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중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
이제는 고인이 되신 김명혁 목사님은 매 주일 전국 곳곳의 작은교회를 손수 운전해 찾아가 설교 사역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홈페이지에 한두 달 뒤 예정된 설교문을 미리 게재하기도 하셨습니다. 매주 화요일이면 연락하셔서 “이번 주에는 OO교회를 간다”며 홈페이지 설교문을 ‘참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혹은 다음 날 본지 온라인 홈페이지에 목사님의 설교문이 게재되면, 가끔 연락도 주셨습니다. 더 이상 목사님의 육성을 들을 순 없지만, 홈페이지에 미리 게재해 놓으신 설교문들을 미처 전하지 못한 유언처럼 여기면서, 마지막까지 계속 게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전하지 못한 장소: 김천 상남교회
전하지 못한 날짜: 2024년 2월 25일
전하지 못한 본문: 행 7:55-60,빌 1:20,21,23,24
부족한 제가 이따금씩 김천 상남교회를 방문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하는데 오늘은 박연수 목사님이 저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선교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중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1.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신앙
첫째로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신앙”보다 다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신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부족한 저는 어릴 때부터 한 평생을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귀중한 신앙”을 몸에 지니고 살아왔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북한의 신의주와 평양에서 목회하시면서 자주 감옥에 잡혀 가시다가 나중에는 평양 감옥에서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을 바라보면서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과 “새벽 기도”와 “순교 신앙”을 몸에 체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평양 감옥에 잡혀가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아버지, 저 여기서는 주일 성수와 예배 드림”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저 남쪽으로 갈래요” 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아버지는 저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너무 많이 사랑하시던 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시던 어머니에게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는 울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사랑하는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유춘택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순수한 예배와 사랑과 섬김의 신앙을 몸에 지니고 한 평생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결국 저는 11살 때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어서 남한으로 온 다음 가난과 고남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한 평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크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부족함이 전혀 없는 넉넉한 삶을 한 평생 살아오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한 평생 병원에 가는 일도 모르고 건강한 몸과 삶을 지니고 넉넉하게 살아오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는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남한에 와서 서울 중학교와 서울 고등학교와 서울 대학교에 다니면서 마음껏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2년 동안 이곳 저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신학사 신학석사 신학박사 등의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국해서는 후암교회에서 5년 동안 교육목회와 영안교회에서 8개월 동안 담임목회를 했고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28년동안 담임 목회와 선교사역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에서 28년 동안 교회 성도들에게 모든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것을 물론 중국 연변 지역의 가난한 학생들을 23년동한 도왔고 악의 촉이라고 불리던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서 극심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을 위해서 학교 하나를 지어주었고 학교 준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400여 명의 학생들과 100여 명의 어른 지도자들이 학교 준공식에 참여해서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너무너무 기뻐하는 것을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제가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움에는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일 마다 주로 방문하고 설교하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곤 하는데 작은 교회 성도들과 어린이들이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 십자가와 부활 신앙
둘째로 “십자가와 부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과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땅에 오셔서 33 년 동안 온갖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핍박과 저주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 인해 심판과 저주를 받아 마땅한 우리 죄인들이 성자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섬김으로 죄 사함과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일꾼들이 되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아서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의 색깔이 어떠합니까? 화려하고 찬란한 색깔입니까? 아닙니다. 어둡고 캄캄한 색깔입니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너무 아름답고 너무너무 축복된 삶괴 죽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달려서 죽으실 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
3. 스데반 집사
셋째로, 스데반 집사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 집사는 일곱 집사들과 함께 구제에 전력을 다했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당당하게 전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게 되었는데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들어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계신 것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사모하게까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 6:1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5-60).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분노와 증오와 저주의 모습은 전혀 지니지도 않았고 나타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성자 예수님처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축복의 모습만 지니고 나타내 보였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너무너무 성자 예수님을 닮은 귀중하고 순수한 모습만 지니고 나타내 보였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이렇게 순수하고 생생하게 전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몸에 지니고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십자가의 길과 부활의 길로 달려갔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주 받아 마땅한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되기도 했습니다.
4. 사도 바울
넷째로, 사도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울은 돌을 들어 스데반 집사를 쳐서 죽이다가 스데반 집사의 사죄를 간구하는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아마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살기가 등등하여 십자가의 도를 따르고 전하는 사람들을 잡아서 감옥에 집어넣으려고 다메섹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서 사울을 부드럽게 부르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3-5).
사울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그 때부터 무릎을 꿇고 울면서 회개하고 또 회개하는 회개의 사람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증거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사랑과 섬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대신 기뻐하고 찬양하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의 예찬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들을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 15:56-58).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20,21,23,24).
5. 폴리캅 감독
다섯째로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의 순교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 역사가들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라는 십자가와 부활의 성자 예수님의 분부 말씀을 들었던 서머나 교회의 사자가 주후 155년경 서머나 투기장에서 불에 타서 순교한 폴리캅 감독이었을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로서 사도적 신앙을 계승해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봉사하다 로마 황제를 신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라는 로마 총독의 명령에 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충성을 끝까지 지키다가 서머나 투기장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폴리캅 감독이 체포되어 서머나 투기장으로 끌려 왔을 때 총독은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고 로마 황제를 신으로 고백하라고 강요했습니다.
폴리캅 감독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86년 동안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섬겨왔소, 그리고 그분은 나에게 한번도 잘못하신 일이 없소.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분을 모독할 수 있겠소.” 총독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저주하라고 강요하면서 “나는 야수들을 가지고 있소. 나는 너를 야수들 가운데 던지겠소” 라고 협박했습니다. 폴리캅 감독이 자기를 야수들에게 던지라고 말하니까 총독이 “네가 야수들을 멸시하고 네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불에 태워 없애버리겠소” 라고 협박했습니다. 폴리캅 감독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이 위협하는 불은 한 시간 동안 타고 곧 꺼질 것이요. 그러나 당신은 심판의 영원한 불을 알지 못하고 있소. 왜 이렇게 지체하시오.”
폴리캅 감독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폴리캅 감독은 불에 태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폴리캅 감독은 제사를 위해 준비된 고귀한 수양과 같이 하늘을 향해 다음과 같이 찬양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당신의 사랑하는 종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여, 내가 당신께 찬양을 돌립니다. 당신은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들의 수에 참예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인하여 그리고 모든 것을 인하여 나는 당신을 찬양하며 당신을 송축하며 당신께 영광을 올립니다 아멘!”
6. 성 프랜시스
여섯째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 사랑을 몸에 지니고 달려간 성 프랜시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합니다. 성 프랜시스는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몸에 지니고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귀중한 삶을 살았는데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을 사모하고 또 사모하면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죽음”을 향해서 달려간 너무너무 귀중한 주님 닮은 삶을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너무너무 닮기를 소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귀중한 고백을 했습니다. “가난은 나의 애처이고 고난은 나의 스승이고 죽음은 나의 자매입니다.” 성 프랜시스는 자기의 간절한 소원과 기도에 따라서 라베르나 산에 올라가서 처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극심한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2년 동안 살다가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에 안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오, 나의 자매 죽음이여.” 성 프랜시스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감화를 미쳤는데 한경직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강원용 목사님 이동휘 목사님 이중표 목사님 등에게 깊은 감동과 감화를 끼쳤습니다. 성 프랜시스야말로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몸에 지니고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십자가의 길과 부활의 길로 달려갔다고 생각합니다.
7. 주기철 목사
일곱째로 일사 각오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 참배를 선봉에 서서 반대하다가 1938년 2월 8일 1차 검속되었다가 27일만에 석방되었고, 1938년 8월 2차 검속되어 6개월간 수감되어 있다가 석방되었으며, 1939년 8월 3차 검속되었다가9개월 후에 석방되었고, 1940년 9월 4차 검속되어 4년간 옥중 생활을 하다가 1944년 4월 21일 밤 9시 30분경 47세를 일기로 순교의 제물이 되어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1938년 8월 2차 검속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석방되어 1939년 2월 첫 주일 아침 평양역에 도착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야말로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몸에 지니고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의 죽음을 향해서 달려간 “축도록 충성한” 순교자였다고 생각합니다.
8. 손양원 목사
여덟째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주기철 목사님을 따라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5년 동안 옥고를 치르며 갖은 고문을 다 당했으나 성자 예수님을 향한 일편 단심의 신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또한 순수한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의 남은 생애를 애양원 나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에게 모든 사랑과 정성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믿음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을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삶은 지극한 사랑의 삶인 동시에 천국과 종말신앙에 의해 지배된 소망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가슴과 의지와 시선은 세상이나 세상의 안일에 매이지 않았고 오직 천국과 내세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 세상의 재물이나 평안이나 명예에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을 애처로 삼고 고난을 선생님으로” “죽음을 소원으로” 삼으면서 천국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옥중 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손수 지은 “주님 고대가”를 불렀습니다. 이 가사를 보면 그가 얼마나 간절히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 옵소서.”
손양원 목사님은 성자 예수님 사랑과 나환자 사랑과 원수 사랑에 미쳐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자기 자신의 삶을 사랑과 섬김의 제물로 드렸는데 결국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2주일간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하여 48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총 개머리 판으로 입을 얻어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리면서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렇게도 그리워하시고 사모하시던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의 신앙”을 몸에 지니고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의 주인이신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삶보다 귀중하고 축복된 삶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자 예수님께서 몸에 지니셨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의 흔적을 우리들 몸에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부족한 우리들도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의 주님께로 조금은 아주 조금은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따르고 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유익하고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필수 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조금은 겸손해지고, 조금은 따뜻해지고, 조금은 주님께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조금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조금은 천국을 바라보면서 준비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조금이라도 몸에 지니고 살아가면서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의 주님을 조금은 순수하고 생생하게 전하면서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오늘 아침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지니고 사신 신앙의 선배님들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 신앙”을 몸에 지니고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사랑과 섬김과 희생의 길로 달려가기를 소원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해도 누군가를 위해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피해가면서 평안과 부귀와 건강과 장수를 추구하는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누군가를 위해서 드려지는 사랑과 섬김과 희생의 삶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누군가를 위해서 순교의 제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셔도 순교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거부하는 불순종과 배타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두려움을 지니고 부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성경 말씀 두 곳을 인용합니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8-10).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 중의 죄인인데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로 어릴 때부터 한 평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몸에 지니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심과 담력을 몸에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는 소위 “막가파”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11살 때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을 때나, 박정희 정부의 주일 성수 방해정책을 비판한다고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가서 아침부터 다음날 이른 새벽까지 심한 심문을 받을 때나,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밤에 혼자서 뛰어 넘어가서 군인들에게 붙잡힐 때나, 북한을 정식으로 방문해서 가는 곳마다 북한 정부의 실상을 진솔하게 비판할 때나 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가기도 했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저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대판 싸우면서 북한 개성으로 달려가서 밀가루 300톤을 북측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면 저는 두려움 없이 달려가곤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두려움 없이 올바른 일을 위해서 달려가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하며 저의 삶을 제물로 드리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제가 저 자신을 너무 과장해서 말씀 드린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저 그렇게 되기를 고백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서 좀 과장해서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 신앙”을 몸에 지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귀중한 삶을 살다가 귀중한 죽음을 죽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리고 이 지구 상에 흩어져 있는 수 많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