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 설교 “가난과 고난, 슬픔과 아픔을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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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설교] 추수감사주일

▲김명혁 목사. ⓒ크투 DB

▲김명혁 목사. ⓒ크투 DB

장소: 서울 강남구 강변교회
일시: 2023. 11. 19 추수감사주일
본문: 요 14:1-3, 골 3:1,2, 벧후 3:13

온갖 죄와 허물로 가득한 부족한 죄인인 저의 평생의 삶을 되돌아볼 때 저의 평생의 삶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삶이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릴 때 북한의 신의주와 평양에서 살았는데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께서 신의주 제이 교회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일본 시대 때도 자주 감옥에 붙잡혀 가셨고 공산 주의 시대 때도 자주 감옥에 붙잡혀 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자주 감옥을 찾아가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아버지! 아버지! 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뜸북 뜸북 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 가지도 오신다더니”

저는 또한 평양 감옥에 붙잡혀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리곤 했습니다. “아버지, 저 여기서는 주일 성수를 제대로 못하겠어요, 저 남쪽으로 갈래요.” 저를 한참 바라보시던 아버지께서는 “그러면 가”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나는 너 없이는 못살아” 라고 자주 말씀하시던 어머니 유춘택 사모님께서는 “저 남쪽으로 갈래요” 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울면서 “그러면 가”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11살 때인 1948년 8월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어 남한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함께 오던 어른들은 모두 북한 인민군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서서 손을 들고 서지 않으면 총살을 한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모두 손을 들고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남쪽을 향해 달렸는데 언덕을 넘고 파밭을 달리고 목에 차는 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스릴까지 느꼈습니다.

남쪽의 어느 초가집에 들어갔더니 어느 사람이 “너 어디 가냐” 라고 물렀습니다. “저 서울 갑니다” 라고 대답을 했더니 “누구하고 어떻게 가냐” 라고 물었습니다. “같이 오던 사람들이 모두 잡혀서 몰라요” 라고 대답했더니 그 사람이 저를 해주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태워 주어서 서울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내신 천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주머니에는 “서울 중구 을지로 3가 7번지 라는 주소가 적혀있는 종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서울역에서 내려 을지로 3가 7번지까지 걸어서 이모님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울에 와서 이모님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결국 저는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여러가지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서울 중학교, 서울 고등학교, 서울 대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마음껏 하게 되었고 후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2년 동안 유학 공부를 마음껏 하게 되었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저는 서울 중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1년 동안 총신에서 공부한 다음 1962년 8월 돈 100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비행기 탈 돈이 없어서 한미 재단의 주선으로 돈 104불을 내고 인천에서 아주 큰 미국 군함을 타고 두 주 이상 걸려서 미국 샌프랜시스코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배가 샌프랜시스코에 도착하자 마자 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3일 동안 밤낮 달린 후 필라델피아에 있는 훼이스 신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자 마자 저는 교장 매크레이 박사님의 마음에 들게 되었고 교내 출판사 책임자의 마음에 들게 되어서 많은 도움과 혜택을 누리면서 마음껏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출판사에 가서 마음대로 일하면서 돈을 벌 수가 있었고 일하기를 원하는 다른 외국인 학생들에게 내가 일거리를 마련해서 주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와 도우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2년 동안의 유학생활의 이야기를 다 할 수가 없습니다. 훼이스 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세 개의 학위를 받은 후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아이오와 대학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세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장학금을 받으면서 마음껏 공부를 했습니다.

예일 대학을 졸업할 때는 에드워드 흄 휄로우십이라는 상금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이오와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이 되었지만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장학금이 하나 남아 있는데 이런 저런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에 저는 그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많이 생각을 하다가 아주 낡은 저의 자동차에 짐을 다 싸 가지고 미국 동부에서 미국 중부 아이오와까지 달려 갔습니다.

아이오와 대학의 종교학과 주임 교수인 포렐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입학을 허락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남은 장학금을 저에게 줄줄 알고 먼 길을 달려 왔다고 말했습니다. 포렐 교수님은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더니 그 하나 남은 장학금을 저에게 주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모험심과 담력이 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포렐 교수님은 저에게 어디에서 살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직 살 곳을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동물병원을 하는 동물 병원 원장 집사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외국 학생이 하나 왔는데 혹 있을 곳이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동물 병원에 방이 하나 있는데 밤에 전화를 잘 받으면 무료로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그 동물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가득한 동물 병원이었는데 제가 아주 좋아하는 곳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동물 병원에서 몇 년 동안 무료로 편안하게 살면서 공부를 마음껏 할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와 도우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모험심과 담력으로 훌륭한 목사가 되기 위해서 장학금도 없이 낡은 자동차를 타고 먼 길을 달려온 믿음의 청년을 하나님께서 기특하게 보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것이었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보석으로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와 도우심의 축복을 서술하려고 합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좋은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슬픔으로 마음이 좋게 된다고 했으니 슬픔이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도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우는 자가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왜 우는 자가 복이 있습니까? 우는 자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슬픔을 당한 자가 복이 있습니까? 슬픔을 당한 자는 슬픔을 당한 자들과 함께 슬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 중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별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고, 둘째는 어린 아들 철원이를 이별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별하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주셨습니다.

열한 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별하고 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아픈 일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하는 아픔과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저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바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별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이야기를 편지 두 장을 읽어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첫째 편지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1965년 10월 어느날 북에 계시는 어머니가 저에게 보낸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편지입니다. 둘째 편지는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1997년 1월 어느날 제가 수신인의 주소도 없이 북녘 하늘로 띄어보낸 불효자식의 편지입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보내신 편지를 읽어 드립니다. “내 아들 명혁에게 9월 5일 네의 편지와 동시에 외로이 자라 성인이 된 내 아들 명혁이에 얼굴을 더구나 훌륭하게 된 내 아들을... 나는 보고 십고나.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 보고 십고나. 이 내 기쁨을 지면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명혁아! 나는 네 말 그대로 오래 오래 살어서 내 사랑하는 아들 만날 날을 기다리겟다. 몽중엔들 이저스랴 내 명혁이. 부디 건강하기를 축원하면서. 어머니 글 9월 29일” 저는 지금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저에게 보내신 사랑과 보고 싶음의 편지를 귀중하게 생각하며 제 사무실 벽에 붇쳐 놓고 있습니다.

그 다음 제가 어머님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 드립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부르고 또 불러도 못다 부를 그 이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부르고 또 불러도 좋고 또 좋은 그 이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압수 당했던 어머니의 편지 사본을 20여년 만에 다시 찾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50여년 만에 처음 보는 어머니의 예쁜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나는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불러 보았습니다. 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는 너무나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나를 부르시는 어머니의 애절한 절규를 한마디 한 마디 다시 들으면서 어머니의 가슴에 피 맺힌 아픔과 슬픔을 가슴으로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셨고 너무나 사랑하시다가 나중에는 나를 남쪽으로 떠나 보내시는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맏아들을 스스로 잃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스스로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 뵈올 날을 날마다 기다리겠습니다. 먼저 천국에 간 어머님의 손자인 나의 사랑하는 아들 철원이, 나를 늘 칭찬해 주시면서 나에게 신앙의 뿌리를 심어 주신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누구보다도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신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뵈올 날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바르고 진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어머니가 진실하게 사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위로하시고 축복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1997년 1월 12일 불효자식 명혁 올림.”

둘째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는 슬픔과 아픔을 주셨습니다.

철원이는 1973년 11월 11일 미국 예일대학이 있는 뉴헤이븐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 뇌수종 이라는 불치의 병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4년 동안 머리뼈가 벌어지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며 지내다가 1977년 10월 10일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갔습니다. 저는 만 4년 동안 철원이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체휼하면서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가장 뜨거운 기도와 사랑을 그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이제 제가 철원이에게 써서 보낸 슬픔과 아픔의 편지 일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고생과 수고로운 삶을 다 마치고 이제는 주님의 품안에서 고운 옷을 입은 동무들과 함께 주님을 섬기며 즐거워하는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네가 즐겨 부르던 찬송소리가 지금도 아빠 귀에 쟁쟁하구나. ‘예수께로 가면 기쁘리로다. 걱정 근심 대신 재미 많도다. 예수께로 가면 기쁘리로다.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도다.’ 가사의 뜻을 되새겨 물으며 몇 십 몇 백 번을 아빠와 함께 부르던 그 찬송가의 뜻이 정말 그대로 이루어졌구나!

‘아빠, 걱정 근심이 아야 아야 이렇게 아픈 거지? 재미 많은 게 뭐야? 아프지도 않고 좋고 기쁜 거지? 아빠, 누구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이렇게 물어봐.’ ‘그래 철원아, 누구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철원이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뭐.’ ‘누가 부르셨나?’ ‘예수님이 부르셨지 뭐.’ ‘철원아 네 마음이 슬프나 기쁘나?’ ‘기뻐!’ ‘왜 기쁜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기쁘지!’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괴로울 때마다 ‘아빠 나 천국 가고 싶어. 엄마, 아빠, 누나 다같이 천국 가고 싶어. 천국 가고 싶어. 천국에 가면 구주 예수님이 나 아픈 것 완전히 다 고쳐주시지.’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지.

너는 심한 고통을 당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곤 했었지. ‘아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피 흘렸지! 손에도 발에도 못 박히어 피 흘리셨지! 아빠 예수님은 나보다도 더 아프셨지!’ 네가 하던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가슴은 너무도 귀한 아픔으로 가득히 미어지는 것만 같구나! 너는 예수님 앞에 설 때 그래도 조금은 떳떳함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너 위해 당한 고통의 몇 만분지 일을 너도 경험했으니 말이다. 고난의 축복을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너 철원이었단다.”

하나님께서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체험한 저의 마음과 가슴은 자연히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한 사람들에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후암교회 대학 청년부에 원의숙이라는 믿음이 좋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졌습니다. 결핵 말기였습니다. 마산 결핵요양소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의숙 청년을 만나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마산 결핵요양소로 달려 갔습니다. 위로와 격려를 주기 위해서 갔었지만 오히려 그 때 제가 원의숙 청년으로부터 더 큰 위로와 감동과 은혜를 받고 돌아온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하면서 가장 귀중하고 축복되게 여긴 것은 주일 성수의 예배와 함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 처한 이 세상의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강변교회를 시작하면서부터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귀중한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조춘국 씨를 비롯한 수 많은 암 환자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위로의 손길을 폈습니다. 조춘국 씨는 완전히 변화된 삶, 기쁨과 감사와 전도가 넘치는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를 찾아가 그들을 위로하며 그들에게 우물 10여 개를 파 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또한 슬픔과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방글라데시를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하며 그들에게 안과병원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강변교회의 성도들이 부족한 저의 목회의 사역을 특히 가난과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섬김의 시역을 정성껏 도와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또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한 중국에 있는 연변 조선족 고아 학생들을 23년 동안 돕게 되었는데 모두가 강변교회 성도들의 자발적인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연변에 10여번 다녀왔는데 제가 목사인 것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게 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연변 조선족 고아들이 감사의 편지를 써서 보내곤 했는데 그 편지들 중에 두 가지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께, 안녕하십니까? 이젠 아버님과 인연을 맺고 사랑을 받고 도움을 받으면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안고 살아온지도 거이 1년이라는 시간이 되는군요. 따라서 오늘도 아버님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그리고 아버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면서 아버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편지와 후원금을 받고 이 은혜에 조금이나마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고 저 이 편지에 저의 마음을 담아 올립니다.

저는 양부모가 다 계시는 아이들보다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아버님의 존재가 저에겐 얼마나 큰 정신상의 의탁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버님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전 아마 지금쯤 한쪽 어깨가 툭 떨어지고 마음 한구석에는 늘 그늘이 져있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이 현실이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이것이 하늘이 저에게 준 은혜와 축복인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남몰래 마음속으로 저를 비롯한 이 세상의 불행한 아이들을 관심해주고 사랑해주는 아버님을 더욱 존경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버님의 딸로서,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님의 더욱 밝고 착한 딸이 되기에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5년 3월 9일 딸 예란올림.”

“존경하는 김명혁 할아버님에게. 안녕하십니까? 저는 도문시 석현 제2소학교 4학년 1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서휘강입니다. 오늘 저의 마음은 더 없는 격동으로 설렙니다. 왜냐하면 김명혁 할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안았으니까요. 이처럼 평범한 시골의 저한테까지 사랑의 마음을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전 언제 어디서나 할아버지의 사랑을 잊지 않 을 것입니다.

전 할아버지의 사랑을 학습의 동기로 삼아 앞으로 학습에 더 노력하고 부모님의 말씀도 잘 들으며 덕, 지, 체, 미, 로가 전면 발전한 사회에 유용한 인재로 자라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끝으로 김명혁 할아버지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할아버지도 하시는 일들이 뜻대로 되고 육체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9년 10월 13일 서휘강 올림.”

저는 또한 극심한 가난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서 저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강변교회 성도들이 정성껏 헌금한 1억원의 헌금으로 그들에게 학교를 하나 지어주었고 학교 준공식 예배에 참석했는데 400여 명의 학생들과 100여 명의 어른들이 학교 준공식에 참석해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기뻐했습니다.

학교 준공식을 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이 다음과 같은 노래를 한국말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할렐루야!”

어떤 어린 학생은 저에게 다가와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말이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한국말로 번역을 해서 들려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에게 좋은 학교를 지어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과자와 초콜렛는 선물로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빠가 과자와 초콜렛을 빼앗아 먹었서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서 회복되어 드리는 감사의 예배”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드릴 수 있는 예배 이지만 사실은 이 세상을 떠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천국에서 영원토록 드리게 되는 천국의 예배 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이 천국의 예배를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1,2).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오늘 아침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서 회복되어 드리는 감사의 예배” 라는 주제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보석으로 만들어주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우리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짊어지신 우리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가게 만듭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한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듭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게 만들고 슬픔을 당한 자들과 함께 슬퍼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귀중한 것인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아주 귀중하게 여기면서 살아가신 신앙의 선배님들”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평화의 사도로 쓰임 받은 성 프랜시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합니다.

첫째로, 성 프랜시스는 버림과 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둘째로 성 프랜시스는 모두를 사랑하는 동정과 사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셋째로 성 프랜시스는 가난과 고통 자체가 되면서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자기는 “가난이라는 이름의 여인과 결혼했다” 라고 선언하며 절대 청빈과 완전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모두를 사랑했는데 “가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 까지도 사랑했습니다. “가난은 나의 애처이고 비애는 나의 자매이고 고통과 죽음은 나의 자매입니다”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가난과 고통”을 사랑하는데 그치지 않았고 “가난과 고통” 자체가 되었습니다. 가난하게 살았고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너무너무 사랑했기 때문이고 성자 예수님을 닮은 삶을 그대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사람이었는데 애양원의 나병 환자들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 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두 아들 동인이 동신이가 총살당해 죽은 너무나 “슬프고도 아픈 비극”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고 울면서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결국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계엄 사령관에게 딸을 보내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 라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에게 있어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가장 값지고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습니다. 그 보석은 하늘에서도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너무 높은 수준의 삶을 삶을 살았는데 우리들은 너무 낮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강변교회 성도들에게 진솔하게 고백하고 싶은 것은 저의 간절한 소원은 부족한 저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다가 죽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북한 사람이건 일본 사람이건 중국 사람이건 러시아 사람이건 아프리카 사람이건 아프가니스탄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와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삶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히 가득히 채워주시기를 그리고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도우면서 살다가 죽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래서 함께 울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웃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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