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구원의 확신’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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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목사. ⓒ크투 DB

▲이경섭 목사. ⓒ크투 DB

◈‘믿음의 의’

한 부자 청년이 ‘자신의 율법적 의(義)’에 자신만만해하며 ‘나 정도면 영생(永生)은 따놓은 당상(堂上)이겠지!’라는 생각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며 호기(豪氣)를 부렸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제시한 ‘두 번째 관문’도 통과하지 못한 채 절망하여 돌아갔다. 인간의 ‘율법적인 의에 근거한 자신감’은 결코 ‘구원의 확신’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확증해 준 사건이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16-22).”

여기 ‘근심하여 가니라’를 영역(英譯)에는 ‘슬픔이 가득하여 가니라(went away sorrowful)’로 표기했는데, 이는 그의 절망의 정도가 어떠했는지 잘 보여준다. 아마 ‘나의 율법적 의로는 영생 얻기엔 글렀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갔다는 뜻일 게다.

‘율법’은 죄인으로 하여금 항상 그것의 요구에 미달하게 만들어 그에게 ‘죄의식’만을 심어주므로, 결코 ‘구원의 확신’을 줄 수 없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믿음의 경륜 안’으로 들어오기 전 ‘율법의 경륜 안에(율법 아래)’있을 땐 다 그런 상태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갈 3:22-23).”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확신’은 성도로 하여금 담대히 천국을 침노하도록 만든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여기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는 ‘믿음의 경륜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후’를 말하며, 그때 이후로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으로 ‘담대하게 천국을 구하고 획득하게 됐다’는 말이다.

◈‘이신득구’는 단지 ‘쉬운 구원’인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以信得救, 이신득구)’이란 단지 아무 노력 없이 공짜로 얻는 ‘쉬운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믿음’이 단지 ‘구원을 공짜로 얻게 하는 수단’ 혹은 ‘구원을 따 놓은 당상으로 만드는 요술 방망이(a magic wand)’ 정도로 치부될 때, 그것은 공격자들의 말대로 ‘천박한 값싼 구원’이다.

그리고 이런 ‘얄팍한(?) 구원 개념’은 결코 ‘든든한 확신’에 이르게 하질 못한다. ‘믿음’은 ‘값없이 얻는 구원의 수단’이전에, 더 원천적인 의미를 가진다. 곧 하나님이 택자에게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언약적 사랑(헤세드, חֵסֵד)’을 입혀 주는 방편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값없이)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1-4).”

이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엔 ‘값없이’, ‘은혜로’라는 두 개념이 함의돼 있다. ‘값없이’는 인간이 죄로 무능해져 자기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에서이고, ‘은혜로’는 그런 무능한 죄인 중 ‘일부의 선택받은 후사(heir, 後嗣)’에게 그것이 시여(施與)됐다는 점에서다.

로마서 3장 23절은 우리의 ‘칭의(justification, 稱義)’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된 것임을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오늘 ‘이신득구(以信得救)’가 ‘값싼 구원’으로 매도당하는 것은 일부 사람들에 의해 ‘값없이’만 지나치게 부각된 때문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연약한 자에게만 보이는 은혜와 확신

일견 ‘자기의 유능함’을 자각하는 자가 더 ‘구원의 확신(confidence of salvation)’을 가질 법 하고, ‘자기의 연약함’을 자각할수록 ‘구원의 확신’이 약화될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론 정 반대이다. ‘후자’가 더 확신 차다. 이는 ‘구원의 확신’은 앞서 말했듯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각’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자기 죄를 통분히 여기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랐던 ‘세리(tax collector, 稅吏)’가 자칭 의인인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 함’을 받은 사실은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자각’이 ‘구원의 확신’에 더 기여할 수 있음을 추정케 한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눅 18:13-14).”

이는 평생 ‘약함’ 속에서 살았던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자기가 “약할수록 ‘자기 의존’에서 탈피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만을 의지’하므로 강함(혹은 확신의 강함)에 이른다”는 말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the five points of calvinism) 중 ‘인간의 전적 무능(total inability)’과 ‘성도의 궁극적 구원(perseverance of the saints)’이 있다. 둘은 ‘상호 배치되는 조합’처럼 보인다. 곧 우리로 하여금 ‘전적 무능’한 인간에게 어찌 ‘궁극적인 구원’이 담보될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죄인이 자신의 ‘전전 무능’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할 때, 오히려 그것이 그의 ‘강함’이 되어 그로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게 한다. 이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이기 때문이다.

사도 유다 역시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긍휼’이라며, 우리를 향해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1:21)”고 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확신

‘확신(confidence)’은 ‘완성(completion)’ 혹은 ‘완전함(absolution)’의 산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율법을 완성하심(히 7:27; 히 9:26, 요 19:30, 롬 10:4)’으로 ‘인간 편’에서 더 보탤 것이 없게 했다.

‘완전’이라는 뜻의 ‘absolution’가 ‘용서(forgiveness)’라는 의미를 가진 것도 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곧,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시킴으로 우리에게 ‘용서(구원)’를 임하게 했다는 뜻이며, 이는 우리에게 ‘율법의 완성’과 ‘구원의 확신’의 유관함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율법주의(legalism, 律法主義)’는 ‘그리스도의 속죄’만으로는 율법이 완성되지 못하고 ‘인간의 율법적 행위’가 더해져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구원은 언제나 미완성의 ‘현재진행형’이고 이런 ‘미완성된 구원’에는 ‘확신’이 불가능하다.

사도 바울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확신(살전 1:5)’을 말한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율법의 완성’과 ‘그 완성된 율법에 경륜된 믿음’ 에 ‘성령의 부어짐의 결과로 된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미완성 율법주의’엔 ‘믿음의 경륜’도 ‘성령의 부으심’도 없으며 나아가, ‘확신’도 없다. ‘율법의 미완성’은 오히려 ‘결핍’을 낳고 그 결핍은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할 뿐(롬 3:20)’이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학술고문,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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