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들, 급진 이슬람에 환멸… 대규모 개종 예상”

강혜진 기자  eileen@chtoday.co.kr   |  

기독교인 된 ‘전직 테러리스트’, ‘영적 수확’ 준비 강조

▲타이시르 ‘타스’ 아부 사다.  ⓒ방송 영상 캡쳐

▲타이시르 ‘타스’ 아부 사다. ⓒ방송 영상 캡쳐

1990년대 파타(Fatah)당 및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서 활동하다 기독교로 개종한 전직 테러리스트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가자지구의 많은 무슬림들의 (기독교) 개종을 준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트리니티방송네트워크(Trinity Broadcasting Network)에 출연한 타이시르 ‘타스’ 아부 사다(Taysir "Tass" Abu Saada·73)는 이스라엘계 미국 언론인 조엘 C. 로젠버그(Joel C. Rosenberg)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을 뒤흔드는 폭력과 파괴의 규모는 비정상적”이라며 “이것은 ‘시간의 끝’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분쟁으로 가자지구의 많은 무슬림들이 하마스와 급진 이슬람교에 환멸을 느끼게 됐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더욱 마음을 열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가자지구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 무슬림 출신의 사다는 전쟁이 끝난 후 ‘추수’의 일부가 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하마스는 가자지구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있는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아랍인과 유대인들에 대한 계획도 그 계획의 일부라고 믿는다. 그것이 바로 나의 희망”이라고 했다.

자서전 ‘원스 언 아라파트 맨’(Once an Arafat Man)을 펴냈던 사다는 쥬이시루츠닷넷(JewishRoots.net)에 공유한 간증에서 “1967년 6일 전쟁 이후, 신경쇠약에 걸린 것 같았고 증오심이 점점 커졌다. 난 우리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이 패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우리는 수와 규모 면에서 이스라엘보다 더 크고 장비도 더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그들보다 많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들과의 전쟁에서 패했다”고 했다.

이어 “우리 지도자들이 다시 우리를 유대인들에게 팔았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때 우리 땅이라고 믿었던 땅을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의 가족들은 그를 찾아 카타르에 강제로 돌려보냈으며, 반복되는 폭력과 법적 문제로 그의 아버지는 그가 서구에서 계속 교육을 받을 것을 촉구했다. 사다는 1974년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미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또 찰리라는 기독교인을 만났고, 그와 19년 넘게 친구로 지낸 후 궁극적으로 그를 통해 복음을 접하게 됐다.

1993년 찰리가 마침내 기독교 신앙을 소개했을 때, 사다는 영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사다는 “찰리는 내게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려면 유대인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그에게 어떻게 유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유대인들을 미워한다는 것을 알았고, 대부분의 아랍인과 마찬가지로 내게 좋은 유대인은 죽은 유대인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다는 “찰리가 요한복음 1장 1절을 읽어주기 위해 신약성서를 펼쳤을 때, 겁이 나고 꺼려졌다. 그러나 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구절을 읽자마자 심하게 몸을 떨다가 기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밝은 빛 가운데 나타나시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고 의식을 되찾았을 때, 즉시 나의 생명을 그분께 내어드렸다”고 고백했다. 사다의 아내와 아들도 기독교인이 됐다.

사다는 2003년 예수께서 (자신 안의) 폭력적인 죄와 마음의 변화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백하라고 요청하심을 느끼고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그는 체포됐고, 이스라엘 대령은 14시간의 심문 끝에 그를 석방시켰다.

사다는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에게 ‘내가 한때 아라파트를 위해 싸웠지만 이후 기독교인이 되었고,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군인은 울기 시작했고 안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기독교인이 된 이후 사다와 가족들은 중동의 가난한 이들에게 생필품을 제공하는 비영리 복음주의 봉사 단체인 ‘호프 포 이스마엘’(Hope for Ishmael)을 설립했다.

사다는 “가자지구의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섬기고 있는 현지 소식통에 의하면, 분쟁의 여파로 영적 수확이 ‘거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가자지구로 이주해 재건에 참여하기 위해 성지로 돌아왔다. 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은 모든 파괴와 고난, 그리고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으며 ‘왜?’라고 물을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하나님께서 많은 일을 하실 것이고, 나도 그 일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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