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1980년 현실 됐다면? 2010년 ‘아랍의 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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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서울의 봄> (6·끝)

자유를 위한 민주화인가, 민주화를 위한 자유인가?
민주주의도 자유의 수단, 자유 희생시키면 본말 전도
‘서울의 봄’, 도구 불과한 민주주의 우상화한 편협함

▲12&middot;12 군사반란 당일의 사건들을 중심 서사로 삼는 영화 &lt;서울의 봄&gt;.
▲12·12 군사반란 당일의 사건들을 중심 서사로 삼는 영화 <서울의 봄>.

◈민주화의 환상: 서울의 봄 당시 실정에 적합하지 않았던 성급한 민주화

정권을 획득하려는 모든 행동과 노력은 종국에 혁명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누군가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득권층은 원래 향유하고 있던 권리와 편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므로, 이를 탈취하기 위해 반드시 유혈 충돌이 일어난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나마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평화롭고 세련된 형태로 정권이양을 할 수 있는 원리를 제공하지만, 이 원리가 현실에서 원래 목표대로 온전하게 작용하려면 정권 다툼에 참여하는 이들의 양보와 성숙한 자세가 요구되며, 사회 전반에 대중의 삶을 안정시킬 만한 충분한 재화와 자원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1979년과 1980년, 12·12 군사반란부터 5·18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시기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독재정치가 절충된 통치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의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굳건하게 고수했지만, 내부적으로 우리 정부나 사회 전반에는 실제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만한 제도나 생활방식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정부 부처, 사기업, 그리고 가정을 비롯한 민간 영역 전체에 형성된 모든 인간관계는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으며, 전체주의적 질서가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이기도 했다.

이는 정부와 민간 전 영역에 군부의 주도권이 확립돼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및 기업 요직에는 군 출신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대단히 가혹한 분위기의 군 복무를 경험한 일반 시민들은 군대 식의 상명하복 질서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에 별다른 반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선거를 통해 군부 출신이 아닌 야권 민주화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한다는 것은 당시 한국 시대정황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것이었다. 당장 군부 출신이 아닌 행정부 수반 및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군인들이 순순히 받들 리 없었다. 특히 새로운 문민정부가 군부가 쥐고 있던 권리와 편익을 박탈해 민간으로 돌리려 할 경우, 군부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만무했던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이 선보이는 역사관의 맹점은 당시 우리 대한민국의 이런 구체적인 정치적·사회적 정황을 무시한 채 군부 내 권력다툼을 협소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의 나이는 올해로 62세다. 12·12 군사반란 당시 막 대학 입학을 했던 그가 당시 사회 분위기를 몰랐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서울의 봄>에서 김성수 감독은 1979년과 1980년 당시 야권의 민주화 지도자들에게 즉각 권력이 이양되지 않은 것을 큰 역사적 비극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드러낸다.

물론 전두환 일파의 정권 장악이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그 반대편 정승화-장태완 일파가 정권을 장악했다 해서 민간으로의 정권 이양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리라 확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과연 정승화 측이 영화 <서울의 봄>이 순진하게 예상하는 것처럼 정권을 잡았을 때 순순히 민간의 야권 민주화 지도자들에게 권력을 넘겨줄 만큼 민주화 열망이 넘치는 이들이었을까?

▲과연 정승화 측이 정권을 잡았을 때, 영화 &lt;서울의 봄&gt;이 순진하게 예상하는 것처럼 순순히 민간의 야권 민주화 지도자들에게 권력을 넘겨줄 만큼 민주화 열망이 넘치는 이들이었을까?
▲과연 정승화 측이 정권을 잡았을 때, 영화 <서울의 봄>이 순진하게 예상하는 것처럼 순순히 민간의 야권 민주화 지도자들에게 권력을 넘겨줄 만큼 민주화 열망이 넘치는 이들이었을까?

◈민주화의 실상: 여건이 받쳐주지 않을 때는 오히려 자유를 훼손하는 민주화

그런데도 <서울의 봄>이 이렇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을 예상하고도 12·12 군사반란의 실상을 왜곡해 묘사하는 이유는 김성수 감독의 민주화에 대한 맹목적 신념 때문이다. 직접선거에 의한 문민정부 출범이 대한민국의 모든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며 역사의 절대적 진보라는 굳건한 확신이 이 영화의 메시지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아쉽게도 김성수 감독이 생각하는, 그리고 한국 진보좌파 인사들이 생각하는 민주화는 우리 현실에 대한 절대적 대안이 아니다. 어떤 정치체제 혹은 정치집단이 진정 국민들의 삶을 안정으로 이끌 것인지 판단하는 지혜는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민주화 혁명은 군중심리가 내뿜는 막대한 열의 때문에 이런 상대성과 유동성을 무시한채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민주화라는 가치를 신앙처럼 받드는 이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역시 실상은 처참하고 형편없는 것이었다. 숭고한 이상이라는 명분 하에 온갖 협잡과 정권욕이 정당화됐고, 갖가지 비열한 범죄와 잔혹한 학살이 자행됐다.

그런 혁명에서 진정한 피해자들은 바로 순진하게 민주화의 이상과 원리를 믿고 지도부의 방침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며 혁명에 동참한 이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온전하게 누릴 수 없는 권리를 위해 삶과 생명을 내던졌다.

“예전에 우리는 왕을 죽였지. 너무 빨리 세상을 바꾸려 한 거지.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새로 온 왕을 섬기지. 그는 과거보다 더 나을 것도 없어.” 프랑스 혁명의 처참한 결과를 풍자하는 영화 <레미제라블>의 촌철살인과 같은 이 대사는 민주화 이상의 허상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프랑스 혁명의 처참한 결과를 풍자하는 영화 &lt;레미제라블&gt;,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민주화의 폐해를 보여준다.

▲프랑스 혁명의 처참한 결과를 풍자하는 영화 <레미제라블>,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민주화의 폐해를 보여준다.

민주화의 이 같은 난맥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특히 여건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화를 시도할 때, 번영과 안정보다는 침체와 불안, 분쟁이 가속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010년 12월, 튀니지 혁명으로 시작된 ‘아랍의 봄’이 중동 각국에 펼쳐놓은 참상들은 그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다. 중동 전체에 번진 이 민주화 시위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군부의 압제 강화나 내전 등으로 귀결되었다.

서울의 봄, 5·18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 당시 복음적 목회자와 교회들은 교인들, 특히 기독교인 대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당시 민주화 세력은 이런 교회의 움직임을 시류에 영합하는 비겁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말린 이유는 세 가지 정당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정교분리 원칙을 지켜, 신앙에 정치이념이 누룩과 같이 섞여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는 영적 복에 비한다면 허망하기 그지없는 세속의 참정권 때문에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는 어리석음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셋째는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에서 ‘자유’를 ‘민주주의’보다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신앙의 자유, 복음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살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사회를 원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란 이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만일 ‘민주주의’를 위해 ‘자유’를 희생시킨다면, 그것은 목적과 수단,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오늘날 진보좌파 세력이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 신앙의 ‘자유’를 위협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실을 유념한다면, 서울의 봄 당시 복음적 목회자들은 성경이 가르쳐준 지혜를 따라 선견지명을 가졌던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은 도구에 불과한 민주주의를 절대적 목적으로 우상화하는 편협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파했고, 민주화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품은 많은 이들이 그것에 호응해서 영화를 관람했다.

이 영화가 2023년 대한민국 최고 흥행작이 된 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여물지 못한 정치관·세계관을 반영한다. 이는 민주화 역사를 자세하게 공부하고 깊이 살피는 일을 귀찮게 여기는 이들이, 영화 한 편을 관람하고서 민주화에 사명을 바치는 ‘깨어 있는 시민’인 것처럼 행세하는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민주화 역사를 자세하게 공부하고 깊이 살피는 일을 귀찮게 여기는 이들이 영화 한 편을 관람하고서는 민주화에 사명을 바치는 깨어있는 시민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민주화 역사를 자세하게 공부하고 깊이 살피는 일을 귀찮게 여기는 이들이 영화 한 편을 관람하고서는 민주화에 사명을 바치는 깨어있는 시민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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