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지인들, 정체성 숨겨… 보수 가톨릭 교계, “모독당했다” 분노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의 유서 깊은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 Cathedral)에서 트랜스젠더이자 무신론자, 전직 매춘부로 유명했던 세실리아 젠틸리(Cecilia Gentili)의 장례식이 진행돼 논란이 일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등 외신은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에서 트랜스젠더의 장례식을 치른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며 관련 소식을 전했다. 세실리아 젠틸리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2000년도 초반 서류 미비(불법) 이민자로 미국에 들어 왔으며, 몸을 팔아 돈을 벌고 헤로인 등 마약에 취해 살아 온 인물이다.
이에 따르면, 이날 1,000명이 넘는 애도자들(그 중 수백 명은 트랜스젠더)이 화려한 미니스커트, 홀터 탑, 망사 스타킹, 호화로운 모피 스톨, 100달러 지폐를 접어 만든, 등이 노출된 의상 등을 입고 장례식을 찾았다. 미사 카드와 제단 근처의 영정 사진에는 시편 25편 본문 위에 ‘복장 도착자’, ‘창녀’, ‘축복받은’, ‘어머니’라는 뜻의 스페인어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한 가톨릭 매체는 “예배에 참석한 많은 이들은 매춘부 복장을 하고 통로에서 춤을 췄고, ‘아베 마리아’를 ‘아베 세실리아’로 바꿔 부르며 ‘모든 매춘부들의 어머니, 세실리아’를 외치기도 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젠틸리는 무신론자였지만 여성 오프 브로드웨이쇼 ‘레드 잉크’(Red Ink)를 통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추구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로서 나를 온전히 포용하는 신앙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교회에서 다시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트라우마로 남아 무신론자가 됐다”고 전했다.
뉴욕 로마가톨릭 대교구의 대변인 조셉 즈윌링은 이 성당이 그녀의 장례식을 주최하기로 합의했을 때 젠틸리의 배경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말을 아꼈다. 뉴욕시에는 약 12개의 동성애 친화적 가톨릭 교구가 있지만, 대교구 소재지인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은 그 중 하나가 아니다.
이와 관련, 장례식을 주관한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가 카이엔 도로쇼프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은 상징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젠틸리와 비슷하기에, (나를 포함한) 젠틸리의 친구들이 이곳에서 장례식을 치르길 원했다”며 “성당과 장례식 일정을 조율할 때 젠틸리가 트랜스젠더라는 점을 일부러 숨겼다”고 털어놓았다.
성당 측 역시 장례식 당일까지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성당을 담당하는 엔리케 살보 신부는 지난 17일 뉴욕대교구 홈페이지를 통해 “15일 예배를 주최하기로 합의했을 당시 젠틸리의 배경을 알지 못했다”며 “성당 측은 (젠틸리의) 유족과 친구들이 가톨릭 신자를 위한 장례 미사를 요구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우리의 환영과 기도가 이렇게 신성 모독적이고 기만적인 방식으로 폄하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교계도 찬반으로 나뉘었다. 일각에서는 성소수자 역시 교회의 일부라는 점을 강력하게 상기시켰다며 트랜스젠더 장례식을 지지했다. 특히 사순절이라는 시기도 성소수자들 포용하기와 잘 맞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가톨릭보트(CatholicVote)를 비롯한 미 가톨릭계는 “반(反)기독교 세력인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가들이 일부러 신성한 예배 장소까지 들어와 기독교 신앙을 조롱했다”고 분노했다. 이들은 젠틸리가 트랜스젠더임을 숨기고 장례식 일정을 짰다는 점에 대해,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가들이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