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해 낭만적이고 관용적인 생각을 하는 성향이 있다. “젊어서 공산주의가 아닌 사람은 가슴이 없다”거나 “한때 젊어서 좌파일 수도 있지” “공산주의는 이론은 좋으나 현실이 나쁜 거지.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오. 나는 예수파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산주의가 1억 명이 넘는 무고한 인명을 학살한 것을 보면 열매가 나쁜 것은 알겠는데, 왜 이론이 좋다고 하나? 그들의 선전을 들어 보라. 맑스, 레닌, 모택동, 김일성 등이 내세우는 포장용, 선전용 용어에 속은 탓이다. “가난한 자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 민중이 진짜 잘 사는 나라, 착취와 억압이 없는 나라,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나라” 문재인은 “사람이 먼저다”라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국민을 우롱하지 않았던가.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라는 선전에 현혹되기보다, 공산주의·사회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통찰한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는 크게 철학이론, 정치이론, 경제이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정치경제적 막시즘과 문화막시즘, 즉 네오막시즘으로 나뉘어서 우리나라를 공략하고 있다. 여기서는 우선 정치경제적인 막시즘을 다루기도 한다.
1. 철학이론
마르크스의 철학이론에는 유물변증법과 이를 역사적으로 적용한 사적(역사적)유물론이 있다. 첫째, 유물변증법은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결함하여 만든 것이다. 헤겔은 “역사는 正-反-合의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데, 이 변화를 이끄는 동력은 절대정신”이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절대정신을 빼고 그 자리에 유물론을 집어넣어 유물변증법을 만들었다. ‘정-반-합의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물질’이라는 이론이다. 물질이란 경제를 의미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역사의 운행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고 물질이라고 믿는다.
둘째, 역사적 유물론은 정-반-합의 역사철학의 원리를 현실 역사에 적용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역사의 변천과정을 ①원시공동사회, ②고대노예제사회, ③중세 봉건사회, ④근대 자본주의사회, ⑤공산사회의 5단계 발전단계를 상정하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사회도 또 다른 사회적 모순으로 계급투쟁이 일어나 마지막 단계로 공산사회로 진보한다는 것이다. 이 공산사회는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이상사회로 모두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이다. 서로 유무상통하는 사회, 모두가 잘 사는 사회 얼마나 좋은가! 이러한 5단계 사회로 진보하게 하는 원동력은 경제력이라고 보았다. 사회를 구성하는 하부구조인 경제력이 변하면, 정치, 법률, 예술, 문화 등 상부구조가 종속적으로 변하여 새로운 사회로 진보해 간다는 것이다.
2. 정치이론
마르크스의 정치이론에는 계급투쟁론, 폭력혁명론, 프롤레타리아독재론 등이 있다. 계급투쟁론은 한 사회 내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계급과 착취당하는 노동계급이 투쟁하여 폭력혁명을 일으켜 이 전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다음의 단계로 진보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경제관계를 부르주아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착취하는 구조로 본다. 두 계급의 대립이 한계점에 이르면, 노동자들이 폭력혁명을 일으켜 자본가들을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체재를 거쳐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로 변혁한다는 것이다.
3. 경제이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필멸론을 먼저 선포해놓고, 노동가치설, 잉여가치설, 착취설 등의 이론을 통해 자본주의가 왜 착취구조이고 왜 노동자에 의해 폭력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를 [자본론]이라는 책을 통해 설명하였다.
원래 생산품의 가치는 투입된 자연, 노동, 자본, 기술의 결합물이다. 어떤 상품의 가치는 노동력, 자본력, 기술혁신 등이 종합되고,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가치설에서는 가격을 정하는 다른 요소는 빼버리고 노동자의 기여도만 인정한다. 따라서 기업가(자본가)들이 가져가는 이익은 원래 노동자들의 몫을 착취해가는 것으로 본다.
마르크스 자본론은 기업경영의 실상을 무시하고, “노동자, 농민 여러분! 분노하고 봉기하라. 당신이 가져야 할 돈을 자본가가 빼앗아가고 있다. 자본가를 없애고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없애고 우리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자”라고 선동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이론은 증명된 이론이 아니고 하나의 가설이었다. 무신론자, 유물론자인 마르크스의 문제는 바로 자본가의 역할과 시장경쟁체제의 장점, 그리고 본성적 이기심을 무시한데 있다. 과거 소련과 동유럽, 중공, 북한 등이 자본가들을 숙청하고 사회주의 통제경제를 시도하였지만, 모두 무참하게 실패한 바 있다. 자유보다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까지, 심지어 가정파탄전술, 통일전선전술, 사법투쟁전술, 폭로전술 등을 활용하여 정권을 쟁취하려는 사악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공산주의의 모토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도덕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법률위반, 거짓말, 속임수, 사실은폐 따위를 예사로 해치우지 않으면 안된다”(레닌). “어떠한 행위도 예컨대 살인이나 . 양친에 대한 밀고라도 - 공산주의의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정당화된다”(공산주의자 신조).
역사의 실험은 끝났다
구소련, 동유럽, 중국, 북한 등은 마르크스-레닌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이론에 따라 정권이 수립됐다. 인류역사상 특정 이념/이론에 기초해 사회가 건설된 것은 20세기 공산국가들이 처음이다.
공산주의 험은 1991년 소련공산당이 해체되면서 70년 만에 사실상 끝났다. 왜 실패했을까? 간단하다. 마르크스의 가설과 이론이 틀렸기 때문이다.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독재론, 자본주의 절대빈궁론, 잉여가치설뿐 아니라 뼈대이론인 경제결정론사관(유물사관)부터 결정적으로 틀렸다. 이론이 틀렸는데 현실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나? 잘못된 계급투쟁론과 프롤레타리아독재이론 때문에 20세기 인류사회의 절반 이상이 억울하게 죽거나 개고생을 했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자유는 인류 보편의 가치다.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 가치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고,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가르쳤다. 북한 주민은 김정은 정권에서 정신적·물질적으로 사실상 노예로 잡혀 있다.
헤겔은 ‘역사의 발전은 자유의 확대과정’이라고 말했다. 자유의 확대로 보다 다양한 개성, 보다 다양한 재능이 생산 현장과 사회 각 부분에 투입되어 제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북한은 1970년대까지도 경제력에서 대한민국을 앞서갔다. 이런 상활이 역전된 것에는 남북 체제가 갖고 있는 자유의 확대과정이라는 과정의 차이가 작용했다. 이승만에 의해 시작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는 민주화의 진통을 거치면서 자유의 확대 과정을 밟아나갔다.
반면 북한은 김일성 가문을 절대군주화, 수령제일주의, 주체사상화하여 자유를 질식시켰다. 북한은 자유와 인권이 없는 노예국가다. 자유가 질식당한 곳에는 획일화되고,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다양한 개성과 재능도 각 영역에서 활동할 기회를 상실한다. 결국 북한은 지상낙원을 추구, 표방했지만, 표현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지옥으로 전락했다. 계급독재체제에서 자유, 인권,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못된 사회주의, 공산주의, 독재정치가 김부자 3대가 나라를 70여 년 통치하는 동안 북한은 세계 최빈국, 곧 거지 나라가 되었다. 문제는 북쪽이 선택한 정치체제, 사상체제에 있었다. 수령절대주의가 경제를 망치는 주범이 확실하다. 잘못된 봉건주의, 공산주의 사상 정치가 경제의 목줄을 죄고 있는 것이다. 이론이 잘못되면, 잘못된 열매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는 모두 근대화라는 거대한 역사적 전개과정의 중요한 단락들이다. 그러나 공산국가 북한의 존재목적은 남조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인민의 인권신장을 위해서라도 경제력에서 50배나 높은 자유 대한민국이 북한을 해방시키는 것이 역사의 순리가 아니겠는가.
정동섭 교수(전 침신대·한동대 교수,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한교연 종교문화쇄신위원,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