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칼럼] 시(詩)의 매력애(愛) 흠뻑 빠지다
문화와 예술을 접한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 중에도 시(詩)는 정말 매력적이다. 종종 시인들이 보내온 시집을 종종 읽는다.
최근 받은 《엄마의 버스정류장》 조기봉 시인,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나태주 시인, 《산을 옮기다》 이도윤 시인, 《샤걀의 피안없는 시간》 양희진 시인, 《날마다 한강을 건너는 이유》 지영환 시인, 《당신의 언어》 오경화 시인, 《어쩌자고 꽃》 은월 김혜숙 시인 등 시인들의 시를 읽다 보면, 시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공원에서, 시민들의 산책길에서,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시도 그 중 하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만나게 되는 시 한 편. 길지 않아서 좋고, 어렵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소설보다 마음에 오래 남는 시가 더 좋은 것 같다.
시는 무엇인가.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야 하나. 시는 일상의 삶을 유지하는 양식이자 영혼에 산소와 같다. 언어의 연금술 같은 시어(詩語)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시는 그 어떤 수식도, 치장도 필요하지 않다. 아이들의 등굣길에서, 시민들의 즐기는 시의 언어가 좋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법(法)이다.
늘 사람을 사랑하고 울고, 예뻐해 주는 방식이 ‘시(詩)’이다. 시를 쓰는 시인이나 읽는 독자나 시로 인하여 마음과 영혼이 깨끗해지고 사랑하게 되며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봄에 시를 잊은 그대에게 시를 권한다.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무한 반복하는 오늘, 그대에게 막힘없는 나만의 글쓰기, 시 쓰기를 권한다. 쓰는 것이 어렵다면 시 한 수 낭송해 보길 추천한다.
봄의 정원엔 꽃을 심지만, 마음의 정원엔 시를 심어보면 어떨까. 시는 누구와 나누어도 좋다. 시를 읽으면 시를 소유할 수 있어 좋고, 편안하게 시를 읊을 때면 시의 맛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다. 어린이도 할머니도 함께 읽고 즐길 수 있는 시 한 편. 이는 그 어느 책 한 권의 독서량을 능가할 수도 있다.
시인은 시인의 맛이 나야 한다. 시에는 그런 맛이 묻어난다. 시는 그래야 하는 거 아닐까. 한 편의 시처럼 살고 싶고, 아름다운 나무처럼 살고 싶어 호(號)를 ‘미목’이라고 지어 보았다.
시는 읽는 순간, 찰나를 붙잡는다. 시를 읽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듯 하고 영원 속에 있는 것 같다. 시는 세월이 지나도 마음에 오래 남는다. 시는 그렇게 편하게 읽다가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그 뭔가를 지녀야 한다.
시는 일종의 ‘놀람, 발견, 깨달음’이라 표현하고 싶다. 이런 시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시’라고 말하고 싶다. 일제강점기 같으면 이상화(李相和, 1901-1943) 시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시라 할 수 있다.
남양주의 보배이자 자랑은 다산 정약용 선생과 조지훈 시인이다. 조 시인은 1940년대 『문장』잡지에 <고풍의상>이란 시로 정지용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조지훈 시인은 지조론을 쓸 정도로 지조를 중요시했다. 대표작은 <낙화(落花)>, <기다림>, <승무>, <빛을 찾아가는 길>, <사모> 등이 대표작이다.
이렇게 『문장』을 통해 등단한 조지훈·박목월·박두진 시인이 1946년 여름에 들어 을유문화사에서 공동시집으로 펴낸 것이 『청록집』이다. 『청록집』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온 것이다.
청록파 시인들이 한국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주목받는 이유는 일제강점기가 막을 내리면서 온통 정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시대 배경 속에서 정치색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작품이 오히려 대중의 감수성을 건드린 것이다.
사람들은 골치 아픈 ‘정치’보다 서정시에서 뜻밖의 따뜻한 안식과 위로를 찾은 것이다. 시끄러운 정치 현실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욕구를 절실히 느낀 그 시대에 『청록집』이 내세운 자연의 발견은 신선한 출구로 작용했다.
5월 17일은 조지훈 시인의 서거 55주기이다. 현대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시인 조지훈 선생의 시정신을 기리고, 시낭송을 통하여 한국문학의 우수성과 지역 문화발전의 장을 돕는 청록파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시인들의 시 낭송대회를 5월에 개최하려 한다.
다산문화예술진흥원이 지난 2017년 ‘별이된 시인 윤동주 탄생 백주년’행사를 통하여 전시, 공연, 시낭송회, 강연 등을 연 이후, 다시 공연예술로 ‘시낭송’이라는 새로운 문화 장르를 개척하며 문화향유권을 시민들에게 특급 배송하려 한다.
‘청록파 조지훈 시낭송대회’는 다시 돌아온 일상, 기다려온 셀렘, 그리고 지금 내게로 다가온 시를 접하는 귀한 시간이다. 대회는 ‘나도 시 낭송가’라는 행사이므로 시민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시가 좋은 길잡이이자 위로와 소통의 매개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다산문화예술진흥원이 남양주 시대를 연 것은 시민들과 함께 어울리며 재미있게 지내기 위함이었는데 의미가 생겼고, 향유를 생각했는데 요즘은 힐링을 이야기하게 된다. 함께 공유하면서 처음 만난 시민들을 응원하게 된다.
“문화도시 남양주 어떻게 보고 있나요?”, “글, 어떻게 써야 하는 건가요?”, “예술, 어떻게 향유할 수 있을까요?” 혹시 이런 질문은 받아 보셨나요? 이런 고민이 없이 ‘밥만 먹고 살지요’는 아니시겠지요. “삶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도록 돕는 그것이 예술 아닐까” 프랑스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전설, 앙드레 브라질리에(Andre Brasilier)의 말이다.
시집 《어느 바람(고은)》 중에서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란 구절이 나오는데, 인생 2막에 보았다. 인생 1막에 보지 못한 그 꽃을 나는 ‘문화예술’이라 칭하고 싶다. 사실 문화예술, 그리 어렵지 않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문화예술 도시를 상상하면서 이런 고백을 듣고 싶다.
“눈빛이 따뜻하고 품이 넓어졌어요”, “예술을 만난 삶, 나이듦이 두렵지 않아요”, “봄꽃 한 송이보다 시 한 수가 더 좋아졌어요”, “책 한 권에 나의 삶의 한 장면, 한 사람의 일생이 들어 있더군요”, “문학과 예술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니 마을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어요”. 이런 문화시민들의 노래가 듣고 싶다.
이효상 원장
다산문화예술진흥원
작가, 시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