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족을 언급하면서 감상적인 접근으로 홍범도 장군을 미화하는 글들이 있다. 본질을 흐리는 위험한 모습들이 보이는데, 안타까운 건 일부 기독교 사역자들이 그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가 더 이상 여기에 침묵해선 안 된다.
2. 한 목사님은, 홍범도 장군은 민족의 독립이라는 시대적 공익을 위해 사익을 버리고 철저히 헌신한 사람이고, 공익을 위해 철저히 헌신한 점에서 모세와 예수의 모습과도 비슷하니, 사익에 쩔어사는 주제의 사람들은 입을 닫으라는 투다. 이것을 이번 주 설교말씀으로 준비하셨다고 한다.
3. 선교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어떤 분은 홍범도 장군을 지금의 잣대로 재단해선 안된다고 한다. 역사 해석은 그 상황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면서 홍범도 장군을 옹호한다. 3.1운동 이후 미국은 독립운동의 대안이 되지 못했고, 일본과 싸우기 위해서는 중국공산당, 소련공산당과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념을 넘어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야 하는데, 남한은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맹신에 빠져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양비론적 시각에서 이승만과 김일성을 비판하고 현 정부를 비난한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한데, 매우 위험한 주장들이다.
4. 한 가지 동의하는 건,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는 시대적 맥락과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었던 일제와 협력해서라도 민족의 미래를 어떻게든 도모해 보려던 사람들, 친일파라고 너무나도 쉽게 매도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분들이 홍장군과 같이 비슷하게 너그러운 접근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다. 소련·중공·북한과 대치하며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던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해 내고 성장시킨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분들이 그렇게 너그러운 해석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5. 일본에 저항한 모든 독립운동, 항일운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특히 독립운동을 빙자해 군자금을 모은다는 핑계로 동족을 약탈하고 학살한 행동들도 제대로 조명되고 평가받아야 한다.
6. 또한 모든 독립운동, 항일운동을 같은 비중으로 평가할 수도 없다. 대한제국 황실을 부활하려던 사람들과, 사회주의 소련을 모국으로 택한 사람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대한민국을 건국해 낸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지금 대한민국 안에서 당연히 달라야 한다. 특히 마르크스와 레닌, 스탈린을 추종한 두 번째 부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고, 한반도에선 이들로 인해 300만 이상이 죽었다. 기독교인들은 우선적인 학살의 대상이었다.
7. 홍범도 장군이 독립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가지고 소련을 택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는 약소국 독립이라는 민족해방전선을 내세운 코민테른의 통일전선전술에 이용당한 것일 뿐이다. 자유시 참변 이후 그에게 독립운동 이력은 찾아볼 수 없고, 그는 소련의 녹을 받다 죽었다. 독립운동에 투신한 개인의 삶과 시대적 한계에 부딪힌 애환은 그것대로 함께 나누고 가슴 아파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을 평가하는 작업엔 그가 추구한 사상과 방향이 결과적으로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돌아보면 공산주의는 일제보다 심각한 해악이었다. 지상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던 스탈린과 마오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각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김일성은 그들과 함께했다.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거짓된 공산주의 사상과 싸워 이겨서 겨우 생존한 나라다.
8. 자유시 참변과 비슷한 무렵, 이승만은 ‘공산당의 당부당’이라는 글에서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간파했다. 나라를 없애고 소련을 모국으로 삼는다면 결국 배반당할 것임을 경고했다. 당시 소련을 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민족을 버리고 소련을 모국으로 삼은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안타까운 삶이 이를 증명한다.
9. 이승만은 1954년 미국 의회 연설에서 “우리가 (공산화된) 중국을 다시 얻지 못하는 한, 자유세계의 궁극적인 승리는 보장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날 연설 때문에 ‘전쟁에 미친 늙은이’로 낙인찍혔다. 1970년에 선포된 닉슨 독트린은 냉전 종식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이것이 결국 중국을 프랑켄슈타인으로 만들었다는 반성적인 고찰이 지금 미국 안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막강한 재력으로 무장한 중국 시진핑의 통일전선전술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한국은 그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있다. 정율성과 홍범도가 논란이 되고 있는 현실도 그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10.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을 반대하는 어느 국방부 출입 기자는 인문학적 소양을 운운하면서 레닌의 소련과 스탈린의 소련이 다르다며 따진다. 그런데 레닌의 소련과 스탈린의 소련을 구별하는 건 김일성의 북한과 김정일의 북한을 구분하는 것과 큰 차이 없다. 이런 구분은 후르시쵸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의 영향과 스탈린 독재를 비판하는 흐름에서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스탈린을 독재자로 만들고 레닌을 합리적인 지도자인 양 받드는 건 우스운 일이다. 레닌은 홀로도모르와 쿨라크 학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스탈린은 그의 지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다. 이런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기자라는 완장을 차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기자는 학계의 입장을 확인해 봤냐며 다그쳤는데, 이에 관해선 조선일보가 정리를 잘했다.
https://v.daum.net/v/20230830142023407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784832?cds=news_edit
11.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바로잡겠다면서 독배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때때로 김일성 독재를 비판하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북한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주체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추구한다면서 사상적 지향은 북한과 함께한다. 무책임한 양비론에 빠져서 이승만과 김일성을 비슷한 수준의 독재자로 배치하는 건, 그것 자체가 본질을 흐리는 사악한 구도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사람들에겐 이러한 구도를 그리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공이다. 이런 양비론이 위험한 것은 동유럽과 아시아 대륙 전체가 공산주의라는 붉은 물에 잠식될 때, 아시아 대륙 동쪽 귀퉁이에서 가까스로 지켜낸 대한민국이라는 기적과 축복을 지독하게 폄하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반도를 넘보는 중국과 북한의 역사무기화전략, 통일전선전술의 쉬운 먹잇감이 된다.
12. 대한민국의 100년을 부정하고 ‘다른 100년’을 주장하는 사람들. 이들은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탐욕과 굴종으로 얼룩진 오욕과 실패의 역사, 외세의존의 역사로 부정하고 저주한다. 따라서 이러한 대한민국은 어떻게든 빨리 없애버리거나 환골탈태해서 새로운 노선과 새로운 체제의 나라로 바꿔버려야 한다는 것이 이들이 말하는 ‘다른 100년’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주장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면서 정략적으로 동조하고 지지해서 숙주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모호하고 감상적인 역사인식과 막연한 민족관이 문제를 증폭시킨다. 공존과 협치, 화합과 일치, 관용과 평화를 말하면서 섞일 수 없는 것들을 섞어 놓는다. 분별없이 중간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반 대한민국 세력, 반 교회 세력을 수용하고 이들마저도 사랑과 관용으로 대하는 것이 예수의 모습이라는 위험한 만용이 지금 교회 안에도 만연해 있다.
13. 안타까운 것은 대학 복음화 운동에 앞장섰던 선배들 가운데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 다리 건너면 대개 연결되는 분들인데, 양들을 책임지는 교회의 목사이고, 선교단체의 대표라는 분들이 이런 사관에 젖어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대학 선교단체들의 좌경화도 이런 분들이 주도했다. 보수정권과 이를 지지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정교분리를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은 전혀 숨기지 않고 교회와 강단, 설교말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크리스천 청년들을 선동해서 광우병 시위, 제주도 강정마을과 촛불집회에 끌고 다닌 사람들. 이들은 지금도 교회와 선교단체를 이용해 후쿠시마 선동과 현정부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데 앞장서고 있다.
14. 정치란 한 나라의 원칙과 가치를 세우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정치는 근본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교회가 정치에 침묵함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결국 지속적으로 알리고 설득할 수밖에 없다. 김어준을 애청하던 친한 친구 녀석이 결국 생각을 바꾼 걸 회상하면서, 무거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져 본다. 하나님의 지혜와 역사하심을 간절히 바라며, 대한민국이라는 과분한 기적과 축복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트루스포럼 대표 김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