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차 한국개혁신학회 학술심포지엄서 고인 100주년 기념
제154차 한국개혁신학회 학술심포지엄이 2일 부산고신대학교에서 ‘이근삼 박사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로 진행됐다.
1부 경건회에서는 정태진 목사(고신 부총회장, 진주성광교회)가 ‘영향력 있는 삶을 살자’(마 13:33)는 제목으로 설교한 후 이정기 총장(고신대)과 안민 장로(고신대 전 총장)가 축사, 한국개혁신학회 회장 소기천 박사(예수말씀연구소 소장)가 인사를 전했다.
소기천 회장은 “산이 있으면 피하지 말고 넘어가야 한다. 고신은 신사참배라는 큰 산을 넘고 옥에 갇히고 출옥하신 분들이 만든 귀한 신학의 순수성을 가진 교단으로 평상시 존경을 해 왔다. 특별히 이근삼 박사님께서 칼빈주의 신학자로서 개혁신앙의 전통을 세워 주셨는데, 오늘 재조명하게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이근삼의 개혁주의적 문화신학’을 제목으로 기조강연한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는 “고신 교단의 조직신학을 대변하는 신학의 거장 이근삼 박사의 신학을 조명하는 일은 의미 있다. 이분의 신학적 사상은 한국 신학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이근삼전집편찬위원회에 의해 10권의 전집이 출간되며 그 정통개혁신학 사상이 알려지게 됐다”며 “저는 이분의 신칼빈주의적 문화신학사상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분이야말로 정통주의 신학자로, 칼빈주의를 문화적으로 확대시킨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학을 잘 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김 박사는 “이근삼 박사는 박형룡, 박윤선, 한상동은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개혁신앙 선조(先祖)로서 개혁주의 정통신학과 신앙을 뿌리내리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이근삼 박사는 고든칼리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등 미국에서 5년, 화란에서 4년 변증학을 공부했며 기초를 쌓았다”며 “이근삼 박사는 불트만, 바르트, 몰트만, 과정신학 등 여러 신학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면서 변증학적인 접근을 했다. 이근삼 박사는 자유주의신학이 시작하는 때에 전통신학을 방어하는 학문적 기초를 놓았다”고 했다.
그는 “칼빈주의와 개혁주의는 동등적인 의미로 해석돼 왔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이근삼은 개혁신학을 계약신학으로 이해했다. 이근삼은 개혁주의 신학은 사변적이거나 이론적 신앙이 아니라 삶과 실천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고, 사변적 신학에서 벗어나 겸손과 절제의 영적 신학이 되도록 했다”며 “특별히 이분의 개혁주의적 문화신학을 추구한 것의 하나의 열매로 나타난 것이 기독교 종합대학이 세워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근삼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은총 사상을 수용한다. 지나치게 특별은총만 강조하고 일반은총을 강조하지 아니할 때 기독교는 변두리가 될 수 있다. 종교개혁적 신학을 계승한다는 것은 세상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반립 사상이 나온다. 이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잘못된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 마르크스 등에 대해 도전할 수 있는 의식을 갖는 것”이라며 “일반은총이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총을 예비한다. 물론 특별은총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일반은총을 등한시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는 문화의 열쇠다. 단순히 기독교적인 음악만이 기독교 문화가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세속주의가 밀려들어 오는 가운데, 교회가 하나님의 일반은총 속에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라며 “개혁주의적 문화의 영역은 크게 세 가지,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다. 참된 개혁교회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끝나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고, 사회 모든 영역에 하나님이 직접 주권하시는 영역주권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김 박사는 “오늘날 미래세대인 MZ세대를 위해 개혁주의 문화신학을 가르치며 문화적 사명을 역설해야 한다. 세상에 있는 탁월한 인문, 사회, 자연 과학적 진리, 음악, 미술, 건축, 조각 등의 예술적 표현 등이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개혁신학은 단지 교의학으로서 교회 내의 신앙고백으로 머물지 않고, 문화신학으로서 4차산업혁명시대에 기독교 신앙과 사상의 시대적 적합성과 규범성을 드러내는 데 귀중한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근삼은 개혁신학을 문화신학으로 정립함으로써 고신교단 신학을 교리 수호에만 집착하고 지성적 성찰과 학문적 교류, 시대적 소명을 소홀히 하는 근본주의 비난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 개혁신학은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과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고 역사적 개혁 교회의 신앙고백을 계승하면서도 국가와 사회에 대한 문화적 사명을 다했기 때문”이라며 “이근삼의 신학은 개혁주의적 문화신학의 이념을 카이퍼의 신칼빈주의로서 정립한 오늘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신학으로서 그의 탄생 백주년을 계기로 연구발표되고 계승발전되어야 할 위대한 신학적 유산”이라고 했다.
이어 이상규 박사(전 고신대, 현 백석대)가 ‘이근삼 박사의 생애와 신학’을 제목으로 기조발제했다. 이 박사는 “저는 학생으로 혹은 휘하의 교원으로 23년간 이근삼 박사의 직접적 가르침을 받았다”며 “이근삼 박사는 고신의 제 2세대 조직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칼빈주의 신학자였고, 이눌서, 구례인, 함일돈을 이어 박형룡- 박윤선의 신학을 계승한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행일치 혹은 학행일치의 모범을 보여 준 학자였다”고 했다.
그는 이근삼 박사의 출생부터 교육 과정, 교수 활동 및 은퇴 이후의 활동부터 『신도민족주의와 기독교의 대결』, 『칼빈, 칼빈주의』, 『현대성경관 비판 Modern Struggle Against the Truth』, 『칼빈주의 문화관 The Calvinistic Concept of Culture』 등 연구와 저술활동들을 소개하면서 “이근삼 박사는 기독교종합대학에 대한 이상을 가진 학자였고, 기독교 문화와 문화적 사명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기독교대학운동을 지지했다. 그의 사상 혹은 신학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신학을 해명하고 발전시키고 확산하는 것이 그의 일생의 과제였다”고 했다.
그는 “그는 칼빈주의를 가르치고 해설했을 뿐 아니라 이 신앙의 터 위에서 일생을 살았다.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 하나님의 영광을 신자의 삶의 목표로 여기기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문화적 사명을 중시한다. 이근삼 박사는 이런 삶을 살고자 했다”며 “그의 신학은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벤자민 워필드의 신학을 수용한 신학이라 할 수 있고, 유럽과 영미의 ‘역사적 장로교회의 신학’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더불어 16세기 종교개혁으로 발원하여 19세기 화란에서 개진되고 미국으로 전파되어 재 진술된 그 신학 전통을 계승한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이근삼은 자신의 신학의 중심을 ‘하나님 중심’ 사상에서 찾고 있다. 그는 이것이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 전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종합적인 특징”이라며 “이근삼 박사는 하나님 주권, 곧 하나님 중심을 칼빈주의 신학의 요체로 파악하고 또 자신의 신학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보민 박사는 이근삼의 신학은 하나님 중심 신학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이근삼 박사는 진정한 의미의 칼빈주의자였고, 함일돈·박윤선·이상근 교수를 이어 고려신학교에 조직신학의 체계를 확립했던 고신의 제2세대 신학자였다. 동시에 그는 믿는 바대로 살고자 했던 신행일치, 학행일치의 삶의 모본을 보여주었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고 일생을 살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사변적이거나 이지적이지 않고 실천적인 칼빈주의자였다”고 했다.
이후 이승구 박사(합신대), 소기천 박사(장신대), 이경직 박사(백석대), 기동연 박사(고려신학대학원), 우병훈 박사(고신대), 권호 박사(합신대), 류길선 박사(총신대)가 각각 ‘칼빈주의와 개혁신학 정착을 위한 이근삼 박사님의 기여’, ‘신토의 변천사에 관한 연구’, ‘이근삼 박사의 신학서론과 신론’, ‘이근삼 박사의 하나님의 창조 이해’, ‘이근삼 박사와 기독교 신앙고백’, ‘설교학의 명료성과 연관성 관점에서의 인근삼 박사의 설교 분석’, ‘이근삼 박사의 개혁신학 연구: 교회의 상징과 세상의 변화라는 이중적 모토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