 격려와 칭찬의 영성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진경 목사님께서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를 누구보다도 너무너무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거의 모든 선교 운동과 연합 운동을 정진경 목사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진경 목사님과 한국복음주의협의회와 아시아복음주의협의회와 소련선교회 등의 일로 아시아와 세계 곳곳을 수 없이 많이 함께 다녔는데, 정진경 목사님은 함께 다니기에 너무 편한 분이었고 소박하시고 따뜻하시고 친절하신 분이었습니다.

백두산을 비롯한 중국 일본 러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홍콩 등 세계의 수 많은 곳을 정진경 목사님과 함께 여행하면서 저는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모릅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하나님과 한국교회와 아시아 교회와 세계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신 분이셨고, 연합과 협력을 도모하신 분이셨고, 바른 신앙을 펴 나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분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온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10. 박윤선 목사님
기도와 말씀, 소박함과 진솔함, 착함과 따뜻함의 영성

열째로 저는 총신과 합신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박윤선 목사님으로부터 기도와 말씀, 소박함과 진솔함, 착함과 따뜻함의 영성을 조금씩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완전하게 붙잡히신 분이셨고 그래서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신 분이셨습니다. 기도를 생활화하신 분이셨습니다.

총신에 계실 때 역삼동 개나리 아파트에 사셨는데 매일 새벽, 택시를 타고 총신에 오셔서 뒷산에 올라가서2,3시간씩 기도하시는 모습을 한 6개 월 동안 제가 옆에서 목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도 박윤선 목사님을 흉내 내며 새벽에 총신 뒷산에 올라가서 근처에서 두 달 동안 기도하곤 했습니다. 1979년 총신에서 학생 소요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도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기도로 일관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이사회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서 이사들과 교수들의 자동차를 뒤집어엎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학생 대표들을 불러 타이르거나 사태 수습을 협의하는 대신 특별 기도회를 선포하시고는 밤마다 강당에서 기도회를 인도하셨습니다. 결국 학생들은 처절한 회개의 고백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또한 너무 소박하시고 진솔 하시고 착하시고 따뜻하신 인간미를 몸에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자주 전화를 거시고 가슴에 지니신 안타까운 생각들을 진솔하게 말씀하시면서 “이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마” 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셨습니다. 저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마지막 한 주 동안 입원하고 계시던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 매일 찾아 뵈면서 친밀한 교제와 처절한 기도의 시간을 가지시곤 하셨는데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11. 방지일 목사님
순수함과 섬세함과 정확함과 따뜻함과 사랑과 섬김과 눈물의 영성

열한째로 저는 방지일 목사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많이 받으면서 방지일 목사님으로부터 순수함과 섬세함과 정확함과 따뜻함과 사랑과 섬김과 눈물의 영성을 조금씩 물려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방지일 목사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 특별한 사랑의 손길을 따뜻하게 펴시며 진솔한 말씀들을 해 주시곤 했습니다. “김 목사, 점심 대접할게” 라는 송구한 말씀을 수십 번 하셨고 제가 달려가면 일산으로 강화도로 경기도로 서울 곳곳으로 저를 데리고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 주시곤 했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계시는 생각들을 저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해 주시곤 했습니다.

저는 방지일 목사님을 모시고 중남미 도미니카로, 모스크바로, 몽골로, 태국으로 다니면서 선교대회에 참석하곤 했는데 선교사들과 현지인들은 물론 저는 너무너무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방지일 목사님께서 하신 귀중한 말씀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한 가지만 소개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그리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나 혼자 있을 때면 우는 때가 많아요. 깊은 밤중에 일어나 우는 때도 있고 혼자 길을 걸으면서 우는 때도 적지 않아요. 어린 아이는 잘 울어요. 배가 고파도 울고, 보고 싶어도 울고, 기저귀가 젖어도 울어요. 어린 아이는 우는 방법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신앙인들은 이런 의미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해요.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고 통달하려고 하다 보니 울지 않게 된 것이에요. 기도의 최고봉은 눈물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한테서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방지일 목사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들을 가진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이것으로 오늘 “나를 만드신 신앙의 선배님들 11분을 기리며” 라는 제목의 간증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사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한 평생을 온갖 죄와 허물로 가득한 죄인 중의 죄인으로 살아왔는데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심부름꾼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심부름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된 것이지만 또한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의 사랑과 가르침으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귀중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신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유춘택 사모님과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과 한국교회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과 한국교회의 예레미아 김치선 목사님과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과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섬김과 가난과 고난과 화해와 평화의 목회자 한경직 목사님과 목회와 선교 사역에 헌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신 조동진 목사님과 온유와 겸손과 포용과 협력과 사랑과 따뜻함과 격려와 칭찬의 목회자 정진경 목사님과 기도와 말씀, 소박함과 진솔함, 착함과 따뜻함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과 순수함과 섬세함과 정확함과 따뜻함과 사랑과 섬김과 눈물의 목회자 방지일 목사님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드립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신앙의 선배님들! 감사와 고마움과 사랑과 존경을 드리고 또 드립니다! 고맙고 고맙고 감사하고 감사한 것뿐입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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