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101] 제2차 전도여행(29) 아테네(2)
아테네, 신석기부터 사람들 모여
페리클레스, 아테네 황금기 이뤄
B.C. 2세기 로마 점령된 후 몰락
신전 기둥, 104개 중 14개만 남아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사도행전 17장 15절)”.
아테네(아덴)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원전 594년 아테네 시민은 고대 일곱 현인(賢人)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불리는 솔론(Solon)에게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전권을 주었다.
그는 모든 시민이 각자의 소득에 따라 의무가 결정되는 금권(金權, Plutocratic) 정치를 했다. 이어 기원전 560년경 피시스트라투스(Pisistratus)가 빈민층의 지지를 얻어 참주(僭主) 정치를 시작하였다. 참주 정치를 시행하는 동안 아테네에는 많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들어서고, 시인들은 서사시를 읊었다. 그리고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가 민주주의 제도를 시작하였다.
기원전 490년부터 480년경까지 아테네는 그리스 영토를 침공하려는 페르시아군에 맞서 저항하였다. 페르시아와의 전쟁 기간 중 아테네는 두 번이나 불에 타버렸다.
그러나 지도자인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주도로 아테네는 다시 회복하고 해군력을 강화했으며, 기원전 477년 페르시아 침공에 대비하기위해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규합해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 동맹을 맺었다.
이 동맹의 맹주인 아테네는 당시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국가(폴리스)가 되었고, 크고 작은 도시 150여 개가 가맹한 이 동맹은 기원전 404년까지 70년 이상에 걸쳐 유지됐다.
테미스토클레스에 이어 등장한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그의 통치기간 중 아테네 민주정치는 크게 발전됐을 뿐 아니라 예술, 문학도 크게 부흥했다.
그러나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하자,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양분되었다. 성경에 기록된 바울의 전도여행 일정과 경로를 보면,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했으나 그 남쪽에 있는 스파르타를 방문한 적이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스파르타를 좋아하므로 물론 스파르타를 방문하였으나, 바울이 방문한 곳이 아니므로 잠시 옆으로 새 스파르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이 연재 제목이 ‘그리스 여행’이든 그리스에 관한 일반적인 것이라면, 스파르타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겠지만….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가 승리하자, 아테네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기원전 399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어리석은 민중에 의해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기원전 338년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에게 점령당했다.
그러나 필립 2세나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후일 부친을 승계하여 왕이 됨)는 그리스의 높은 문명과 문화를 높게 평가했으므로, 아테네를 파괴하거나 약탈하지 않았다. 그 후 기원전 2세기 아테네는 로마에 점령당하고 기원전 86년 로마 총독인 술라가 약탈을 하였으므로 이를 회복하는데 긴 세월이 걸렸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테네를 방문했을 당시의 아테네는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과거 그리스의 전성기는 지나갔으나, 그래도 도시는 수많은 신전, 기념비, 예술, 과학 등 과거 영광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바울이 보았던 건물이나 신전, 기념비(그리스 신들의 입상 포함) 일부는 아직도 같은 장소에 그대로 남아있다.
시내에 있는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은 일부 기둥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최고 신으로 섬긴 제우스 신을 공경하기 위해 만든 이 신전은 그리스에서 가장 컸던 신전으로, 길이 110.35m, 폭 43.68m이다.
완공에 약 700년이 걸려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통치 시기인 서기 130년 완공됐다. 원래 신전을 받치고 있던 104개 기둥은 오늘날 14개만이 을씨년스럽게 서있고, 2개는 쓰러져 있다. 신전 안에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 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 신전과 신상도 지진에 흔들려 무너졌고(그리스인들이 최고의 신이라고 여겼던 제우스조차 지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무너진 신전 석재는 튀르키예로 옮겨져 다른 건축물 자재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건축 중이던 제우스 신전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우상을 섬기는 신전들과 함께 많은 우상(그리스 신들의 조각)을 본 것은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사도행전 17장 16-17절)”.
권주혁 장로
세계 142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