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설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실한 신앙 생활
장소: 좋은소식교회
일시: 2024. 1. 14
본문: 요 3:16, 21:15-20, 마 5:43-45, 요1 4:7-12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실한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귀중한 신앙”과 “십자가와 부활 신앙”과 “하나님 사랑과 교회 사랑과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의 귀중한 삶”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1.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귀중한 신앙
첫째로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귀중한 신앙”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신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귀중한 신앙”을 몸에 지니고 평생토록 살아왔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북한의 신의주와 평양에서 목회하시면서 자주 감옥에 잡혀 가시다가 나중에는 평양 감옥에서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을 바라보면서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과 "새벽 기도"와 "순교 신앙"을 몸에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평양 감옥에 잡혀가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아버지, 저 여기서는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과 새벽 기도와 순교 신앙을 몸에 지니고 살 수가 없어요. 저 남쪽으로 갈래요” 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아버지는 저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너무 많이 사랑하시던 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에게 “저 남쪽으로 갈래요” 라고 말씀 드렸을 때 어머니는 울면서 “그러면 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사랑하는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유춘택 사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순수한 사랑과 섬김의 신앙을 몸에 지니고 한 평생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제가 11살 때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어서 남한으로 오게 된 사실은 저로 하여금 한평생을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귀중한 신앙”을 몸에 지니고 살게 만들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남한에 와서 서울 중학교 서울 고등학교 서울 대학교에서 마음껏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2년 동안 마음껏 공부하면서 신학사 신학석사 신학박사 학위 등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국해서는 후암교회에서 5년 동안 교육 목회와 영안교회에서 8개월 동안 담임 목회와 강변 교회를 개척해서 28년 동안 담임 목회와 선교 사역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에서 28년동안 목회하면서 교회 성도들에게 모든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것은 물론 중국 연변 지역의 가난한 학생들을 23년 동안 도왔고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서 극심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을 위해서 학교 하나를 지어주었고 학교 준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400여명의 학생들과 100여명의 어른 지도자들이 학교 준공식에 참여해서 너무 너무 고마워하고 너무 너무 기뻐하는 것을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지난 16년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은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예배 후에 떡과 초콜렛을 성도들에게 전달하고 있는데 성도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는 떡과 초콜렛과 함께 스티커를 전달하고 있는데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스티커를 받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이곳 저곳의 작은 교회들이 교회에 필요한 용돈을 좀 보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용돈을 조금씩 보내주면 아주 고맙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2. 십자가와 부활 신앙
둘째로 “십자가와 부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기 위해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막 8:31). 베드로가 이 말씀을 듣고 십자가와 부활을 받아드리지 않고 거부하려고 했을 때 성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하시면서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마 16:23).
사실 베드로는 그 후에도 십자가의 주님을 3번씩이나 부인하며 배신했습니다. 나중에는 성자 예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로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만을 믿으면서 전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3천 여명에게 생명을 쏟아 바치면서 전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느니라”(행 2:36). 사도 베드로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전파했을 때 3천 여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만을 알기로 그리고 믿고 전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고전 1:2). “하나님께서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느니라”(행 17:31).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사도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9).
저와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하고 또 필요한 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돌리고 또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붙잡을 때 우리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천국에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사는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는 즉시 하늘로 승천하시지 않고 40일 동안 세상에 남아 계시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10여 차례나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아직도 바로 알지도 믿지도 사랑하지도 전하지도 못하는 못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또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셨고, 저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셨고, 저들의 배신을 충성으로 바꾸어 주셨고, 저들의 자기 중심적 삶을 주님 중심적인 삶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주님께서 40일 동안 땅에 계시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신 사건들을 간단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첫번째로 자기를 나타내 보이신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일곱 귀신 들렸던 인간 쓰레기였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자 예수님을 만난 후 주님 앞에 눈물을 쏟으면서 믿음과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자기를 나타내 보이신 사람들은 의심과 두려움에 쌓여 있던 다른 여인들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따라오던 여인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자기를 나타내 보이신 사람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배신자 베드로였습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네 번째로 자기를 나타내 보이신 사람들은 의심과 슬픔에 쌓여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던 이름 없는 두 제자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다섯번 째로 자기를 나타내 보이신 사람들은 부활 주일 날 저녁 두려움과 불안에 쌓여 문을 닫아 걸고 함께 모였던 열 제자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여섯 번째로 자기를 나타내 보이신 사람은 부활의 주님을 안 믿겠다고 고집하던 의심쟁이 도마였습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일곱 번째로 자기를 나타내 보이신 사람들은 부활의 주님을 여러 번 만난 후에도 다시 디베랴 바다로 즉 세상으로 돌아간 일곱 제자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여덟 번째로, 아홉 번째로, 열 번째로, 열한 번째로, 자기를 나타내 보이신 사람들은 500여 형제들과 야고보와 열한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었는데 사도 바울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행 1:3-8).
부활하신 주님께서 열한 번째로 자기를 나타내 보이신 사람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인 살인자였고 교회를 잔멸하던 핍박자요 포행자였습니다. 나중에는 성자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 다음 십자가와 부활의 가장 귀중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십자가”도 희미해졌고 “부활”도 희미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음악적 유행에 너무 치우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끄러운 음악과 화려한 프로그램과 행사에 너무 치우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세적 축복과 성공에 너무 치우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시 초대교회의 순수한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카타콤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만을 바라보고 경배하며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던 초대교회의 순수한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되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인 갈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등이 지녔던 순수한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되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십자가와 부활”의 성자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을 충만이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3.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
셋째로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 사랑”과 “교회 사랑”에 전념하라고 분부하시면서 동시에 “이웃”과 “원수들까지” 사랑하라고 분부하십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구약 시대부터 아주 분명하고 포용적으로 나타나 보이셨다고 생각합니다. 죄악이 하늘에까지 상달한 니느웨 나라와 백성들을 향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욘 1: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 4:10,11). 결국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통해서 니느웨 나라와 백성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축복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또한 성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던 애굽과 앗수르와도 친밀힌 교제를 이루게 되기를 바라시면서 다음과 같은 권면과 예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사 19:23-25). 너무너무 귀중하고 놀라운 이웃 나라들 사랑에 대한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무 이상한 말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3-45). 성자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자 예수님의 극진한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도 요한이 성자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전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는데 회개하고 올바른 믿음을 지니고 살라고 전했습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4,5).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4,16).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계 2:22.23).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를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계 3:1.2).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계 4:19,20).
손양원 목사님의 원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합니다. 한 번은 박옥선이란 여 환자가 발 밑에 난 종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해야 할 만큼 심각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입으로 악취 나는 피고름을 빨아 주었습니다.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에게 모든 사랑과 정성을 다 쏟아 부은 한국의 프랜시스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손양원 목사님의 노래도 그런 심정의 한 표현입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손양원 목사님은 일본 사람도 공산당도 사랑했고 두 아들을 죽인 원수도 사랑했고 버림 받은 나환자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의 박해와 공산당의 박해를 극심하게 받으셨지만 자기를 극심하게 박해하던 일본 사람들이나 공산당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저주는 조금도 지니지 않으시고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섬김의 마음과 몸과 영혼을 지니고 사시다가 자기의 “소원”이신 순교의 죽음을 죽으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손양원 전도사는 1935년 4월 33세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 7월에 졸업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경상도 사람으로서 전라도 여수에 있는 나병원 교회인 애양원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했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39년 7월부터 사랑과 정성을 쏟으며 애양원 교회에서 나환자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1940년 9월 25일 수요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손양원 전도사를 연행해 갔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일경들에 의해 체포되어 여수 경찰서, 광주 형무소, 경성 구치소, 청주 구치소 등에서 8. 15 해방까지 5년 간의 옥고를 치르며 갖은 고문을 다 당했으나 주님을 향한 일편 단심의 신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45년 8월 해방 후 다시 애양원 교회로 돌아와 그의 남은 생애를 애양원 나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에게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었습니다. 출옥 후인 1946년 3월에야 비로서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믿음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10월 21일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예수를 증거하다가 총살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10월 25일 반란군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결국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믿음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10월 21일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예수를 증거하다가 총살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10월 25일 반란군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하셨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결국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10월 26일 두 아들의 시체를 담은 관이 애양원 뜰에 도착했을 때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은 관 위에 엎어져 울부짖으며 비통해 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을 잃은 비통함이 그렇게 컸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총살한 그 좌익 학생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를 설득하여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듣지 않으려는 딸을 설득했습니다.
“동희야 내 말 잘 들어 봐라. 내가 무엇 때문에 5년 동안이나 너희들을 고생시키면서 감옥 생활을 견뎌 냈겠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겠느냐? 제 1,2 계명과 함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어찌 이 명령은 순종치 않는단 말이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치 않는다면 과거 5년 간의 감옥살이가 모두 헛수고요, 너희를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동희야,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그 학생을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 딸은 몇 번이나 반항하며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습니다. 혹 용서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들을 삼는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습니다. “동희야,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
딸은 자기 의지에 반해 아버지의 하나님 절대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결국 딸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동희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동희 양의 말이 끝나고, 동희 양이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 하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손동희 권사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 광경이야말로 오늘까지 내 눈 앞에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인 장면의 한 토막이었다.” 사랑의 원자탄이 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안재선은 살아났습니다. 안재선은 석방이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를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아 부산 고려 성경 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1950년 10월 13일 애양원에서 손양원 목사님의 영결식이 거행되었을 때 옷을 찢으며 통곡하는 1천여명 애양원 식구들 중 더욱 더 슬피 통곡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안재선이었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실한 신앙생활” 이란 제목의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특히 "원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실한 신앙생활”과 특히 "원수 사랑"에 대한 귀중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