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한미관계를 다시금 공고히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무려 12년 만에 미국에 국빈 방문한 그는, 이 기간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 기업가들, 그리고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그 외 유력 인사들을 만나 전방위적 외교를 펼쳤다.
윤 대통령이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양국 간 관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 것과, 또 환영 만찬에서 자연스러우면서도 흡인력 있는 언행으로 미국인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낸 것은 윤 대통령과 현 정부 외교의 백미이자 화룡점정이라 할 만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독교계에서 높이 평가할 부분은, 그가 양국 역사와 동맹의 가장 핵심이자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적 가치를 잘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기조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미 의회 연설 도중 한미관계 140년의 역사를 설명하며 “19세기 말 미국 선교사들이 자유와 연대의 가치 한국에 전파해 줬고, 이것은 한국 헌법의 토대가 됐다. 이 선교사들은 한국의 독립운동과 건국에도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호러스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메리 스크랜튼, 로제타 홀 등을 일일이 거명하며 “19세기 말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을 도왔다. 이들은 병원과 학교를 지었고, 여성 교육을 증진했다. 이들의 노력은 많은 한국인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그들은 교육자, 의사, 언론인으로 사회에 진출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미동맹은 신앙혈맹이다. 이 같은 정의를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것은 종교편향적이 아닌 분명한 역사에 근거한 표현이다. 한미관계는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우호가 싹틀 수 있었고, 역사의 변곡점마다 기독교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지금껏 유지돼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오늘날의 자유와 평화와 번영이다.
한미관계, 아니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조선과 미국과의 관계가 처음부터 아름답게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아시아에까지 영향력을 팽창시키고자 하는 야심이 있었고, 조선은 국제정세에 어두웠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한참 뒤처져 있었다. 그 같은 극과 극의 만남은 결국 필연적으로 신미양요라는 충돌을 낳았다.
그 엄청난 간극을 좁히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기독교였다. 초기 우리나라에 온 미국인 선교사들은 교육, 의료, 복지 등 이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맹활약하며 이 민족을 섬겼고, 무엇보다 이 민족을 계몽하고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더 나아가 일제 패망 후 미국은 대한민국이 국권을 되찾고 공산화를 막아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는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위시한 기독교 세력이 분투했고, 미국에서는 역시 각계의 기독교인들이 이를 지원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들 대부분이 이전까지 알지도 못했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피를 흘렸다.
한국전 당시 미국이 유례없이 빠르고 과감하게 참전을 결단했던 데에는,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을 지켜야 한다며 정치권을 압박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오늘날 전 세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는 모습과 대조해 보면, 한국전 당시 미국과 UN의 참전이 얼마나 기적적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한국전 이후 미국은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안보와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의 오늘날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도록 울타리이자 화수분의 역할을 했다. 그 이면에 한미 양국 기독교계의 교류와 협력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같은 역사가 많은 이들에게서 점점 망각되고, 일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을 중심으로 반미운동, 더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여론까지 고조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고 배은망덕한 일이다.
더욱이 지난 문재인 대통령 당시에는 오히려 정부 여당 차원에서 앞장서, 자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철저히 유린하고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 정권을 비호하며 이 같은 한미관계를 위기로 몰고갔었다. 이에 대해 우려하는 미국 측과 국내 보수 기독교계에 대해서는 날선 반응을 보이며, 각각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듯한 언사를 서슴지 않거나 코로나19 방역을 명분으로 탄압을 하기도 했다.
그 같은 소위 종북 세력들은 과거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북한이 (핵)미사일 공격 조짐을 보일 경우 선제타격해야 한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군이 표방하고 있는) ‘킬체인(Kill-Chain)’ 개념을 언급하자 그를 ‘전쟁광’이라 비난하더니, 이번 한·미 ‘워싱턴 선언’으로 북한이 한국에 핵 공격을 해올 시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을 하겠다는 방침이 명문화되자 “이미 핵을 맞은 뒤 반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자가당착적 ‘비판을 위한 비판’만 계속하고 있다.
다행히 윤 대통령은 그 같은 억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종일관 한미관계에 역점을 둘 뿐 아니라 이번 국빈 방문으로 이를 실제적으로 진보시켜 나가고 있다. 부디 이를 끝까지 뚝심 있게 밀어붙여, 강력한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공허한 이상주의가 아닌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자유와 평화와 번영의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또한 기독교계는 적어도 이 기독교적 가치들을 근간으로 한 한미동맹과 안보에 있어서만큼은 흔들림이 없도록 일치단결해 지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