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칼럼] 필수의료 떠나는 의사들… 급한 불부터 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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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 원장(명이비인후과 원장, 의사평론가,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서울시 의사회 정책이사 역임).
▲이명진 원장(명이비인후과 원장, 의사평론가,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서울시 의사회 정책이사 역임).

지역구마다 내걸린 의과대학 유치 플래카드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의대 정원 증원을 여야가 모두 환영하고 있다. 필수 의료 분야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여당 모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창원 의과대학 유치라는 플래카드를 거리마다 내걸고 있다. 광주에 이미 전남대와 조선의대가 있는데도 전남 출신 야당 의원은 전남에 의과대학이 없다고 칭얼거리는 장면이 매스컴을 탔다. 아마도 자신의 지역구에 의과대학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지 모른다. 선동적 언어 뒤에 숨은 정치꾼들의 꿍꿍이 속내가 너무 훤히 보인다.

대학병원 운영진의 속내

일부 지방 대학 병원 원장들이 의대 입학 정원을 찬성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2023년 의사면허 취득자는 3,181명인데 전국 인턴 정원은 3,258명, 레지던트 정원 3,465명이다. 현재 수련의 허가 인원이 의대 졸업생보다 많다. 기이한 현상은 그동안 대학병원을 포함하여 대형병원들이 교수 확보보다는 수련의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온 관행에 있다. 게다가 의대 졸업생들의 대부분이 수도권의 수련병원을 택하다 보니, 대부분의 지방 의대 병원은 수련의가 부족하여 병원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제대로 된 수련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보다는 값싼 의사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사이지 의대생이 아니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실제로 이들이 의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다. 복지부나 국회의원들은 의대 정원만 증원하면 당장이라도 필수의료 영역이 커버될 것처럼 선동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와 오픈런이 발생하는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

의과대학을 유급 없이 6년에 마치기가 어렵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의과대학 증원으로 입학한 의대생이 유급 없이 6년 후 졸업을 한다고 해도 이들이 필수의료 영역으로 간다는 보장도 없다. 현재 상황에서는 이들이 필수의료 영역의 수련조차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필수의료 영역의 의사와 교수들이 교수 자리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들은 이런 사실을 정말 모르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미 여야 의원 모두 의대정원 증원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지역구 표를 얻을 꿍꿍이 속내를 숨긴 미련한 모습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다.

1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젊은 의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와 여야 의원들이 내세운 의대 정원 증원은 “1초만 생각해 봐도 엉터리 해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실현가능 한 해법을 의사협회가 가지고 오면 논의하겠다고 방송을 통해 공언했다. 그 동안 의사협회가 실현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었을까? 정부가 정말 몰라서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일까? 1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해법을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복지부 장관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 안 된다. 필수의료 영역으로 의사들을 불러오고, 지방 의료 시설에 우수한 의료인력을 확보하는 방법은 원인에 따른 처방을 하면 된다. 응급실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영역의 의사들이 높은 수익을 얻도록 수고에 합당한 높은 수가를 책정해 주고, 피할 수 없는 의료사고나 과오로 인해 감당 못할 배상 책임을 지우거나 감옥에 가두는 일을 없애야 한다.

지방의 경우 지자체에서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하여 지자체의 재정을 투자하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영남권에서 실행되고 있다. 수 십년을 써도 될 보도블록 재설치만 안 해도 가능한 예산이다. 지방에 개원하는 의사에게 세제 혜택을 주거나, 도시보다 높은 수가를 제시하는 방법도 있다. 의료시설 기반이 좋으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교육여건과 제반 지역경제도 좋아지게 되는 선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의대 정원 증원은 급한 불부터 끈 후 논의해도 늦지 않다

현실적인 해법 없는 것이 아니다. 이미 복지부나 여당과 야당까지도 현실적인 해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당장 선심 정책으로 2024년 22대 지역구 표를 생각하다 보니 비상식적인 공약에 여야 국회의원들과 정부의 속내가 맞았을 뿐이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의료인의 근무 여건 개선을 위해, 중증·응급·소아·분만 등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개선하고 인력도 확충해 업무량을 줄여가겠다”고 했다. 아울러 사법 리스크 부담도 덜 수 있도록 의료분쟁 조정제도와 환자에 대한 보상도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국민의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건보 재정의 누수를 줄이기 위한 개혁도 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아니 더 많이 알고 있다.

복지부 장관은 의대정원 증원과 함께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발등의 불부터 끄고 가길 바란다. 국민들은 오늘 당장 나를 치료해 줄 의사가 필요한 것이지 의대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의대 정원 증원은 급한 불부터 끈 후 논의해도 늦지 않다. 선거를 치른 후 이성을 가지고 상식적인 선에서 차분하게 논의해도 늦지 않다. 선거 때마다 지어 놓은 지방 공항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국민의 세금이 줄줄 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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