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무덤에 묻기보다, 누군가에게로 생명 이어지길…

김신의 기자  sukim@chtoday.co.kr   |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위한 소모임 4년 만에 재개

▲만남을 열창하는 도너패밀리.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만남을 열창하는 도너패밀리.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요란한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 14일, 서울시청의 시민청 워크숍룸에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던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도너패밀리’ 소모임을 4년 만에 재개한 것이다.

이날 소모임 참석을 위해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을 찾은 김기성 씨(남, 65세)는 지난 2012년 당시 19살이던 아들을 ‘뇌사’로 떠나보냈다. 2010년 퇴직하고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 원주로 귀농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김 씨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도와주던 아내와 아들 탄휘 군 덕분에 초보 농사꾼의 고된 생활도 이겨낼 수 있었다.

함께 호젓한 시골길을 산책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이들 가족에게 어느 날 예기치 못한 불행이 찾아왔다. 땅을 일구느라 여념이 없던 2월 말, 김 씨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 탄휘 군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뒤늦게 병원으로 이송된 탄휘 군은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를 판정받았다.

“차디찬 무덤에 탄휘를 묻고 싶지 않았어요. 아들의 생명이 누군가에게로 이어져 삶이 멈추지 않기를 바랐어요.”

2012년 3월 17일, 꽃다운 청춘이었던 열아홉 소년 탄휘 군은 간과 각막을 기증하며 세상에 깊은 감동을 남겼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김 씨 부부는 이후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한동안 사람들을 등진 채 농사일에만 매달렸고, 김 씨의 아내는 1년간 한국을 떠나 있을 만큼 가족 모두에게 괴로운 시간이 계속됐다. 그러던 2014년, 강원도 영월에서 진행된 도너패밀리 소모임을 찾은 김 씨 부부는 비로소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생명을 나눈 아들 탄휘 군의 이야기를 전하는 김기성 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생명을 나눈 아들 탄휘 군의 이야기를 전하는 김기성 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14일, 4년 만에 다시 소모임에 참석한 김기성 씨 부부는 같은 아픔을 경험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30여 명과 사별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눴다.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선배 도너패밀리들이 노래 ‘만남’을 열창하며 환대의 인사를 건넸다. 도너패밀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처럼 마음의 안정감을 느꼈다는 김 씨는 “누군가의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 탄휘가 오늘따라 더 가까이 느껴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서 특강 에서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위한 맞춤형 심리 치료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도너패밀리들이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시간 가량 진행된 이번 특강은 그림 그리기, 클레이 아트 등을 통해 가족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풀어낼 수 있는 마음 챙김법과 사별의 상실감을 줄이기 위한 긍정 감각 깨우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특강을 진행한 CCC순상담센터 이혜란 센터장은 “뇌사 장기기증 유가족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도너패밀리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는다”며 “유가족들이 건강한 애도 과정을 통해 생명나눔의 자긍심을 거름 삼아 행복한 미래로 나아갈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램 중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설명하는 추금옥 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프로그램 중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설명하는 추금옥 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특강 프로그램 중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존재를 그리는 시간에 고인이 된 아들을 빼닮은 손자의 얼굴을 그려놓고 연신 입을 맞춘 추금옥 씨(여, 67세)는 “그동안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너무 혹사한 것 같다”며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아들과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씩씩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추 씨의 아들 故 이동연 씨(기증 당시 36세)는 5년 전 뇌사로 세상을 떠나며 4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본부 김동엽 상임이사는 “도너패밀리간의 지속적인 교류로 맺어진 깊은 유대감은 서로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되어 왔다”며 “도너패밀리 소모임을 확대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유가족들이 상실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본부는 2013년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인 도너패밀리를 발족하고, 지역별 소모임, 이식인과의 1박 2일 캠프, 1일 추모공원, 기증인 초상화 전시회 등의 예우 프로그램과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를 위한 장학회를 운영하는 등 도너패밀리를 지원하는 사업을 활발히 지원해 왔다. 특별히 오는 10월 21일부터는 본부가 CCC 순상담센터와 손잡고 개발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8주간 진행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에디터 추천기사

행동하는프로라이프를 비롯한 59개 단체가 5일(수) 정오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헌재)의 이중적 태도를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헌재, 낙태법 개정 침묵하면서 재판관 임명만 압박?”

행동하는프로라이프를 비롯한 59개 단체가 5일(수) 정오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헌재)의 이중적 태도를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행동하는프로라이프 연대를 중심으로 바른교육교수연합, 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1인 가구

“교회에서 ‘싱글’ 대할 때, 해선 안 될 말이나 행동은…”

2023년 인구총조사 기준으로 1인 가구는 무려 782만 9,035곳. 전체 가구 2,207만의 35.5%로 열 집 중 네 집이 ‘나 혼자 사는’ 시대가 됐다. 2024년 주민등록인구 통계상으로는 지난 3월 이미 1,000만 가구를 돌파했다고 한다. 2050년에는 전체의 40%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

림택권

“오늘도 역사하시는 ‘섭리의 하나님’까지 믿어야”

“두 개의 평행선으로 이뤄진 기찻길이어야만 기차가 굴러갈 수 있듯, 우리네 인생도 형통함과 곤고함이라는 평행선 위를 달리는 기차와 같지 않을까 한다. 우리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그저 좋은 날에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이 우리에…

조혜련

방송인 조혜련 집사가 이야기로 쉽게 전하는 성경

생동감 있고 자세한 그림 1천 장 함께해 성경 스토리 쉽게 설명 재미 함께, 신학교수 감수 거쳐 조혜련의 잘 보이는 성경이야기 조혜련 | 오제이엔터스컴 | 614쪽 | 55,000원 CGN 에서 성경 강의를 할 정도로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한 방송인 조혜련 집사가 ‘성경…

열방빛선교회 촤광 선교사

“수령 위해 ‘총폭탄’ 되겠다던 탈북민들, 말씀 무장한 주의 군사로”

“수령님을 위해 총폭탄이 되겠다던 북한 형제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거듭나면서, 지금부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위해 남은 생명을 드리겠다고 고백하더라” 열방빛선교회 대표 최광 선교사는 지난 25년간 북한 선교와 탈북민 사역을 …

북한인권재단 출범 정책 세미나

“인권 말하면서 北 인권 외면하는 민주당, ‘종북’ 비판 못 피해”

재단 설립, 민주당 때문에 8년째 표류 중 정치적 논쟁 대상 아닌 인류 보편의 가치 정부·여당·전문가·활동가들 역량 결집해야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이 주최한 ‘8년의 침묵, 북한인권재단의 미래는’ 정책 세미나가 3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

이 기사는 논쟁중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