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9월 8일 기획전 개관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이 9월 8일 오전 11시 개관 행사를 시작으로 ‘한국선교의 빛(光)과 빛(色)-복음의 빛, 흩어진 이야기’ 기획전시를 개최한다.
‘한국선교의 빛(光)과 빛(色)-복음의 빛, 흩어진 이야기’ 전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 비친 복음의 여명, 그 빛(光)과 그 가운데 흩어진 다양한 색깔의 이야기로서의 빛(色)을 박물관 소장자료를 중심으로 펼쳐 보이게 된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은 “복음의 말씀이 이 나라의 말 그릇에 담긴 때인 로스 역 성경 <예수셩교전셔, 1887>를 기준으로 한다면, 올해는 그 136년이 되는 셈이다. 성서 중심적 특징과 자발적 복음 수용과 전도의 독특한 특징을 가진 한국선교의 이야기를 이 시기에 다시금 조명해 보는 것은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구원 섭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며, 기도하게 하는 때를 우리가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이 땅의 초기 선교사들은 낯선 땅에서 문화적 충격과 충돌 속에서도 타자를 위한 성육신적인 선교를 감당함으로써 복음의 씨앗을 심었다. 어떤 선교사는 한국에 온 지 한 달 만에 죽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내를 잃어 세 번씩 결혼하기도 하고, 한 살 된 아들이 먼저 죽어 떠나보내며 아리랑을 부른 선교사도 있었다. 이처럼 자기 생명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했던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한국교회는 일제 치하와 민족 동란의 질곡을 견뎌내고 눈부신 교회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당시 기독교의 균형 잡힌 선교 사역은 시대적으로 종교적 공백기에 있었던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후 한국교회는 직접 선교와 간접 선교의 균형을 잃고 오로지 복음 전도에만 집중하는 불균형을 드러내, 기독교가 내세적인 신앙으로 변질되고 근본주의 신앙이 자리잡게 되는 원인이 됐다. 초기 한국에 복음을 들고 와서 생명을 바친 많은 외국의 선교사들, 이 땅의 사역자들이 땀과 피를 흘려 헌신한 기초 위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세워졌다. 현재 거듭되는 한국교회의 몰역사성은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는 교회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연구하고 파악하여 교회의 사회적·민족적 책임을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우리에게 요청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에서는 본 박물관에 각기 다양한 빛깔로 자리하고 있는 초기 선교사들의 수많은 헌신적인 사랑과 열정을 통한 ‘복음의 빛’은 ‘복음의 빚’이 되어, 보내는 선교를 통해 복음의 생명력으로 각 나라에 펼쳐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복음의 여명, 그 빛(光)과 그 가운데 흩어진 이야기(色)’는 선교사들의 낯선 땅의 문화에 대한 문화충돌과 풍토병으로 어린 자녀를 잃어 가면서도 복음을 전한 선교 현장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교회가 ‘협력의 길’, ‘말씀의 온전한 이룸으로써의 하나 됨의 길’로 나아가고, 한국교회의 신앙의 발자취를 이해하여 신앙의 유산과 신앙 정신을 새롭게 할 계기를 마련해 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전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문헌 자료로는 평양노회지경각교회사긔(平壤老會地境各敎會史記, 1925), The Mastery of the Far East(극동의 지배, 1919), The Man in Grey or More about Korea(회색 옷을 입은 남자, 1906), Chilgoopie The Glad(칠구피의 즐겁이, 1906), Underwood of Korea(한국의 언더우드, 1918) 등이 있다.
『평양노회지경각교회사기』는 복음이 전해지고 1925년까지 평양지역의 교회의 역사를 한눈에 접할 수 있는 역사적 문헌을 담은 책이다. 미국북장로회는 서북부 지역인 신양리와 경창리 일대에 15만 평의 광범위한 선교지부를, 미국북감리회는 그 아래쪽에 위치한 대찰리, 순영리, 남산정에 이르는 지역에 넓은 선교지부를 조성했다. 이 책 1~8장은 평양부, 대동군, 강동군, 성천군, 중화군, 황주군, 수안군, 곡산군 지경 각 교회를 수록하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때 장대현교회에 임했던 그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책의 서론은 장대현교회를 담임하였던 영계 길선주(吉善宙) 목사가 썼다.
『극동의 지배』는 1910년대까지 한국과 일본의 상황,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경쟁, 극동의 정치·경제적 상황, 미국의 극동지역 선교,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 등에 관하여 종합적 정보과 관점을 제공한다. 극동의 전략적 요충지 한국, 한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극동의 제국 세력 일본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은 제1부 한국: 극동의 전략적 요충지, 제2부 한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제3부 일본: 극동의 제국 세력, 제4부 극동 문제 속의 기독교 선교 등으로 돼 있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와 『칠구피이 즐겁이』는 장 페리 선교사에 대한 내용을 담은 문헌이다. 영국에서 출생한 진 페리(Jean Perry, 1863~1935)는 한국 고아원과 사회사업의 선구자다. 1882년 부모를 따라 호주 퀸즐랜드(Queensland)로 이민을 가 언니가 운영하는 학교 일을 도왔다. 28세 되던 1891년 말, 빅토리아주 장로회 여전도회연합회의 파송을 받고 매케이(J. H. Mackey)부부, 멘지스(B. Menzies), 포세트(M. Fawcett) 양과 함께 부산에 왔다. 1907년 회개의 대부흥이 한국교회를 휩쓸 때 페리는 이것을 현장에서 경험하는 복을 누렸다. 페리는 한국선교 활동 기간에 후원금 모금을 위해 5권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 아이들에 대한 선교 활동을 보여주는데, 세례를 받은 후 집에서 부르는 이름인 섭섭이(Sorrow)에서 즐겁이(Chilgoopie-Glad)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호주장로교 여성 선교사 장 페리는 1890년대 후반에 조선에 파견돼 20년간 고아원을 운영하고 선교 활동에 힘썼다. 여성 선교사로서 겪었던 다양한 종교적·문화적 체험을 기록한 선교 경험담 및 조선 생활 체험기다. 책 등에 한글이 인쇄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페리는 1911년까지 어린 맹아들을 돌보아 맹아 학교에 보내는 사역을 했다. 글을 몰라 ‘답답하오’를 외치던 여성들을 가르쳐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복음을 믿어 자유인이 되게 했다. 페리는 25년 동안의 한국 사역을 마감하고 1915년 한국에서 은퇴할 때 고아원과 모든 구호 시설들을 구세군에 넘겨 줬다.
『한국의 언더우드』는 언더우드 선교사 부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1859~1916년) 언더우드의 부인인 그는 1888년 3월 조선에 도착한 릴리어스 언더우드는 정박 시설 하나 없는 제물포에 도착을 하여 조선에서 15년 동안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조선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도우려고 했던 그 마음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조선인의 생활과 기질의 묘사, 왕가에 대한 역사적 사건과 인간적인 면모 등의 개인적인 시각이 재미난다. 명성황후와 친분이 두터웠으며, 그녀가 느낀 명성황후의 인간적인 묘사가 아주 새롭다. 명성황후에게 천국과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도 전했으며, 그때 명성황후의 반응을 기록한 부분도 있다. 1888년 제물포에 도착한 날부터 을사조약까지 조선의 해체를 외국인의 시선으로 그렸다. 그는 조선을 향한 부르심에 순종하여 인도로 갈 방향을 바꾸었고 조선인을 참으로 사랑했다.
이밖에 전시 사진 자료로 업아력(A.F. Robb) 선교사(1872~1935) 장례식, 마펫 & 게일 선교사 의주지방 선교여행(1891). 선천(宣川)지구 선교사 일동(1919), 남장로회 선교사 일동, 사에리시(Alice Hammond Sharp) 선교사(1871-1972), 장로교 선교사 회의(1893), 장로회 선교사들의 면모(1901), 선교사 자녀들의 유아세례(1931) 등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