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난민기구, 즉각적인 지원 촉구
대다수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에 의한 군사 점령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탈출한 가운데, 난민과 부상자, 체포되는 이들의 수가 증가하며 인도주의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아르멘 프레스(Armen Press)에 따르면, 나젤리 바그다사리안(Nazeli Baghdasaryan) 아르메니아 총리실 대변인은 9월 30일(이하 현지시각) “지난 한 주 동안 현재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강제 이주된 사람의 수가 10만 417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난민 중 32,200명은 아르메니아 정부가 제공하는 숙소에 머물고 있으며, 아르메니아에 있는 친구나 친척과 함께 머물기로 결정한 이들도 다수였다.
유엔난민기구(UNHCR) 카비타 벨라니(Kavita Belani) 대표는 성명을 통해 “10만 명 중 상당수가 배고프고 지쳐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사람들은 9개월 동안 봉쇄 속에서 지내면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한다”고 했다. 유니세프는 이들 중 30%가 미성년자이며, 상당수가 가족과 헤어졌다고 밝혔다.
아르메니아뉴스(Armenia News)는 바그다사리안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약 405명의 실향민이 아르메니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며 “이들 환자 중 337명은 최근 군사 활동과 폭발 사고로 부상을 입었고, 중환자실에 있는 10명의 어린이들 중 5명은 심각한 상태이며, 1명은 매우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군은 루벤 바르다니얀(Ruben Vardanyan) 전 아르메니아 국무장관 등 아르메니아 시민들을 체포하고 박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르다니얀 전 장관은 나고르노-카라바흐와 국가에 대한 공헌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BBC는 “아제르바이잔의 군사 작전 중 최소 200명의 아르메니아인과 수십 명의 아제르바이잔 군인이 사망했다”며 “연료 창고에서 폭발이 발생해 최소 170명이 사망하고 105명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난민을 돕기 위해 이동식 창고와 주방을 설치했으며, 유엔인구기금은 생리대와 비누를 포함한 키트를 제공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연맹과 적신월사(International Federation of Red Cross and Red Crescent Societies, IFRC)는 카라바흐 국경 근처의 아르메니아 마을들이 임시 난민 수용소로 변했다고 전했다. IFRC의 히참 디아브(Hicham Diab)는 “난민들은 심각한 충격을 받았으나, 희망도 있다”고 말했다.
BBC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민들을 동등하게 재통합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아르메니아 대변인은 이 주장을 “거짓말”이라며 일축했다.
이 지역은 아르메니아인이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이 다수인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이 지역이 러시아 제국과 이후 소련의 일부였던 20세기 초에 그 분쟁의 뿌리가 있다. 1920년대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소련 아제르바이잔 내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를 설립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소련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아제르바이잔에서 탈퇴해 아르메니아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지속된 두 나라 간의 전쟁으로 수만 명이 사망하고 1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후 1994년에 휴전이 체결됐으나, 이 지역에서는 산발적인 폭력 사태가 계속됐다.
2016년에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나흘 간의 전쟁이 발발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2020년 9월, 전쟁이 다시 발발하고 급속히 확대됐으며,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의 지원을 받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과 아르메니아 통제 하의 주변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대규모 군사 작전을 실시했다.
2020년 11월 다시 휴전 협정이 체결됐으나, 양측이 서로를 휴전 위반으로 비난하는 등 긴장은 여전히 높았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민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아르메니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도로인 라친 회랑(Lachin Corridor)이 몇 달 동안 봉쇄되는 가운데 전기도 공급되지 않고 식량 공급도 제한된 열악한 환경에서 지냈다.
이에 스위스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인 국제기독연대(Christian Solidarity International, CSI)는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에게,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지원을 포함해 수 개월간 이어진 봉쇄에 대해 4가지 긴급 대응을 제안할 것을 촉구했다. 또 인종-종교 청소 정책과 관련해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에 대한 제재를 촉구했다.
당시 CSI 회장 존 아이브너(John Eibner)는 “당신은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었으며, 이를 통해 아르메니아 국민과 집단 학살을 혐오하는 모든 이들의 감사를 얻었다”며 “여러분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아제르바이잔이 역사적인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또 다른 국면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말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바이든은 2021년 4월 건국 106주년을 맞아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아르메니아 대량 학살을 인정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아르메니아 대량 학살을 홀로코스트를 포함해 훗날 전 세계가 목격한 대량 학살의 전조로 본다.
2020년 10월에는 약 10만 명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거리를 행진하며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의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