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 특별기고] 2024년 신년 시론(時論)
1. 복음의 기본으로 돌아가라
2. 믿음의 기본으로 돌아가라
3. 삶의 기본으로 돌아가라
4. 교회의 기본으로 돌아가라
5. 사명의 기본으로 돌아가라
2024년 갑진년 용띠 해가 시작됐다. 매번 새해를 맞을 때마다 우리 모두는 희망을 노래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해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매우 비관적이다.
정치적으로는 이념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저질 정치인들의 깽판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 심각한 불황과 불경기를 경험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율과 그에 따른 인구 감소로 나라 자체의 소멸을 염려하고 있다. 교육적으로는 교권 몰락으로 자살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도덕적으로는 성윤리 타락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온갖 종류의 중독자들(마약, 알콜, 인터넷 게임, 포르노 등)이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뿐 아니다. 한국교회도 엄청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결된 후 교회 출석율 회복은 60%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교회 내부적으로 좀처럼 영적 활력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각종 다른 복음 또는 유사 복음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거기에 외부적으로는 강력한 이단들이 등장했다. 이단들의 세력화는 영적 대혼란뿐 아니라, 사회적 대재앙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교회 미래는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큰 위기가 가장 위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역사는 가르친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꿔내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바라볼 때, 2024년은 우리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과 대각성의 원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2024년 한국교회가 마음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 일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back to basics)이라고 믿는다. 다른 어떤 일을 시도하기 전에, 한국교회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갈 때 한국교회는 새로워질 수 있다. 새 힘을 얻어 비상할 수 있다.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치유할 수 있다. 세계 복음화와 선교를 위해 지속적으로 놀라운 공헌을 할 수 있다.
첫째, 복음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복음의 기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피묻은 생명의 복음이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죄인의 모든 죄와 허물을 일거에 덮는 보혈의 복음이다. 죄인을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이신칭의의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복음이다. 옛 자아의 죽음을 선포하는 복음이다. 죽은 영혼을 거듭나고 중생하게 하는 복음이다.
새 창조의 복음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복음이다.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는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하는 복음이다. 성령의 전이 되게 하는 복음이다. 성화 과정에서도 그리스도 피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게 하는 복음이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거룩함과 온전한 제자도를 실현하는 복음이다.
둘째, 믿음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믿음의 기본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때묻은 의복 같은 자기 의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와 선한 행실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주님을 우리 심령의 왕좌에 모시는 것이다. 주님의 절대주권 앞에 우리 자아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주님께 의탁하고 위탁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는 말씀대로, 주의 말씀을 경청하는 기본기를 회복해야 한다. 말씀을 경청하되, 공동체의 맥락에서 경청하는 기본기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균형 있게 경청하는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전체 성경을 경청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참된 믿음은 선한 행실을 잉태하고 있다고 루터는 설파했다. 탁월한 통찰이다. 선한 행실은 믿음이라는 어머니가 낳는 자녀와 같다. 선한 행실은 믿음이라는 사과나무가 자연스럽게 맺는 사과 열매와 같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고 일갈했다. 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귀신의 믿음(약 2:19)이라고 규정했다.
칼빈은 우리가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다 함을 얻지만, 그 믿음은 홀로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 믿음은 행함을 품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목적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엡 2:10). 선행은 신앙고백의 결과이고, 감사의 열매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사람은 선행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셋째, 삶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삶의 기본은 동행이다. 주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11)”.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영생이다. 영생은 우리가 죽은 후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지금 여기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영생, 즉 풍성한 삶(요 10:10)을 살아내고, 누릴 수 있다.
삶의 기본의 또 다른 차원은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위로는 하나님을 우리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을 넘어 원수까지도 품고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타인의 허물을 덮는다. 사랑은 나눔이다.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관대하게 나누는 것이다. 사랑은 섬김과 희생으로 표현된다. 자발적으로 피차 종노릇하는 것이 사랑이다. 심지어 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형제자매를 위해 내려 놓는 삶이 사랑의 삶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넷째, 교회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가 사역의 공간인 물리적 건물을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사람들이되,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고백하는 복수의 사람들이다. 교회는 조직체이기 전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 넘치는 유기체이다. 유기적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야 한다. 영적 성장과 성숙을 멈춘 교회는 참된 교회일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영적 가족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신부요, 몸이다. 교회는 성령의 전이다. 교회는 예수 제자의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군대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양무리이며, 하나님의 밭이다. 모든 성도들의 어머니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며, 왕같은 제사장들의 공동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증인, 대사 공동체이다. 교회는 작은 예수, 작은 그리스도들의 공동체다.
교회의 기본으로 돌아가, 교회를 교회되게 해야 한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새로워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명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한 사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것은 복음전도의 사명이다. 세계 선교의 사명이다. 만민 선교와 땅끝 선교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파송된 ‘선교사’이다(missionaryhood of all believers).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적 사명을 받았다.
전문적인 선교단체에 의해 훈련되고 파송된 사람들만 선교적 사명을 부여받은 선교사가 아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 모두가 그들의 주님에 의해 선교적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선교적 사명을 받은 자로서, 선교적 삶(missional life)을 살아내야 한다.
복음전도와 선교의 사명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가 거하는 전 공간에서, 전 시간대에 이뤄져야 한다. 더 나아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 가정, 학교, 사회, 국가, 세계라는 지리적 공간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 다섯 가지 차원의 기본으로 돌아갈 때, 새로운 미래는 반드시 열릴 것이다. 16세기 유럽 종교개혁이 바로 놀라운 실례다. 21세기 한국교회 개혁은 기본기를 회복함으로 시작될 것이다. 부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긍휼히 여기시길 기도한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시기를 간구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함께 기본으로 돌아가자!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정성욱 교수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MDiv 학위를 받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 지도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아시아 사역처장과 한국어부 Chair를 겸직하고 있다. 영어와 한국어로 35여 권의 저서, 편저, 역서를 출간했다.
국제 커피선교회 C-Connection 이사장, 세계적인 남성사역 MMFC Korea 이사장, 공동체 성경읽기 (Public Reading of Scripture) 운동과 예수동행운동 자문신학자, 그리고 덴버드림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