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죽음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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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목사. ⓒ크투 DB

▲이경섭 목사. ⓒ크투 DB

‘죽음에 소망을 둔다’같은 문구를 보면, 36년 전 ‘죄 된 금생(今生)을 마감하고 영생(永生)에 들어가는 것이 복이다’며 32명의 추종자와 함께 집단자살을 한 ‘오대양 박순자’ 류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하기에 주저하지 않으며, 이는 염세적(pessimistic, 厭世的) 의미로서가 아닌 ‘죽음’에 절망하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사도 바울도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낙담하는 이들에게 유사한 말을 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이 아니니 죽은 자들을 위해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다.

성도가 ‘죽음에 소망을 두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그가 이 땅에서 염원하던 ‘지복(the supreme bliss, 至福)’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죽음 없이 이 땅에서만 영구히 산다면 대부분의 ‘성도에게 약속된 지복’은 그에게서 성취될 수가 없다.

이런 사실을 들어, 사도 바울은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살전 4:15)”고 했다. 아이러니컬(ironical)하게도 하나님은 ‘가장 슬픈 경험’을 통해 ‘가장 좋은 경험’에 이르게 하셨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인류 중 ‘죽음에 소망을 두는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후(死後)에만 뵙는 예수님

‘죄에서 구속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금생(this life, 今生)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임재’를 경험한다. 그가 비록 그(그리스도)를 육체로는 보지 못하나 ‘그의 중생(重生)한 영’은 영(靈)으로 그를 본 듯이 믿는다.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 11:27)”.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그럼에도 성도 안에는 여전히 그를 ‘얼굴과 얼굴’로 보려는 갈망이 내재한다(이는 그를 영으로만 보는 것으로는 신앙이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육체를 입고 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을 실현하려면 육체를 벗어야 한다. 물론 그의 생전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면 죽음 없이 그를 뵐 것이다.

이런 갈망은 사도 바울 안에도 동일하게 내재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뵙기 위해 속히 ‘그의 육체’를 벗길 염원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6-8).”

욥 역시 ‘욥기서(Book of Job)’에서 그의 ‘사후(死後)’와 ‘그리스도 재림 시’에 그를 볼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욥 19:25-27).”

중세 수도사 끌레르보의 버나드(Bermard of Claervaux, 1091- 1153)는 우리가 애송하는 ‘구주를 생각만 해도’라는 그의 찬송시에서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를 뵙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는가를 잘 보여준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그리고 그는 이것이 오직 육체 밖에서만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사후(死後)에만 경험되는 천국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또 하나의 지복(the supreme bliss, 至福)이 ‘천국’이다. 성경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약속했고, 또한 그것을 ‘지복’으로 칭송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성도들 역시 천국을 자신들의 ‘복된 본향(a blessed homeland)’으로 알고 그곳에의 입주(入住)를 갈망한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 5:2)”.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그런데 이 ‘천국의 지복(the supreme bliss of heaven)’ 역시 ‘죽음’을 통해서만 확보된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라고 표현했다. ‘죽음으로 육체를 벗을 때 하늘로부터 오는 새로운 거처 곧 천국을 덧 입는다’는 말이다.

그 ‘천국이 지복’임은 그곳은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고(계 21:3-4), 모든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는 곳(계 14:13)”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도 요한은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계 14:13)’고 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천국이 ‘지복 중의 지복’임은 그곳에서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함께 거하기 때문이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계 21:3)”.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계 22:1-4)”.

이런 ‘천국의 지복(the supreme bliss of heaven)’이 우리로 하여금 소극적으로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산다(죽는다)’고 말하도록 만든다.

◈사후(死後)에만 이뤄지는 결산

죽음이 갖다 주는 또 하나의 ‘지복(the supreme bliss)’이라면, 그곳에서 그가 ‘금생에서 살아온 삶의 최종 결산을 본다’는 점에서이다. 주를 위해 순교를 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당하고 충성한 모든 헌신을 그곳에서 보상받는다.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 6:9-11)”.

이름도 빛도 없이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마 6:3)’하여 금생에선 아무의 인정과 보상도 받지 못한 ‘의행(a righteous works)’이 그곳에서 다 드러나,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마 10:42)”까지도 보상을 받는다. 또 금생에서 ‘의인이 악인 되고, 악인의 의인이 된’억울하고 참담한 일들이 백일하에 다 드러나고 제 자리를 찾는다.

이런 의미에서 ‘금생’은 씨를 뿌리는 곳이고 ‘천국’은 금생에서 뿌린 씨앗을 거두는 ‘추수처(秋收處)’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우리에게 금생만 있고 사후(死後)의 천국이 없다면, ‘금생에서 뿌린 것을 추수하는 기쁨’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물론 금생에서도 어느 정도 ‘상선벌악의 공의’가 시행되지만, 그것은 ‘악의 창궐’과 ‘그로 인한 무법천지와 파멸’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이지 ‘상선벌악의 완전한 공의의 시행’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천국에서 성취된다.

다음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의 말도 그것이다. “현세에서 모든 죄가 다 공개적으로 형벌을 받는다면 최후의 심판을 위해선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며, 현세에서 공개적으로 형벌을 받는 죄가 하나도 없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가 없다고 믿게 될 것이다”.

그의 이 말은 ‘현세에서도 어느 정도 공의(公義)가 시행되지만, 완전한 공의는 사후에 이뤄지니 현세에서 공의를 다 보지 못한다고 낙담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음후의 하나님의 판단(천국에서의 보상)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 같다. 곧, ‘모든 것을 금생에서 다 결판내겠다’는 듯이, 이 땅에서 모든 좋은 것을 다 찾아 먹으려하고, 주를 위해 ‘조금의 손해’도 ‘억울한 일’도 당하려 하질 않는다.

이들을 보면, 사도 바울이 비난한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전 15:32)”라는 ‘현세주의자들’의 인생관이 이 떠오른다. 이런 ‘현세주의 교인들’은 천국에서 아무 거둘 것이 없는“불 가운데서 얻은 부끄러운 구원(고전 3:15)”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번 주는 교회가 연례행사로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이다. 다만 지난 ‘일 년 간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그쳐선 안 되겠다. 진일보하여, ‘죽은 후 천국에서 거둘 것에 대한 감사거리’까지 헤아리는 ‘추수감사주일’이었으면 한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잠 10:15)”.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학술고문,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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