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장 7-21절 사이, ‘사랑’이란 단어 몇 번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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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설교]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귀중한 삶과 사역

▲김명혁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크투 DB

▲김명혁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크투 DB

일시: 2023년 4월 30일
장소: 영천 하나승리교회
본문: 막 10:45, 요 13:14, 엡 5:1,2

성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귀중한 삶과 사역”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섬김”의 귀중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요 10:11,12).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그리고 성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은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웃뿐 아니라 원수들에게까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아주 길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3-48).

사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아주 오래 전부터 철저하게 펴셨다고 생각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아주 오래 전에 길고 상세하게 표현하고 또 표현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세주로 성자 예수님을 천사의 모습으로 보내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극심하게 저주를 받아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의 모습으로 구세주로 보내시려고 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아주 길고 아주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 53:1-8, 12).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베푸시려고 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극심한 희생적인 죽음의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인간의 글이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었습니다. 아마 선지자 이사야는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성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과 섬김”의 예언의 글들을 쓰면서 엎드려져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최고로 많이 받은 사도 요한은 나중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섬김”의 모습들을 일일이 섬세하고 자상하게 서술하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6-18).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1,4-6,14,15,34,35).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사도 요한이 바라보고 또 바라본 성자 예수님의 모습과 듣고 또 들은 성자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는 “사랑과 섬김”이 없는 모습과 말씀은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도 요한은 성자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신” 모습들을 묘사하고 “사랑으로 충만하신” 말씀들을 기록하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사랑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또 강조했는데 요한일서 4장 7절부터 21절까지 15절에서 “사랑”이란 말을 30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사랑(1)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2)하자 사랑(3)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4)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5)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6)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7)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8)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9)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10)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11)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12)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13)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14)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15)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16)하시는 사랑(17)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18)이시라 사랑(19)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20)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21)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22)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23)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24)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25)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26)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27)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28)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29)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30)할찌니라”(요일 4:7-21)

“사랑과 섬김”은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너무 아름다운 것인데 순수한 “사랑과 섬김”이 나타나는 곳에는 감동의 눈물이 흐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와 허물이 많은 우리 인간사회 안에서도 조그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펼 때에 감동의 눈물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강변교회와 중국 연변 지역과 아프가니스탄 모슬렘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조그마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곤 했는데 감동의 눈물이 나타나는 것을 너무 많이 보곤 했습니다. 저들이 나에게 보낸 감사와 감동의 편지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자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과 섬김”의 삶이고 “사랑과 섬김”의 죽음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과 섬김”의 삶과 죽음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라는 말씀을 하시고 또 하셨습니다.

영국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자요 설교자인 존 스토트 박사님은 예수님의 삶을 가장 정확하고 올바로 묘사하는 말씀이 바로 마가복음 10장 45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시다가 “사랑과 섬김”의 죽음을 죽으셨는데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따르는 제지된 우리 죄인들이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다가 “사랑과 섬김”의 죽음을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산을 옮길 만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귀중하고 천사의 말이 귀중하고 예언의 능력이 귀중하고 구제가 귀중하지만 “사랑과 섬김”이 없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천사의 말과 예언의 능과 구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13).

그리고 “섬김”의 귀중성을 강조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롬 15:25).

사도행전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님들은 거의 모두 성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신자들은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데 제일 많은 정성을 쏟아 바쳤습니다. 욥바 복음화의 주역이 된 도르가도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데 제일 많은 정성을 쏟아 바쳤습니다. 가이사랴 복음화의 주역이 된 고넬료도 “사랑과 섬김과 구제”의 삶을 사는데 제일 많은 정성을 쏟아 바쳤습니다.

안디옥 복음화의 주역이 된 예루살렘에서 온 피난민들과 예루살렘교회가 파송한 바나바야말로 무엇보다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는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보 복음화의 주역이 된 루디아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편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 대표적 “사랑과 섬김”의 목회자인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섬김”의 삶과 사역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사람이었는데 무엇보다 “사랑과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나환자 “사랑과 섬김”으로 그리고 원수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섬김”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10월25일 반란군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며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계엄 사령관에게 딸을 보내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 양을 설득하여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안 가겠다고 떼를 쓰던 딸은 결국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 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동희 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딸은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내 울었습니다. 동희 양의 말이 끝나고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취조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라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이 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안재선은 살아났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를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아 부산 고려 성경 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안재선은 완전히 변화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결혼하여 4남매를 두었는데 장남은 나중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고백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손양원 목사님뿐만 아니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도, 장기려 박사님도 자기 자신의 평안과 부귀와 영화를 다 포기하고 3무 4무 5무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청빈”의 삶을 살면서 불우하고 불쌍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한국교회 선배님들인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최봉석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들도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기보다는 불우하고 불쌍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청빈”의 삶과 함께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삶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답고 더 축복된 삶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이고 게으르고 나태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사랑과 섬김”의 부스러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아프리카로 방글라데시로 파키스탄으로 중국의 연변 지역으로 때로는 일본으로 북한으로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달려 다니면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쓰곤 했습니다.

저는 지난 22년 동안 중국 연변 지역의 불우한 조선족 어린이들 150여 명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돌아보고 있는데 그들 중의 대부분은 고아들이고 상당수의 어린이들의 어머니는 북으로 잡혀갔습니다.

저는 지난 22여 년 동안 거의 매년 연변 지역을 방문하며 어린 학생들과 저들을 관리하는 지역 회장들을 만나며 “사랑과 위로와 도움과 섬김과 격려”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그 동안 설교한 일도 없고 전도한 일도 없지만 순수한 “사랑과 구제와 섬김”의 손길을 폈기 때문에 수 많은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마워하면서 지역의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지역 회장들의 입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라는 고백들이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구제와 섬김”이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연변 지역의 불우한 조선족 어린이들이 저에게 너무 많은 감사의 글들을 써서 보냈는데 그 중의 두 가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습니다.

“김명혁 목사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강금화입니다. 그동안 목사님을 뵙지 못하다가 목사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저는 정말 기뻤고 반가웠습니다. 저처럼 많고 많은 가난한 아이들을 여태껏 후원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목사님의 이런 후원이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 생활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행복’ 이란 이 두 글자에 담긴 깊은 뜻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매번 김명혁 목사님의 후원을 받을 때마다 목사님은 마음씨가 곱고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가슴속 깊이 느끼곤 합니다. 저의 소원은 김명혁 목사님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되어 가난한 애들을 돕는 활동을 벌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학습방면, 도덕방면에서 기초를 많이 쌓겠습니다. 그럼 이만 필을 놓도록 하겠습니다. 김명혁 목사님,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합니다!!! 2013년 6월 20일 강금화 올림 ♥♥♥ I am very Happy ♥♥♥”

“존경하는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연변대학 농학원 농림경제관리 11학급에 다니고 있는 라혜연입니다. 저는 그동안 목사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로 학업을 지금까지 잘 완성하고 있습니다. 2007년 3월 11일 저의 어머니는 갑작스레 쓰러졌습니다. 2년 반 동안 어머니는 그 아프고 힘든 시간들을 겪으면서 병마와 투쟁을 해보았지만 저의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 저의 얼굴 한 번 더 보지 못하고 그렇게 아프고 괴로워하다가 저의 곁을 영원히 떠나갔습니다.

저의 머릿속에 흐릿하게나마 기억되는데 그건 아마도 6년 전이었습니다.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15살이었습니다. 초 중 때 항상 일등만 하던 저는 어머니의 갑작스런 아픔 소식을 듣고 청천 병력에 맞은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였습니다. 그 때 저한테는 희망도 없고 의지도 없고 신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목사님을 만나고 목사님은 저한테 두말없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의 어머니 만나러도 가시고 어머니가 있는 양로원에 후원도 해 주시고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도 해 주시고 그 때부터 저는 목사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매달 저한테 생활비도 보내주시고 관심도 많이 가져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힘을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련은 삶의 필수 과목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힘을 가지고 학업에 몰두 하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희망인 제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이루어주었습니다. 저는 이것만으로도 어머니가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목사님의 도움을 이렇게 받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항상 목사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나갈 것이고 남을 돕는 것은 복을 짓는 일이라고 목사님처럼 앞으로 남을 도우면서 살겠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준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013년 6월 19일 라헤연 올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족한 제가 아프가니스탄에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건축하고 학교 준공식에 참석한 이야기를 아주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은 그 당시 악의 축이라고 불리던 너무너무 극심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 처해있던 모슬렘 나라였습니다. 학교를 건축하기 2년 전에 제가 아프가니스탄은 방문했을 때 너무너무 극심한 어려움중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면서 저는 극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목회하던 강변교회 성도들에게 호소해서 1억 5천만원의 헌금을 받아서 아프간에 학교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무라취두라는 곳에 학교를 건축하고 준공식을 하게 되었는데 어린이 학생들 4백여명과 어른 모슬렘 지도자들 1백여영이 준공식에 참석하면서 감사를 표명 헸는데 학교 준공식을 하면서 어린이들이 나와서 한국 말로 다음과 같은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누가 그런 노래 가사를 가르쳐주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너무너무 귀중한 애용의 감사의 노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놀라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 할렐루야”를 부르면 때려 죽이는 곳인데 그런 귀중한 감사의 노래를 부른 것이었습니다.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는 귀중한 삶과 사역”이라는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들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어려움에 처해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살다 죽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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