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칼럼] 고신대 신학거장으로 개혁신학의 초석을 놓은 이근삼 박사 출생 백주년을 기념하며
3. 개혁신학의 실천
1) 성경신앙의 인격화: 신자는 성경적 인격자로 성숙되어야
이근삼은 전집 제7권 제1부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에서 “성경신앙의 인격화”를 강조한다:
“우리 신자들이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대로 믿고 산다고 할 때 한번 더 강조되고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신앙의 인격화(人格化)이다.” “성경적 인격자는 주위의 강요를 받지 않고, 자연적으로 성경에서 말한 선행이 자연스럽게 나나나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성경적 인격자(人格者)에 대하여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 자연스럽게 선행이 나타나는 자이다. 그는 누가복음 10:30-36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면서 강도 만나 죽게된 자에 대하여 보고도 못본채 지나갔으나 선한 사마리안인은 그를 구해주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는 계명을 알고 있었으나 실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연스럽게 선을 행했다.
두 번째, 불의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가진 자이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위선자라고 책망하였다. 사도 바울은 아데네에 우상이 가득찬 것을 보고 거룩한 분노를 느꼈다: “아덴에서 ..온 성에 우상이 가득찬 것을 보고 마음이 분하여”(행 17:16). 바울은 유일하시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에게만 드려야할 예배를 우상에게 드리는 것을 보고 거룩한 분노를 가졌다.
세 번째, 인간관계에 있어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황금율: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2)을 실천하는 자다.
네 번째, 이웃에게 즐거히 베푸는 자이다. 예수님이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가르치셨다. 이근삼은 피력한다: “하나님은 항상 주기를 기뻐하시며, 이 기쁨은 또한 신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구원받은 성경적 신앙에 선 사람은 주고도 기뻐할 수 있고, 항상 행복을 소유할 수 있으며, 죄인에게 복음을 주고, 사랑을 주고, 좋은 것을 나누어주고, 동정을 주고, 눈물을 줄 수 있다”
이근삼은 단지 설교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신앙의 인격화를 구현한 학자로 평가된다. 제자 이환봉은 스승 이근삼의 삶에 있어서 나타난 “성경 신앙의 인격화”에 대해 다음같이 증언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에 가능한 선의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쉽게 양보하시며 자신의 뜻과 달리 결정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시던 선생님, 부당한 일을 당하시고 상기된 얼굴로 돌아오셔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끝내 비난의 말을 입에 담지 않으시고 항상 은인자중(隱忍自重)하시던 선생님이셨다.” 이근삼은 제자 신학생들의 어려운 학업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교회 청중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또한 추석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한 기숙사 제자들에게 사과상자를 보내고, 제자들을 위하여 귀중한 책들을 도서관에 기증하고 제자들의 유학의 길을 열어준 사랑이 많은 스승이었다고 한다.
이환봉은 다음같이 추억한다: “옛날 가르치던 한 신학생이 기숙사 식권을 살 돈이 없어 집에서 싸온 꽁보리밥 도시락을 숨어 먹으면서 학업을 계속하던 이야기를 교회 앞에 전하시면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시던 선생님, 추석 명절에 교회봉사로 고향에 가지 못하고 기숙사에 남아있던 학생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맛있는 사과상자를 보내어 주시던 선생님, 평생을 두고 강사비 등으로 푼푼이 모아 구입하여 친히 연구하시던 손때 묻은 귀중한 수많은 책들을 제자들을 위해 학교 도서관에 모두 다 기증해주신 선생님, 세계 어느 곳으로 가시든지 후진 양성의 일념으로 남달리 애써 부탁하고 그토록 힘써 호소하여 제자들의 유학의 길을 사방으로 열어주신 선생님이셨다.”
2) 개혁신앙의 제자를 길러냄
이근삼은 제자들이 해외에서 개혁신학을 공부하고 개혁신학의 유산을 체험하도록 대학의 학장으로서 교수와 학생들이 “화란의 캄펜신학교, 남아공화국의 포체스트롬대학교, 미국의 리폼드신학교, 보스턴의 고든 콘웰신학교 등지에서 유학하여 공부하고 연구하도록 길을 열었다.
그의 직계 제자 이환봉은 이근삼으로부터 받은 신앙과 학문의 영향을 대하여 2007년 1월 29일 고신대에서 고 이근삼 박사님을 추모하며 유가족과 함께 드린 예배 시에 낭독한 추모사 전문에서 다음같이 표명하고 있다: “저가 이 박사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뵌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산골 합천에 도제직사경회 부흥강사로 오셔서 막연히 목사의 꿈을 키어 오던 저에게 말씀으로 분명한 소명감을 불어 넣어주셨고 특별히 강사실로 불러 좋은 목사가 되도록 축복기도까지 해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마침내 고신대에 입학하였고 교수님의 각별한 보살핌과 지도를 따라 교수님의 전공인 조직신학 전공 학생으로, 교수님의 뒤를 이은 조직신학 담당 교수로, 총장으로 수고하시는 교수님의 총장사역을 보좌하는 교무위원 등으로 계속하여 30여 년 동안 늘 가까이서 교수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따를 수 있는 과분한 사랑을 누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생님을 가진 정말 행복한 제자였습니다.”
3)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기독교대학 건설
이근삼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1970년 12월 22일 고려신학대학인가 전후가 아니라 의예과를 증설하기 위해 고려신학대학 교명이 “고신대학”으로 변경된 1980년 10월 2일 이후였다고 한다. 당시 학교 책임자였던 그는 대학의 세속화를 우려하여 의대 증설 교명 변경 반대 교단 내 인사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근삼은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기독교대학 건설”이라는 그의 문화신학적 입장을 학장의 입장에서 실천에 옮겼다. 그는 기독교 대학 설립의 이념을 학자요 행정가인 학장과 총장으로 구현하였다. 고려신학교는 그의 재직 시에 신학대학과 종합대학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고신대의 양적 발전이 아니라 기독교대학으로서의 학문성과 신앙적 인격성을 갖는 신앙과 학문의 인격 공동체로 내실적 발전하도록 노력했고, 그 배후에는 그의 개혁주의적 문화신학의 이념이 있었다.
그는 1994년 2월 은퇴에 즈음하여 월간 고신과의 대담에서 기독교대학의 건학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와 수업과 함께 신앙인격과 사회적 책임, 자기분야에 대한 연구심과 확실성을 강조하였다: “기독교대학은 학문으로만은 안 됩니다. 기독교적인 신앙인격과 성실성있는 사회적인 책임을 지고 갈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관계나 자기분야에 대한 철저한 연구심과 정확성이 동반되어야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1993년 고신대학 교명을 고신대학교로 변경하여 문교부의 승인을 받아 고신대학교 초대총장이 되었다. 그리고 개혁신학의 학문의 폭을 세계적으로 넓히고자 남아공화국 포체스트룸대(Potchefstroom University for Christian Higher Education)와 유대관계를 맺었다.
1994년 고신대학교 총장으로서 은퇴후에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에반겔리아 대학교(Evangelia University)를 설립하여 췌장암으로 투병하기 전까지 12년간 미국에서 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따라서 “이근삼의 한평생은 개혁주의 신학과 사상의 전수를 위한 아름다운 생애“로서 평가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