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노량>, <고려 거란 전쟁>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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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서울의 봄> (3)

박욱주 박사님의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해 분석합니다.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황정민(전두광), 정우성(이태신), 이성민(정상호), 박해준(노태건), 김성균(김준엽), 김의성(국방장관), 정동환(최한규), 안내상(한영구), 정해인(오진호) 등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12.12 군사 반란을 극화했습니다. -편집자 주

▲12&middot;12 군사반란 당일의 사건들을 중심 서사로 삼는 영화 &lt;서울의 봄&gt;.

▲12·12 군사반란 당일의 사건들을 중심 서사로 삼는 영화 <서울의 봄>.

전근대적 역사관 일방성과 편협함
진보좌파 세력 절대선 내세우려고
사건 당일 상황에만 주목하는 잘못
10·26 유신체제 갑작스러운 붕괴,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불안 요소
북한 도발 및 침략 위협 상존 위기

준비되지 않은 허술한 민주화보다
국제 자유민주진영 힘 보탤 필요성
전두환 하극상 통해 절대권력 획득
야심과 권력욕 부정할 수 없겠지만
평화와 안정 위한 고육책으로 평가
미국과 일본 역시 긍정적으로 반응

<서울의 봄>, 외부 정세는 도외시
정승화·장태완 표면적 행적만 부각
전근대적·일방적 왜곡된 인물 평가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 결여된
복잡·세부적 입장·처지 임의적 배제
부적절한 역사적 시각 견지의 결과

▲12&middot;12 군사반란을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극악한 범죄로 묘사하는 영화, &lt;서울의 봄&gt;.

▲12·12 군사반란을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극악한 범죄로 묘사하는 영화, <서울의 봄>.

◈전근대적 역사관: 자국민의 처지와 이익에만 매몰된 역사인식

최근 한국 역사를 배경으로 삼는 영화들이 개봉되면서, 올해 한국 영화계가 겪었던 극심한 흥행부진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의 봄>이 1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바로 뒤이어 개봉된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쾌조의 흥행세를 보이면서 누적관객 3백만 명을 돌파했다. 이런 동향은 TV 드라마 쪽에서도 두드러진다. 현재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분당 시청률 10%를 기록하며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서울의 봄>이나 <노량: 죽음의 바다>, <고려 거란 전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 한민족의 정치의식이나 민족적 정체성에 대단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민족주의적 태도가 목격된다.

<서울의 봄>은 비록 군부독재 종식에는 실패했지만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만큼 충의로운 군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온갖 정치적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의 투혼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위대한 장군과 수하들의 분전을 보여준다.

<고려 거란 전쟁> 또한 국력의 절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생존과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전력을 다한 영웅들의 모습을 집중 조명한다.

어느 나라에서 제작되었든, 해당 국가의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소설, 영화, 드라마 모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나라의 군사적·문화적·정신적 우월감을 표명하는 내용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이는 사실 전근대적 역사관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19세기 이전까지 인류 문화사에서 역사란 기본적으로 승자들의 업적을 기리는 기록이었으며,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역사 기록은 특정한 정치적, 종교적 관점에 따라 일방적이고 편향적으로 기록되었다.

전 세계의 전근대 역사기록 가운데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조선왕조실록>만 하더라도, 통치이념인 유교에 대한 절대적 우월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조선의 군왕들과 그 신하들의 공과(功過)를 평가하고 있다.

전근대적 역사관은 선과 악, 정(正)과 사(邪)를 비교적 단순하게 구분하기 때문에, 과거의 사실과 인물들에 대한 평가 역시 일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국의 민족적 이념과 이익에 도움이 되면 절대선이고, 그에 반하면 절대악 취급을 받는 것이다.

현재 한국 대중문화계가 그려내는 역사관 역시 이런 전근대적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니, 한국 대중문화계만 아니라 학문적 신중함을 갖춰야 할 역사학계마저도 전근대적 자국민중심주의를 표방한다.

이는 대부분의 인문학 후진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자국의 역사를 지극히 국수적이고 편협한 시각 안에서 바라보게 하는 역사관은 세계사 전체의 맥락 안에서 자민족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을 그려낸 영화 &lt;노량: 죽음의 바다&gt;. 한국 대중문화계와 역사학계의 전근대적 역사관을 반영한 작품이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을 그려낸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한국 대중문화계와 역사학계의 전근대적 역사관을 반영한 작품이다.

◈근대 이후의 역사관: 전 세계 인류의 투쟁과 진보의 정황을 유념한 역사인식

서구 인문학 선진국들은 19세기를 기점으로 유럽의 저명한 사상가들을 통해 새롭게 정립된 역사 개념을 가지고, 국수주의적 역사관의 전근대성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19세기 독일 관념론은 기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역사’ 개념을 혁신적으로 갱신하였고, 이때 갱신된 서구 역사관은 20세기 실존철학 및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과 함께 한 차례 더 심층적인 혁신 과정을 거친다.

독일 관념론의 대표자 헤겔은 역사에 대한 사고의 혁신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역사가 단순히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정신적 진보가 이루어지는 역동적 투쟁의 공간이라고 주장하면서 역사의 개념을 재정의했다.

역사란 인류를 포함한 이 세계 전체에 진보의 힘을 불어넣는 신적 정신의 내적 통합의 과정으로서, 필연적으로 다양한 힘들이 부딪치며 갈등, 투쟁, 전복, 그리고 융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지극히 복잡한 역동성을 지닌다는 점을 강조했다.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관은 자주 기독교적 역사관의 철학적 변용으로 평가된다. 헤겔은 자신의 역사관 속에 성경이 가르치는 선과 악의 투쟁, 종말을 향해 진행되는 섭리의 역사, 그리고 마지막에 세워질 최고로 온전한 지식과 질서에 대한 소망이라는 신앙의 요소들을 받아들여 철학적으로 체계화하였다.

헤겔이 정립한 역사관은 당시 서유럽에서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전근대적 역사인식의 근거를 뒤흔드는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무엇보다 이전까지 각 국가나 지역의 영역에 국한되어 있던 역사의 개념을 전 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오늘날 ‘세계사’라는 개념이 일반화되는 데에는 헤겔을 비롯한 19세기 서구 역사학자들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오늘날 &lsquo;세계사&rsquo;라는 개념이 일반화되는 데에는 헤겔을 비롯한 19세기 서구 역사학자들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오늘날 ‘세계사’라는 개념이 일반화되는 데에는 헤겔을 비롯한 19세기 서구 역사학자들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세계사는 특정 민족이나 정치 세력을 선과 정의의 기준으로 두는 편협하고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각 세력이나 개인의 입장을 함께 살펴가며 양측의 정신적·물리적 접촉과 투쟁의 원인과 결과를 살피는 보다 넓은 역사적 시각을 길러준다.

그리하여 전 세계인의 관점에서 선이란 무엇이며 정의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도록 사고의 지경을 넓혀준다. 특히 인류를 억누르고 있는 생존 투쟁 굴레의 전체적 윤곽을 드러내, 지엽적 투쟁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정신의 보편적 자유를 추구하도록 사고의 방향전환을 촉구한다.

영화 <서울의 봄>의 서사와 장면들은 지엽적으로 볼 때 분명 12·12 군사반란 당시 역사적 실상에 부합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장기적 배경과 세계사적 정황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지극히 협소한 역사관을 보여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에 반대해 투쟁한 진보좌파 민주화 세력을 절대선으로 내세우기 위해, 역사적 정황의 앞뒤는 생략한 채 사건발생 당일 상황에만 주목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10·26 사태를 통한 유신체제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그에 뒤따른 국가의 통제력 붕괴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불안 요소였다. 특히 북한의 도발 및 침략 위협이 상존하는 상태에서 정부와 군 지휘체계가 흔들리는 상황은 다수의 정부 요인과 군 수뇌부에게 대단한 위기로 여겨졌다.

미국과 일본 역시 당시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의 동북아 정세에서 대한민국에 필요했던 것은 준비되지 않은 허술한 민주화가 아니라, 국제 자유민주 진영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정부의 수립과 군 지휘체계의 확립이었다.

▲12&middot;12 당시의 동북아 정세에서 대한민국에 필요했던 것은 준비되지 않은 허술한 민주화가 아니라 국제 자유민주진영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정부의 수립과 군 지휘체계의 확립이었다.

▲12·12 당시의 동북아 정세에서 대한민국에 필요했던 것은 준비되지 않은 허술한 민주화가 아니라 국제 자유민주진영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정부의 수립과 군 지휘체계의 확립이었다.

김재규-정승화-장태완 세력이 당시 정국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 것은 전두환 세력이 독랄(毒辣)하고 간교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던 이들과 국제 열강의 중론이 한국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는 인물의 등장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하극상을 통해 절대권력을 획득하게 된 것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야심과 권력욕의 발로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을 둘러싼 역사적 힘의 충돌과 분쟁이라는 거시적 정황을 고려한다면, 12·12 군사반란은 그 시기 대한민국 국민들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채택된 고육책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당시 심각한 위협에 처한 한국의 산업화와 국제 자유민주 진영에서의 입지를 지켜내기 위한 대한민국 지도층의 불가피한 선택의 결과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국정 장악이었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 역시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소련, 중공, 북한 공산주의 세력의 막강한 위협이 상존하던 시기, 한반도의 정치적 안정과 군사력 보전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과 일본 열도의 안보를 위해 필수불가결의 요건이었던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은 이 모든 외부 정세를 도외시한 채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마찬가지로 박정희 정권의 정치군인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표면적 행적만을 부각시키며 전근대적이고 일방적인 역사관에 따른 왜곡된 인물 평가를 감행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이 결여된, 당시를 살아가던 이들의 복잡하고 세부적인 입장과 처지를 임의적으로 배제해 버리는 부적절한 역사적 시각을 견지한 데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계속>

▲&lt;서울의 봄&gt;은 단편적 시각에 입각해 12&middot;12 군사반란을 바라보도록 연출되어 있다.

▲<서울의 봄>은 단편적 시각에 입각해 12·12 군사반란을 바라보도록 연출되어 있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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