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믿는다' 함은?
'믿음대로 된다(마 9:27-29)’는 말은 흔히 생각하듯, ‘손오공의 여의봉(如意棒)’처럼 ‘믿음이 만능(萬能)’이라거나 ‘믿으면 자기가 바라는 대로 다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말씀은 눈을 뜨고자 예수님께 나아와 부르짖었던 ‘두 소경’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중 나온 말씀이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마 9:28-30)”.
요약하면 두 소경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다윗의 자손)’으로 믿어 눈을 떴다는 말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구원을 얻고, 못 얻고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 ‘믿음의 경륜(經綸)’은 이 ‘두 소경’ 외에도 ‘그리스도 신앙’에 의지하여 의(義)를 얻은 이방인들과 ‘율법’을 의지하여 법(法)에 이르지 못한 이스라엘의 대비를 통해 확연히 드러났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롬 9:30-32)”.
◈그리스도와 율법
그리스도를 ‘피할 반석(the rock of my refuge, 시 94:22, 고전 10:4)’이라고 했음은 그에게 가면 하나님(율법)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죄인이 ‘하나님(율법)의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선 하나님의 율법이 철폐(撤廢)된다’거나, ‘그리스도 안에선 모든 법이 사문화(死文化)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 완성되고, ‘믿음 안’에서 율법이 더욱 공고(鞏固)하게 된다.
사도 바울의 다음의 말들은 이에 대한 확증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따라서 ‘율법의 성취자(the achiever of the law)’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율법이 뭔가를 요구하고, 또 그것(율법)으로 인해 그가 정죄를 받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불법적인 이중과세(double taxation, 二重課稅)가 된다.
또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율법의 저주(정죄) 아래 있다’는 말은 ‘율법의 성취자인 그리스도(the achiever of the law, christ) 밖에 있어 율법이 성취되지 않은 자는 율법의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다.
종합하면 ‘그리스도 안(in christ)’에 있어 율법을 성취한 자에겐 ‘의와 생명’이, ‘그리스도 밖(without christ)’에 있어 율법이 미성취된 자(율법 아래 있는 자)에겐 ‘죄와 사망’이 지배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 율법이 명령하는 모든 것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은 말문이 막히게 되고 온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에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롬 3:19, 공동번역)”.
◈믿음과 성령, 율법과 육신, 영과 육
성경은 ‘믿음(faith)’과 ‘성령(Holy Spirit)’을 서로 연관짓는다. ‘믿음의 의(義)’가 죄인에게서 율법을 성취시켜, 그에게 ‘죄 사함’과 함께 ‘성령’을 붓는다고 말한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8-39)”.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14)”.
오늘 어떤 사람들이 ‘성령의 부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죄사함’에 의존시키지 않고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방법’에 의해 부어진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령의 부음’에 대한 심대한 왜곡이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에겐 성령이 부어지지 않는다. 이는 그가 자신의 불신앙으로 인해 율법을 성취하지 못한 때문이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 3:2)”.
‘율법주의(legalism, 律法主義)’가 ‘성령의 부음(Anointing of the Holy Spirit)’의 방해물로 치부되는 것은 그것이 ‘죄 사함’을 막기 때문이다.
죄인이 율법을 완벽하게 준수해야 죄사함(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는 ‘죄 사함’을 갖다 주는 ‘믿음(faith)’ 대신 ‘율법(law)’에 사람을 의존시킴으로 그들로 하여금 ‘성령의 부음’을 받지 못하게 한다(거룩하신 성령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한 부정한 죄인’에겐 부어지지 않는다).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19)”. 그리고 이러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죄 사함’이 ‘성령의 부음’을 갖다 준다.
성경은 또 ‘율법’과 ‘육신’을 연관짓는다. “우리가 ‘육신(the flesh, 肉身)’에 있을 때에는 ‘율법(the law, 律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롬 7:5)”.
‘율법주의’가 ‘죄 사함’과 ‘성령의 부으심’을 막아 사람의 거듭남(regeneration)을 막아 육신에 머물게 한다(그 결과 사망의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또한 성경은 ‘영(spirit, 靈)’과 ‘육(flesh, 肉)’을 대치 관계에 놓고 ‘육의 사람’을 ‘성령이 없는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육(flesh, 肉)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the Spirit, 聖靈)으로 난 것은 영(spirit)이라(요 3:7)”.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유 1:19)”.
죄인이 율법 아래 있어(율법을 의지하여) 아담(Adam)으로부터 받아 난 그대로 있는 것은 ‘육(flesh, 肉)’이고, 믿음으로 죄 씻음을 받아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영(spirit)’이라는 말이다.
결론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 근본이다. 그를 믿지 않으면 죄사함도 성령의 부으심도 거듭남도 천국도 없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니면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인가?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