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웨인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를 중심으로 (2)
3. 복음전도 우선주의(Prioritism)에 대한 반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 그리스도인이 세속 정부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사이며, 이는 곧 정치적 참여의 책임이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많은 교회가 이 주장에 동의하더라도, 실제로는 정치 참여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경우 교회는 복음전도와 제자양육을 통한 영혼구원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가 복음만 선포하면 되지 정치에 관해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최소한 교회가 해야할 일들 중에서 우선순위 사역은 아니라는 논리이다. 이러한 태도는 복음주의 교회들에서 특히 나타난다.
그루뎀은 이러한 시각을 “정치참여 대신 전도만 해야 한다(The View of Do Evangelism, Not Politics)” 관점으로 명명하며, 옳지 않은 생각임을 비판한다.
그루뎀은 교회와 정치에 관한 잘못된 다섯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①정부는 종교를 강제해야 한다 ②정부는 종교를 배제해야 한다 ③모든 정부는 마귀적이다 ④정치참여 대신 전도만 해야 한다 ⑤복음전도 대신 정치참여만 해야한다
필자는 이를 오직 ‘영혼구원’에만 초점을 두는 편협한 ‘복음전도 우선주의’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관점은 언뜻 듣기에 매우 신앙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존 맥아더는 대표적인 복음전도 우선주의자이다. 그는 정부와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지 않고 그리스도 왕국의 발전에 필수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루뎀은 맥아더의 입장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정치참여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평가절하 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또 맥아더는 “하나님의 왕국을 발전시키거나 막는데 있어 인간 정부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루뎀은 남한과 북한의 교회와 파송 선교사 수를 비교하면서 좋고 나쁜 정부의 효과는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복음전도가 시급한 미전도종족 선교지 국가들은 대개 이슬람, 힌두, 공산주의 정부가 있는 곳이며, 선교사들의 복음전도 활동을 가로막히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이 정부의 기독교 선교활동 거부정책 때문이다.
복음에 저항하는 이슬람, 힌두, 공산주의 정부에서는 선교사들의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음으로써, 합법적인 선교활동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폐쇄적이다. 바로 악한 정부의 역할 때문이다.
그루뎀은 복음전도 우선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대한다.
첫째,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신 복음의 내용은 요한복음 3장 16절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에는 사복음서와 사도들의 가르침, 그리고 구약성경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신구약 성경의 모든 것을 우리는 가르쳐 지키게 하는 명령을 받았으며, 여기에는 인간 정부에 관한 하나님의 가르침도 포함되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예수님의 사역의 모범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지상의 삶에서 보여주신 사역은 삼중 사역이다. 회당에서 가르치고,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그리고 백성의 병과 약함을 치유하셨다(마 4:23).
예수님은 오로지 죄 용서와 영혼구원을 위해서 사역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질병도 고쳐주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이 복음전도와 교육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치유하심으로 구체적 상황에서 그 나라의 실제성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총체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일은 영적인 일인가? 그렇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든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는 사랑의 원리를 따라 사회적 관심을 갖고, 세상 정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일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복음전도와 이웃사랑을 위해 이 땅에 남겨두셨기 때문이다.
오직 복음전도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웃 사랑의 대계명을 주셨다(마 22:39). 이웃 사랑은 사회 전반에 걸쳐 내 이웃들을 위해 복과 유익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려면 좋은 법을 세우는 일은 매우 본질적인 이웃사랑의 방편이다. 법은 모든 국민에게 좋든 나쁘든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좋은 법을 만들고 지켜 나가려면 정치참여가 반드시 요구된다. 결혼, 낙태, 동성애, 에이즈 문제, 아동보호 등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복음전도가 이웃 사랑보다 더 우선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복음전도의 사명과 이웃사랑의 계명은 상호협력적인 동반자인 것이다.
온전한 복음(The whole gospel)은 복음전도에 이웃 사랑(사회적 관심, 정치참여)을 포함하자는 총체주의를 표현하는 선교개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전도와 이웃 사랑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마 5:16).
넷째, 세상의 악을 저지하기 위해 교회와 정부 둘 다 바르게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복음전도는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구원을 받게 한다. 이로써 개인이 선을 도모하고 악을 저지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러나 이것이 악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하나님은 정부를 사용해서 악을 저지하신다. 실제로 살인과 전쟁 같은 거대한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의 힘이 필요하다.
(마틴 로이드 존스도 정부의 기능을 소극적으로 악을 제어하고, 적극적으로 만인의 복지를 진흥하는 것으로 보았다.)
음주운전을 예로 들어보자. 어떤 이는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모범을 보인다면, 음주운전을 처벌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막연한 착각일 뿐이다.
실제로 음주운전이라는 범죄는 그렇게 없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 시대 정부의 막강한 처벌의 힘을 통해 음주운전이라는 악을 저지하고 있다(롬 13:3).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것(딤전 2:2)”을 촉구했다. 정부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을 도모하고 악을 처벌하는 기관이 되어야, 그곳에 사는 국민들과 교회가 안녕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부가 악을 도모하고 선을 처벌하게 된다면,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악을 저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정부가 바로 서도록 기도해야 하며 선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정리하면, 복음을 좁게 해석하는 편협성, 예수님의 사역 모범을 따르지 못하는 한계, 이웃 사랑의 명령에 순종, 그리고 악을 저지하기 위해 정부를 위해 기도하라는 성경적 원리를 따라 교회는 복음전도 우선주의를 폐기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
오히려 반기독교적 악법을 제정하려는 이 시대에, 교회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관심(정치참여)을 동시에 도모하는 총체주의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장선범 목사
포항 기쁨의교회 부목사
유튜브 ‘프리칭지저스’ 운영자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 M.Div.
한동대 경영학·국제지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