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담대한 구상(계획)에 대한 우려
지난 3월 통일부가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라는 통일대북정책 비전을 제시하며 <2023 통일백서>를 출간, 다시금 ‘담대한 구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담대한 구상은 북핵문제 근원적 해결을 최우선 목표를 삼은 윤석열정부의 정책 슬로건이다. 윤대통령은 ‘담대한 구상’을 작년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에 앞서, 통일부는 7월 22일에 ‘담대한 계획’을 윤대통령에게 보고 후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당시,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하면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 경제와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면서 ‘단계에 맞춰’, ‘단계별로’ 그에 맞는 상응조치를 취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더 나아가, 과감한 조치도 포함시켰다고 하면서,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정치군사적인 조치까지도 취할 수 있다고 한바 있다.
북한의 안보우려는 ‘한민군사훈련’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핵개발, 핵무장이 공격용이 아니라 정권유지차원의 방어용임을 인정해주는 꼴로 필자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이 많은 우려를 표했었다. 북한의 김정은도 이것을 빌미로,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강력 비난했고 작년 7.27 휴전협정일(북한식 전승절)에는 핵무장이 방어용 차원이라고 강조하면서 한미군사훈련을 ‘위험한 군사적 기도’, ‘국가의 안전을 엄정히 위협’, ‘전쟁연습’으로 맹비난하며 훈련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미당국은 한미군사훈련을 “북한의 군사도발을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이라고 밝혔지만 통일부의 담대한 계획으로 인해 그 당위성이 흔들렸었다. 사실,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통일부는 책임 소관부처가 아니다. 즉,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판단할 권한이 없다.
이 훈련은 한미 외교, 국방차관 2+2 형태로 진행되는 ‘고위급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가 전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곳이다. 따라서 당시에도 담대한 계획이 통일부의 월권행위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2023 통일백서>가 얼마나 그런 목소리들을 제대로 경청했는지 자못 궁금했다.
‘2023 통일백서’에 나타난 취약점
1. 3단계통일방안을 제시 못함
무엇보다, 통일백서에서 3단계 통일방안을 어떻게 제시했는가가 가장 궁금했다. 통일백서에는 1994년 김영삼 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 발전시킨다고 적시했는데, 김영삼 정부의 통일방안은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한 것으로 3단계 통일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화해·협력 단계 2) 남북연합 단계 3) 통일국가 완성 단계
그런데, 2023 통일백서는 3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2024년에 제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통일백서에 통일방안이 담기지 않았다 것은 참 이해불가한 일이다. 이런 면에서 통일백서를 너무나 급하게 서둘러 출간한 측면이 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통일부가 3단계 통일방안 마련하기 위해 작년 하반기에 어느 학술연구단체에 외주용역을 주었는데, 불과 3개월 만에 보고서는 제출(12월)되었고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었다. 필자가 그 보고서를 입수하여 확인해보니, 정통 북한학자는 네 명의 연구자 중,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들이 제안한 3단계 통일방안은 다음과 같다.
1) 평화체제구축단계 2) 국가연합 단계 3) 연방형 단일국가 단계
통일방안의 최종단계를 ‘통일국가’가 아닌 ‘연방형 단일국가’로 제안한 것이다. 관련 보고서 내용은 “기존의 통일방안은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통일국가를 표방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흡수통일로 인식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연방형 단일국가”는 남과 북이 연방주를 형성하는 것으로 통일의 최종단계이다”라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이 형태는 “북한의 낮은단계연방제(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 혹은 연방연합제와 공통점을 지녔다”라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이 보고서를 내부적으로 검토 후에 내년에 통일방안을 제시한다고 했는데,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북한이 요구하는 것에 가까운 3단계 통일방안 발표를 들을지 모른다. 이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 방안은 우리 국민들의 통일의 염원에 재를 뿌리는 것이다.
또한 지난 4월, 3단계 통일방안 제안 관련 어느 학술회의에서 권위 있는 북한 전문가는 통일의 최종형태를 통일국가보다 남북연합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는 남북연합이 지속될 수도 있고, 기존에 상정했던 우리(남측) 의도가 반영된 통일국가를 지향할 수 도 있지만 북측이 말하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것이 올수도 있다”라고 하면서 세 가지 형태의 통일미래는 그냥 열어놓은 형태로 통일을 구상하는 것이 좋겠다는 정말로 무책임한 말을 내던졌다. 비록, 바깥에서의 제안들이지만 다 우려되는 통일방안들이다. 필자가 연내에나 내년에 제시될 통일방안에 대해 염려스러운 마음을 갖는 것은 이번 통일백서안에 “흡수통일은 추구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못을 박아 두었기 때문이다.
2. ‘흡수통일’을 반자유, 반민주, 반평화적으로 규정
흡수통일은 분명, 어감은 별로 좋지 않다. 그렇다고 그 개념과 의미까지 안 좋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흡수통일이 대한민국 헌법에서 가리키는 통일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통일백서는 흡수통일을 거부한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헌법 제4조를 내세우고 있다. 헌법 4조는 아래와 같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분명, 헌법에서는 “통일을 지향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통일은 헌법 제3조인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정언명령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4조에서는 자유민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을 수립한다고 되어있다. 지난 과거정부는 이 헌법 4조를 근거로 흡수통일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 정부의 통일부는 흡수통일을 성격을 이것과 배치(背馳)된다고 보고 있다. 이런 시각이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통일부의 이러한 견해는 작년에 통일부에 통일방안 보고서를 제출한 학자들과 일치한다는 점이고 또, 직전 문재인 정부의 ‘흡수통일’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계승하는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광복절 기념사와 같은 해 9월 21일, 미국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이나 인위적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한바 있다. 현 정부의 통일부는 이 기조를 그대로 따른다라고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통일부에 제출된 보고서를 무게있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고서 내용을 보면, “기존의 통일방안에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통일국가를 표방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를 흡수통일로 인식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는 한마디로, 북한이 싫어하니까 흡수통일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북한눈치를 보면서, 비위를 맞추면서 통일방안을 마련해야 된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이 제안을 일정부분 수용했기에 통일백서에 흡수통일 거부라고 명시해 두지 않았는가. 결국, 이번 통일백서는 북한 비위에 맞추는 꼴이 되어 버렸다.
제안: 흡수통일 대체할 용어 발굴하라
통일부의 수장은 흡수통일 배제에 대해 작년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나왔던, “우리 정부는 북한지역에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발언에서 그 명분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기자회견 직후 바로, ‘힘에 의한 변경’이 흡수통일을 가리킨다라고 발표해 버렸다. 그런데, 윤대통령은 2023년 신년 통일부의 정책보고를 받을 때, 이 문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 통일은 어떤 방식으로 되어야 되는지 더 나은 쪽으로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만일 북한이 우리 남쪽보다 더 잘 산다면 그쪽 중심으로 돼야 될 거고, 남쪽이 훨씬 잘 산다면 남쪽의 체제와 시스템 중심으로 통일이 돼야 되는게 상식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누가 봐도, 흡수통일을 개념을 제대로 풀어서 설명해준 것이다. 이 발언 이후 야당의 공격으로 수습차원에서 통일부 장관은 흡수통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애둘러 부인했다. 당시는 야당의 정치공세를 모면하기 위한 임기방편인줄로 알았다. 그런데, 통일백서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번 통일백서는 통일부가 북한에 비위를 맞추면서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겉으로는, 원칙있고 실용적인 남북관계 추진을 대북정책의 기본방향으로 설정했다고 하면서, ‘흡수통일’ 용어에 벌벌 떠는 모습이 꼴불견이다.
북한은 당당히 당규약(서문, 2021)에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 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작년 9월 ‘국가핵무력정책’을 법제화 시키면서 그 안에 분명히 ‘영토완정’(領土完整, ) 용어를 포함시켰다. “나라를 완전히 정리하여 통일함”으로 북한의 최종목표가 ‘남조선 해방’, ‘적화통일’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데, 통일부는 북한이 싫어한다고 ‘흡수통일’이라는 용어도 못 쓰는 형편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흡수통일이라는 용어를 대놓고 쓰기 어려우면, 그 개념과 의미를 그대로 담는 새로운 용어를 개발하기 바란다. 흡수통일을 대체할 만한 용어를 발굴하기를 제안하다. 군사적 흡수통일은 절대 지양해야 하지만, 체제 및 경제적 흡수통일은 윤대통령의 발언대로 반드시 이루어야 할 통일의 형태가 아닌가. 이것이 바람직하고, 헌법이 명령하는 통일의 모습일 것이다. 끝으로, 현 정부의 통일대북정책 비전을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로 제시했는데, 번영대신 통일이라고 직접적으로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더 나아가, ‘비핵·통일·평화의 한반도’라고 하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통일 이후에나 가능하지 않은가.
이 글은 WORLDVIEW 7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