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서울의 봄> (1)
40대 이상은 정치 메시지에 호응
20-30대 젊은 관객층 인기몰이?
이야기 흥미롭고 연출 훌륭해서
이들 정치적 견해 반영 결과 아냐
12·12 역시 후일에 종합 평가해야
9시간 보여주고 절대악 평가 종용
특정 정치적 집단 위한 선동 의도
기독교적 관점으로도 납득 어려워
◈군사반란 이야기에 대한 대중의 반응: 카리스마 넘치는 간웅의 일대기에 호응하는 관객들
영화 <서울의 봄>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주도한 12·12 군사반란을 집중 조명한 작품이다. 한국 영화로는 오랜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으며, 현재 천만 관객을 목표로 삼을 만큼 좋은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황정민·정우성·이성민 등이 주조연으로 등장하는 화려한 캐스팅, 잘 짜여진 서사 구조 덕분에 속도감과 긴박함이 적절하게 가미된 영화로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일부 보수 인사들이나 방송인들은 <서울의 봄>이 총선을 노린 좌파 선동 영화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영화 흥행세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화의 소재와 내용, 연출 방식, 그리고 개봉 시점을 감안한다면 이 영화가 진보좌파 진영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는 목표로 제작되고 개봉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영화의 주연이자 제일의 악역 전두광(전두환의 작중 성명, 황정민 분)은 오늘날 보수 정치계의 한 중요한 뿌리라 할 수 있는 민정당 계파의 우두머리였다. 이 영화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은 현 보수 여당의 역사적 치부를 드러내는 영화로서, 총선이 가시권에 들어온 현재 보수 진영에 불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 해서 이 영화의 정치력 영향력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일단 이 영화가 진보좌파 진영에 비교적 덜 우호적인 20-30대 관객에게도 어필하는 이유는 노골적인 정치색에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김성수 감독이 보여준 의외의 출중한 연출력이 이 영화의 주된 성공 요인으로 보인다.
진보좌파 진영에 우호적인 40대 이상 중장년층 관객들이 이 영화의 소재와 정치적 메시지에 호응한다면, 젊은 관객들은 이 작품의 서사와 그 연출 방식이 주는 ‘재미’에 집중하는 듯하다.
확실히 12·12 군사반란은 관객들 혹은 시청자들 입장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소재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동일한 사건을 다룬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이 한국은 물론이고, 뜻밖에 일본에서도 대호평을 받으며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제5공화국>을 본 일본 시청자들은 10·26 사건과 뒤이어 벌어진 12·12 군사반란에서 기묘한 역사적 기시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전국시대 최고 영웅, 오다 노부나가가 측근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으로 혼노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뒤를 이어 전광석화 같은 조치로 노부나가 군을 장악하고 차기 지배자로 등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하다.
이와 함께 <제5공화국>을 본 일본 시청자들은 대통령 암살과 군사반란 같은 정치격변이 비교적 가까운 시점에 바로 옆 나라에서 일어난 사실에 대해 상당한 흥미를 보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전국시대, 혹은 군국주의 일본제국 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일들이 한국에서는 꽤 가까운 과거에 벌어진 사실에 큰 흥미를 보이면서, 한국의 정치적 후진성에 대한 조롱의 시선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본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에 묘사된 전두환에 대해 비교적 호감을 보였던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군사독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제3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전두환이 마치 조조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한 명의 ‘간웅’으로 비쳐지는 듯하다.
최근 <서울의 봄>을 본 20-30대 관객들 역시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여겨진다. 청소년기나 청년기에 군사독재의 엄혹함을 경험했던 50대 이상 중장년층과 달리, 20-30대 관객들은 직접 군사독재를 경험한 적이 없다.
직접 군사독재를 경험했던 이들에게 <서울의 봄>이 과거의 아픔과 정치적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일깨우는 작품이라면,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과거의 흥미로운 정치투쟁을 보여주는 웰메이드 역사영화로 비쳐지고 있으며 그 덕분에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즉 지금의 20-30대 관객의 눈으로 보기에는 정중부의 무신의 난이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그리고 12·12 군사반란 같은 이야기가 거의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의 정치적 판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과거의 흥미로운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젊은 관객층에서 <서울의 봄>이 인기를 얻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고 영화의 연출이 훌륭하기 때문이지, 이 영화의 메시지가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관통하기 때문인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군사반란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배경, 경과, 영향 모두에 대한 종합적 판단의 필요성
따라서 <서울의 봄>의 흥행 현상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이 영화의 실제 정치적 영향보다는 영화 속에 묘사된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탐욕에 대한 관객의 이해와 호응일 것이다. <서울의 봄>은 군의 문민통제라는 중요한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역행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사반란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극악한 범죄행위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군사반란이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거대한 범법행위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의 시각과 달리 한국사 전체 관점에서 군사반란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적 기준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모든 군사반란을 절대악 취급하는 것은 역사 이해에 있어 하나의 큰 오류를 초래한다.
왕권의 정통성과 안정을 극도로 중시하는 유교의 거두 맹자조차, 군주가 심각한 결격사유를 갖는다면 역성혁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당장 한국사를 보더라도 고대부터 군사반란 없이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고주몽, 왕건, 이성계 등 한국사의 창업군주 거의 모두는 군사반란을 통한 역성혁명을 통해 새 나라를 일으켰다.
과거 사료들은 이들이 무슨 구국의 결단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반란을 일으킨 의도에 구국의 결단 같은 것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실상 이들은 자신들의 일족과 가신, 그리고 정파의 생존을 위해, 또한 정치권력을 향한 무한한 탐욕과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거사를 일으킨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들 창업군주들이 이룬 건국의 의미를 무턱대고 폄하하는 역사가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이런 군사반란의 의미를 역사적 진보의 방향과 정도라는 측면에서 좀 더 심층적으로 평가하려 한다.
즉 군사반란이라는 단기적 사건 자체에만 시야를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란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그 이후의 파급효과 등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려 하는 것이다.
12·12 군사반란 역시 길게 보면 이렇게 종합적인 관점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 방송영화계를 지배하고 있는 제작자들 대다수가 진보좌파 정치성향을 가진 탓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사반란을 마치 절대악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고, <서울의 봄> 역시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의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아홉 시간의 일들만을 비쳐주면서, 관객들에게 지극히 단편적인 관점으로 절대선과 절대악을 평가하도록 종용한다.
장기적인 역사적 안목을 무시한 채 한 사건의 단기적 경과에만 집중시키는 이런 메시지 전달법은 대중의 좁은 시야와 감정에 호소하는 선동의 주된 방법 중 하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명백히 특정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선동의 의도가 강하게 투영된 작품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선동의 목적을 차치하더라도, 12·12 군사반란을 완벽한 절대악으로 그려내면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절대선으로 옹립하는 감독의 정치적 메시지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더라도 납득되기 어렵다.
성경 안에도 여러 군사반란 서사가 적혀 있다. 그리고 각각의 반란 서사가 모두 동일하게 죄악으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어떤 반란은 죄악으로 규정되지만, 어떤 반란은 그와 반대로 꼭 필요한 의거(義擧)로 평가되고 있다. 즉 각 군사반란의 배경, 의도, 그리고 귀결과 영향이 종합적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뜻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