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웨인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를 중심으로 (1)
1. 서론
본 연구의 목적은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의 『성경에 따른 정치(Politics According to the Bible: 2010, ‘성경과 정치’로도 불림)』에서 제시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참여의 성경적 원리를 밝히고, 주요 논점을 토론해보고자 한다.
웨인 그루뎀은 대표적 저작 『웨인 그루뎀의 조직신학』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 목회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비교적 최근 성경 원어에 가까운 번역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ESV(English Standard Version) 영어성경 총괄 편집자로 역할을 하는 등 현재 살아있는 복음주의 최고의 신학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웨인 그루뎀은 현 시대 가장 존경받는 미국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학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그리고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박사를 받은 후 트리니티신학교 및 피닉스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청교도 정신으로 설립된 미국은 사실상 기독교 가치 위에 세워졌으나, 인본주의 사상의 교육과 반기독교적인 문화의 확산 그리고 법의 변화까지 이르러 전통적인 기독교 가치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며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낙태 합법화, 동성결혼 합법화, 그리고 남녀 성별 기준의 파괴를 들 수 있다. 한국도 미국이 경험했던 사회적 혼란을 따라가고 있는 듯하다.
전통적 가치의 해체는 기독교 내부적으로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파와 우파가 되어 각 진영에 서서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한편으로 정치적 이슈는 절대로 교회에서 언급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많이 나오고 있다. 교회에는 정치적 좌파와 우파 성향 모두 있는데, 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목회자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지지했다가 내부적으로 큰 갈등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또 어떤 이들은 교회는 오직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교회는 기도할 뿐 어떤 정치참여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루뎀은 이러한 교회의 현실을 반영하여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교회는 정치에 영향력을 미쳐야 하는가?
목사는 정치적 문제를 설교해야 하는가?
기독교인은 정치적 이슈에 대해 특정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성경은 사람들이 어떻게 투표하라고 가르치는가?”
그루뎀은 『성경에 따른 정치』를 통해, 현대에 당면한 여러 정치 이슈들에 대해 교회가 성경적 관점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책은 총 620쪽의 방대한 분량이며, 전체는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 4장까지 정부와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한 정치 참여의 기초 원리를 제공하고, 5장부터 18장까지는 구체적인 정치적 이슈를 다룬다. 생명윤리, 결혼, 가족, 재산, 환경, 안보, 외교, 언론, 종교 등 총 60가지 주제에 관해 논의한다.
그는 정부와 정치에 관한 기초 원리에서 현재 당면하고 있는 정치 이슈에까지 성경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법적으로 민감한 정치적 주제에 관해서도 성경의 가르침을 담대히 기술하는 특징이 돋보인다.
국내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정치 윤리에 대한 연구는 최근 들어 조금씩 관심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김승욱은 기독교세계관 정론지 월드뷰(Worldview) 2019년 11월호를 ‘기독교인의 정치참여에 관한 기획특집’으로 복음주의 정치학자, 경제학자, 그리고 신학자 총 9명의 칼럼을 실었다.
황재범은 마틴 로이드 존스(D.M. Lloyd-Jones, 1899-1981)의 기독교 국가관 및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를 소개한 후, 로이드 존스가 주장하는 복음주의적 정치윤리에 관해 논의했다. 로이드존스는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국가와 정치문제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고, 집착하지 않는 초연한 참여(detached participation)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재범은 로이드 존스의 입장을 칼 바르트(Karl Barth)의 소극주의와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적극주의 사이의 중도적 관점으로 논증하였다.
최용준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반혁명적 국가학을 중심으로 카이퍼의 국가관에 대해 연구했다. 카이퍼는 국가의 본질적 시작이 하나님의 창조계획 아니라 인간의 타락의 결과에 대응적으로 나타난 임시적 처치술(상처를 감싸는 붕대 또는 다친 다리를 보조하는 목발)이라고 보았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당시 만연했던 국가 절대주권 사상에 대항하는 ‘영역주권’ 개념을 제시함으로 하나님이 사회의 각 영역마다 고유한 영역주권을 부여했으므로, 국가는 교회, 학교, 기업 등 각 사회 영역에 상호 불간섭의 원칙을 주장하였다.
최용준은 이러한 카이퍼의 국가관을 밝힌 후,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와 기독교 대학이 카이퍼의 가르침대로 정치 분야에 대한 연구와 기독정당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강조하며, 특히, 현재 기독 사립학교를 향한 교육부의 지나친 제약 및 간섭에 대해 한국교회가 정부에 단호한 목소리를 낼 것을 촉구했다.
이와 같은 연구들은 복음주의적 정치 참여 원리를 밝히기 위한 논의를 발전시키는데 유용하다. 본 연구의 가치는 아직 한글 번역이 없는 그루뎀의 『성경에 따른 정치』를 요약하고, 그 논의를 통해 교회의 정치참여의 방향과 수준을 제안하는 데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그루뎀이 제시하는 시민정부와 정치참여의 성경적 원리를 밝히기 위해 2장에서 정치참여는 하나님의 관심인가를 알아보고, 3장에서는 복음전도 우선주의에 대한 반론을 검토할 것이다. 4장에서는 정치참여의 한계를 살펴보고, 5장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정치참여의 실제적 방법을 제안하며, 6장에서 논의를 마무리할 것이다.
2. 정치참여는 하나님의 관심인가?
정치참여란 국민이 국가의 주권자라는 것을 인식하여 책임 있는 자세로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참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정치권력을 부여받은 공직자가 되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해 줄 수 있는 공직자에게 정치권력을 부여하는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여기서 ‘적극적 참여’의 의미는 단순히 개인이 투표권을 행사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가치에 투표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영항력을 미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정도로 정치참여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인가? 신앙공동체로서 교회는 정치참여를 공식화할 수 있는가? 아니면 모두 개인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에 맡겨야 하는가?
그루뎀은 첫째,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당시 세속 정부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 사례를 제시한다.
요셉은 이집트(애굽) 고위 관직인 총리로 일하면서 파라오(바로) 왕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창 41:36-38). 모세는 파라오 앞에 당당히 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를 줄 것을 요구했으며(출 8:1),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자유를 위한 출애굽을 위해 모진 수고를 감당했다.
다니엘은 바벨론 세속정부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는 왕궁의 고관이자 왕의 조언자였다. 다니엘는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도덕기준을 담대하게 세속 정부의 통치자인 느부갓네살에게 제시한 것이다.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폐하의] 죄악을 사하소서(단4:27, 그루뎀 번역)”
여기서 나오는 ‘공의, 죄,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과 같은 표현은 다니엘이 왕의 구체적인 정책과 행위에 관해 하나님의 기준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대의 기준으로 볼 때 다니엘은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의 관점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기를 거부했다. 심지어 바벨론의 문화 속에서 왕을 섬기는 신하의 처지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기준을 말하기를 회피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세속 정부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으로 일했다(느 1:11). 모르드개와 에스더 역시 페르시아 정부의 임금, 아하수에로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에스더서 전체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구약 선지서들은 이스라엘 주변 이방 나라들을 향해 그들의 죄를 언급한다(사 13-23장, 겔 25-32장, 암 2장, 옵, 나, 합 2장, 습 2장).
둘째,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당시 세속 정부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 사례를 제시한다.
세례 요한은 로마 황제가 세운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통치를 받고 살았다. 세례 요한은 헤롯이 행한 악한 일에 대하여 책망을 했다가 감옥에서 순교당했다(마 14:3-4; 눅 3:18-20).
사도 바울 역시 세속 정부에 영향을 미친 신약의 좋은 사례가 된다. 그는 가이사랴 감옥에서 로마 총독 벨릭스의 재판을 받았다(행 24:24-25). 그때 바울은 벨릭스의 사생활 뿐 아니라 로마 총독으로서 취한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의 도덕적 기준과 하나님의 심판을 말했다. 이는 시민정부에 의미있는 기독교적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한 신자의 또 다른 예시이다.
셋째, 로마서 13장과 베드로전서 2장처럼, 성경에는 정부에 관한 직접적인 가르침이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대표적으로 로마서 13장 1-7절과 베드로전서 2장 13-14절을 비롯한 관련된 성경구절을 주신 이유는 명확하다. ①그리스도인이 시민정부의 정체성을 알고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알려주시는 것이다. ②그리스도인들이 정부 관리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그들의 역할과 책임을 알수있도록 활용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그리스도인들만 비밀스럽게 간직하며 ‘왜 정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행하지 않는가?’ 탄식만 하고 있는 것은,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바른 태도가 아니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에서 직·간접적으로 제시하는 바, 정치참여는 하나님의 관심사임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참여를 통해 세속 정부에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할 책임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루뎀은 신·구약 성경의 사례 조사를 통해 놀라운 결론을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세속 정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행위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주제라는 것이다. <계속>
장선범 목사
포항 기쁨의교회 부목사
유튜브 ‘프리칭지저스’ 운영자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 M.Div.
한동대 경영학·국제지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