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오펜하이머> (1)
북핵, 생존 직접적 위협 악 결집체
원폭 투하로 일제강점기 완전 종료
한국인들, 핵무기에는 양가적 감정
기독교인들엔 신사참배 박해 종결
우상숭배와 전쟁범죄 준엄한 심판
영화 메시지, 한국 관객 인식 충돌
◈서구에서 본 핵무기: 일본인들의, 그리고 전 세계인의 비극을 가중시킨 맨해튼 프로젝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이론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생애에 관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물리학에 전념하던 대학원생 시절(1925)부터 공산주의자로 몰려 모든 공직과 연구 활동에서 강제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던 장년의 시기(1959)까지 약 35여 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영화의 서사 전체는 오펜하이머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맨해튼 프로젝트(1942-1947)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만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나치 독일이 확실한 전쟁 승리를 위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었다.
독일은 1900년대 초반 막스 플랑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 걸출한 이론물리학자들을 배출한 물리학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히틀러는 독일이 보유한 이 물리학 역량을 막강한 군사력으로 전환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1930년대 들어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아인슈타인 같은 유대계 학자들은 타국으로 망명했지만, 하이젠베르크 등 남아있는 물리학자들이 나치 당국의 지시를 받아 1939년부터 독일판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우란 프로옉트(das Uranprojekt)를 시작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미국 이론물리학자들과 군 지휘부가 독일보다 늦게 핵무기 개발을 시작하며 느꼈던 초조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연출은 오펜하이머라는 인간 개인을 둘러싼 삶의 정황과 그의 심리상태를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놀란 감독 특유의 세련된 연출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데 대해서는 평론가들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하지만 <오펜하이머> 개봉 전 이 영화를 둘러싸고 한국에서 잠시 퍼졌던 소문은 우리의 관심 포인트가 작품의 본 서사와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놀란 감독은 많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및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문화에 매우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 인물이다. <다크 나이트> 3부작에서는 악당 라스 알 굴(리암 니슨 분)이 수장으로 있던 ‘어둠의 사도’를 일본식 닌자집단으로 그려냈고, <인셉션>에서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 집단을 이끄는 사이토 회장(와타나베 켄 분)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까닭에 일본 시내와 일본식 가옥이 주된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한다. 또 사이토 회장은 작품 내에서 나름 카리스마와 매력을 갖춘 인물로 그려진다.
할리우드의 대표적 일본 문화 애호가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만큼은 아니더라도, 놀란 감독이 일본 문화에 대해 갖고 있는 우호적인 성향은 이전 작품들을 통해 분명하게 감지된다.
따라서 <오펜하이머> 개봉 전 한국에서는 이번 작품이 핵무기의 끔찍한 위력과 비인간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원폭 피해 일본인들을 선량한 피해자로 묘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물론 작품이 개봉된 현재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 영화 <오펜하이머>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장면은 들어 있지 않다. 미국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결과를 확인한 오펜하이머의 시각에서 해당 사건을 언급할 뿐이다.
◈한국교회가 본 핵무기: 신사참배 압제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준 하나님의 심판
놀란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진지한 휴머니즘이다. 일본에 원폭이 투하되고, 강대국들 간 핵무기 경쟁이 시작되고, 상호 확증파괴의 위태로운 형국 속에 전 인류가 상시적으로 종말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는 20-21세기 현실에 대한 진득한 위기의식이 영화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오펜하이머 개인의 불안정한 심리와 이기적인 공명심, 여기에 전 세계를 아우르는 군사 패권을 향한 미국 지도층의 끝을 모르는 탐욕과 편협함이 합쳐져,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대량살상무기가 탄생한 사실이 영화 전체를 통해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 그것도 한국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놀란 감독과 사뭇 다른 시각으로 이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우선 우리 한국인들에게도 핵무기는 직접적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악의의 결집체임이 분명하다. 북핵 위기가 점차 고조되는 현실에서 핵무기 위협은 우리에게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놀란 감독의 메시지가 충분히 공감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일본에 떨어뜨린 두 발의 핵무기에 대해 우리 한국인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사건은 인류에 커다란 비극이 더해지는 출발점이었던 동시에, 우리 한민족 입장에서는 일제강점기 종료를 완전하게 결정짓는 시점이기도 하였다.
1945년 8월은 이미 일본의 패전이 확정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원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미군의 대규모 일본 본토 상륙과 지지부진한 내륙 게릴라 섬멸전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는 전쟁이 연장됨과 동시에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에까지 전쟁의 불씨가 옮겨질지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만일 그랬다면 미군이 일본 본토 점령에 발목을 붙잡혀 시간을 끄는 사이, 소련군이 일본군을 몰아내겠다는 명분으로 한반도 전체를 공산 괴뢰국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사건이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리틀 보이와 팻 맨, 이 두 발의 폭탄은 일제의 신사참배 박해를 완벽하게 종결시켜 준 한국교회 해방의 배달부였다. 실제로 원폭 투하 사실을 알게 된 한국교회 주요 인사들은 이 일을 일본의 우상숭배와 전쟁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보았다.
한국교회 내부에서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펼치던 이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일본 본토가 전쟁의 겁화(劫火)에 휩싸일 것이라는 예언적 선견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박관준 장로와 안이숙 여사는 1939년 3월 일본 도쿄 중의원 회의장에 들어가 신사참배 반대를 외치면서, 일본이 폭정을 회개하지 않으면 유황불이 떨어지리라는 경고를 담은 건의서를 단상을 향해 내던졌다.
박관준 장로의 경고는 1945년에 이르러 현실화되었다. 일본 주변 제해권과 제공권을 모두 장악한 미군은 커티스 르메이(Curtis Emerson LeMay) 장군 지휘 하에 사이판 기지에서 수백 대의 B-29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일본 대도시와 중소도시 전체를 네이팜탄으로 전소시키는 무시무시한 공습을 진행했다.
거의 모든 일본 대도시와 중소도시가 원폭 투하 전에 이미 거의 잿더미가 된 상황에서 떨어진 두 발의 원폭은 일본의 정치지도자들과 군 수뇌부의 전쟁수행 의지를 완벽하게 좌절시켰다.
사정이 이러했던 까닭에, 오펜하이머가 주도했던 맨해튼 프로젝트, 그리고 그 위력을 실제 일본에 투사하기로 결정했던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결정은 우리 한민족과 한국교회에 해방의 기쁨을 가져다준 위대한 업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영화 <오펜하이머>의 메시지와 한국 관객들의 역사인식이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계속>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