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한 UN 北인권보고관, 정부와 北 인권 관계자들 두루 만나

김신의 기자  sukim@chtoday.co.kr   |  
▲김영호 통일부 장관(오른쪽)을 만나 대화하는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왼쪽). ⓒ통일부
▲김영호 통일부 장관(오른쪽)을 만나 대화하는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왼쪽). ⓒ통일부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최근 방한해 정부 관계자와 탈북민, 북한인권단체들을 만나 북한 인권 상황을 파악했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2004년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에 따라 북한 인권 상황을 조사 및 연구해 유엔 총회와 인권이사회에 이 내용을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살몬은 비팃 문타폰, 마르주키 다루스만, 오헤아 퀸타나에 이은 4번째 보고관이다. 살몬 보고관은 이번 방한 결과를 토대로 북한 인권 상황 보고서를 작성해 10월 열리는 유엔총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방한 첫날인 4일, 살몬 보고관은 손명화 6.25 국군포로가족회 대표,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 소장, 최성용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 김태훈 성공적인통일을만들어가는사람들(성통만사), 송한나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국제협력디렉터, 통일맘연합회의 김정아 대표, 등 북한인권단체장들과 만났다.

손명화 대표는 이날 과거 전시 납북자 진상규명위원회처럼 국군포로 진상규명위 설치 등 공식 보고서 발간을 비롯한 요청 사항이 담긴 서한을 전달했다. 손 대표는 서한을 통해 “국군포로진상규명위 설치를 통한 진상규명 및 종합적 공식 보고서 발간”과 “12월 유엔총회 북한인권 결의에 국군포로와 그 후손들이 겪은 즉결 처형 및 강제구금같은 인권침해 내용 명시”를 요청했다. 또 ‘미국 국방부에 마련된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처럼 “한국 국방부에 국군포로 및 실종자 문제 전담기구 설치”와 “북한 억류를 경험한 국군포로를 위한 특별 훈장 제정”을 요청했다.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 소장은 “중국에서 탈북민들이 강제북송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또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으로서 이것에 대해 꼭 발언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러시아에서도 탈북민들이 2차로 강제북송되고 3차 강제북송을 앞두고 있다. 이를 꼭 의견을 표명해 주시고 다뤄 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홍인식 목사 NCCK 인권센터 이사장, 한미미 세계 YWCA 부회장, 나핵집 열림교회 담임목사 등을 만나 한반도 통일과 북한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6일에는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숭실평화통일연구원 2023 하계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살몬 보고관은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한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 출처를 최대한 늘리는 것”이라며 “핵심 단어는 ‘협력’이고, 우리는 고립되고 구획화된 노력을 계속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또 “세계 어디라도 빈곤 종식이 제일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인데, 북한은 의식주 자체가 풍족하지 않다. 꽃제비 문제 등은 북한에서 얼마나 절도 행위가 창궐하는지 보여주며, 이는 배고픔 때문”이라며 “북한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종식은 사회적·제도적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학대나 박탈을 당하는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더욱더 창의적이어야 하며, 모든 길이 닫힌 것처럼 보일 때도 새로운 길의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전했다.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왼쪽)와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오른쪽).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왼쪽)와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오른쪽).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같은 날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도 만났다. 이 자리에는 북한인권시민연합, 전화기정의워킹그룹(TJWG), PSCORE, 한미래 등 대북 인권단체들도 참석했다. 황인철 대표는 서한을 통해 “올 12월 채택될 유엔총회 북한인권 결의에 1969년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을 명시할 것”과 “유엔 자의적 구금 실무그룹(WGAD)에 본인 외의 다른 KAL기 납북자에 대해 의견을 내줄 것”, “향후 유엔 안보리의 북한인권 논의 중 특별보고관 브리핑에서 해당 사건을 국제 평화와 안보의 문제로 제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KAL기 납북 사건은 1969년 12월 11일 강릉에서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북한으로 납치된 사건이다.

7일에는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났다. 김 본부장은 “최근 북한의 인적 교류 재개 움직임이 포착되는 가운데 탈북민들이 강제 북송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탈북민들이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희망하는 곳으로 안전하고 신속히 이송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북한이 주민 민생과 인권 증진에 써야 할 인력과 자원을 낭비하면서 대신 소위 ‘위성’ 명목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정권 창건일(9·9절) 기념 민간 무력 열병식을 준비하는 등 국제사회의 평화·안보를 해하는 행위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또 지난달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캠프데이비드 정신’ 문건에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협력 강화 내용과 함께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인권 참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가치공유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지속 강화해갈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약 6년 만에 북한 인권 공식회의가 개최된 것과 정부가 이에 참여한 것을 강조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왼쪽)과 김건(오른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7일 오후 면담을 갖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왼쪽)과 김건(오른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7일 오후 면담을 갖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살몬 보고관은 “지난 2차례 보고서를 통해 모든 국가에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협조해 나가겠다”며 “지난달 열린 유엔안보리 북한 인권 공식회의에서 강조됐듯, 북한 인권과 북핵문제를 함께 다뤄갈 필요가 있다.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해 다양한 인권 메커니즘과 조율된 연대를 모색해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전영희 외교부 평화외교기획단장을 만나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향후 협력 방안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했다.

8일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되도록 희생자 가족이나 시민단체와의 만남으로 방한 일정의 첫발을 떼고자 했다. 일부 가족들은 내게 ‘우리가 잊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듯해서 슬펐다. 유엔 인권이사회, 안전보장이사회 등 어디서든 이 이슈를 꺼내려고 한다”며 “현재까지 모든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북한 방문을 거절당했는데, 언제든 북한을 방문할 준비가 돼 있다. 설령 거절당하더라도 정보를 얻을 길은 충분하다”고 했다.

또 북한 내 식량난과 관련해 “고위층이 식량을 독식하고 일반 주민은 식량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다. 북한에선 식량의 절대적 부족뿐 아니라 식량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된다는 게 문제”라며 “한국에서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극단의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인권의 정치화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지만, 한국 정부의 노력을 믿는다. 일부 이견이 있을지 몰라도 북한 주민의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만은 같다”고 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9일 비무장지대(DMZ) 생태평화공원 십자탑 전망대에 올라 분단의 현장을 살피고 있다. ⓒ국경선평화학교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9일 비무장지대(DMZ) 생태평화공원 십자탑 전망대에 올라 분단의 현장을 살피고 있다. ⓒ국경선평화학교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접경지역민의 평화대화모임 현장. ⓒ국경선평화학교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접경지역민의 평화대화모임 현장. ⓒ국경선평화학교

9일에는 접경지역인 강원 철원군을 찾았다. 살몬 보고관은 국경선평화학교에서 열린 ‘평화대화 모임’에 참석하고, 김화읍 생창리 비무장지대(읔) 생태 평화공원 십자탑 전망대를 방문하며 북한 주민과 소통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상당히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배우기 위해서 왔다. 국제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길 원하는지 새겨 듣겠다”고 했다.

또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북한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에서 온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있지만, 직접 북한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남한 접경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인권은 얼마나 더 심각할지 추론할 수 있다고 느꼈다. 여러분에게 북한 주민을 절대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왼쪽)이 박진 외교부 장관과 면담 중이다. ⓒ외교부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왼쪽)이 박진 외교부 장관과 면담 중이다. ⓒ외교부

11일에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과 박진 외교부 장관을 차례로 만나 북한 인권 증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국제 사회와 협력을 강호할 것을 강조했다.

이날 살몬 보고관은 김 장관에게 “지난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에서 북한 인권 침해의 책임을 규명해야 하며 책임 규명과 관련한 이행 방식을 구상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언급했다”며 “한국 정부가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므로 중요한 역할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 장관도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로드맵을 준비 중임을 밝혔다. 김 장관은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협력 체계가 형성됐다. 북핵 문제, 경제·기술·기후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인권 문제도 거기에 포함됐다”며 “북한인권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통일부, 유엔인권사무소, 비정부기구, 연구기관 등이 수집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로서는 최초로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 발간했고 앞으로 정기적으로 발간할 것이며, 살몬 특별보고관이 말한 대로 북한인권 상황 정보와 자료를 유엔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공유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김 장관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개최한 ‘북한 주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대북전단금지법 개정 세미나’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 조항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 영상에서 김 장관은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우리 국민의 표현의 자유 등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며 처벌이 과해 비례성의 원칙 등 죄형 법정주의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북한 내 인권과 인도적 상황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박 장관은 “6년 만에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공식회의가 열렸다. (한국은) 내년부터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논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미국·일본을 비롯한 다른 이사국들과도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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