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예수 믿을 때 한 번 회개했으면 되었지 또 무슨 회개냐?” 하고 반문하는데, 물론 죄인으로부터 용서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회개는 일생에 단 한 번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거듭난 이후 우리는 지속적으로 죄(sins)와 허물(errors)을 주님의 보혈 앞에 정결케 되어야 하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참고적으로, 웨슬리안 구원론에서는 고범죄(wilful sin)와 허물(error)을 구분하는 특색을 보여주는데, 고범죄는 현세에서 성령의 능력에 의해 제압할 수 있는 것으로, 그리고 허물은 인간의 육체와 연약성이 존재하는 한 이 세상에서 계속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더 깊은 회개와 지속적인 회개의 정신이 영혼 속에서 점차 희미해질 때부터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둔해지고 거룩함으로부터 멀어져가게 된다.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께서 돌아가신 사실을 기억할 때, 어떻게 우리가 죄악을 즐길 수 있는가?”(J. C. Ryle) 이미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성령의 회개 사역에 대한 확고한 선언을 볼 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 2:12-13)
신구약을 관통하고 있는 할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좀 살펴보자. 사실 할례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별로 관심 밖일 때가 많다. 그러나 할례에 대한 교훈이 오늘날 크리스천들에게 주는 영적 의미는 자못 심각하다. 특히 죄와 구원에 대해서 지난날 유대인들이 잘못 범했던 허물이 크리스천들에게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교훈은 꼭 청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 사이에 이방인들에게 과연 할례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행 15:5-11). 당시 유대인들은 할례 받았다고 하는 자부심에 부푼 나머지 할례가 주는 더 중요한 내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이 아무리 할례를 받았어도 율법을 범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할례 받은 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라고 책망한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롬 2:25)
그러면 비록 무할례자라 할지라도 율법을 지키면 비록 할례 받지 않았어도 그것을 할례로 인정한다. 이와 같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자부심 속에서 우리의 삶에 아무런 복음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안 믿는 사람들이 차라리 우리를 판단하며 비웃지 않겠는가?(롬 2:26-27) 그러므로 할례 받고 안 받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삶 속에서 주님과의 영적 교제의 삶을 통해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표면적 할례와 마음의 할례가 비교된다(롬 2:28-29). 표면적 할례는 다만 인간에게만 인정될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할례의 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명목상의 신자가 아니라, 진정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의 할례를 받아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는 성령의 인침 받은(고후 1:21-22) 영적 그리스도인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렘 4:4)
하나님께서는 복음 안에서 성령의 사역을 통해 이러한 마음의 할례로서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시는데, 이때 인간은 매우 능동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죄의 길을 버리게끔 양심을 각성시키신다.
거듭나지 못한 자의 양심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거듭난 자는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각성된 양심이 자유의지를 선으로 향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거듭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의 영적 능력이 좀 더 강건한 데까지 나아가서 마침내 충분히 죄악을 이겨내는 죄와는 상관없는 삶에 이르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게 된다.
배본철 성령의삶 코스 대표(성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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