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서평] 종교개혁은 항상 필요하다
종교개혁 신학
매튜 바렛 엮음 | 스데반 황 역 | 생명의말씀사 | 800쪽 | 70,000원
‘개혁’은 언제나 현재의 문제점을 전제하고, 기독교 개혁은 언제나 현재지향적이기보다 과거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미래를 지향한다. 종교개혁은 루터와 칼빈, 루터교회와 개혁주의 교회로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는 역사적 신학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의 역사와 그 가운데 선포된 종교개혁자들의 통일성 있는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계속해서 유익을 끼치는 이유가 있다. 종교개혁은 온건한 모양이든지 급진적인 방식이든지, 일반적으로 ‘오직 성경’의 정신을 갖는다. 사람이 만든 전통과 사람이 세운 권위가 아니라, 성경에 모든 권위를 부여한다. 이를 시작으로 종교개혁은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아마 ‘다섯 솔라(sola)’라고 불리는 종교개혁의 기본 정신을 알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이 믿고 가르친 교리에서 어떻게 이런 개혁의 기본 정신이 나타나고 있을까? 이것은 기존의 잘못된 종교 형식과 신념과는 어떤 차이를 보일까? 다양한 성향과 생각의 차이를 가진 종교개혁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신학은 무엇일까?
이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 줄 책이 바로 <종교개혁 신학: 조직신학 관점의 개요>이다. 이 책 편집자는 여러 중요한 교리서를 집필한 매튜 바렛이고, 함께 저술에 참여한 학자 중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채드 반 딕스혼, 필립 라이큰, 데이비드 웰스, 마이클 리브스, 칼 트루먼 등이 있다(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 박사과정 중인 한국인 학자, 김은진도 참여했다).
종교개혁의 주된 관심은 ‘구원론과 교회론’에 있었다는 판단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면죄부나 성례 등으로 구원에 일조하려는 모든 인간적인 노력을 타파하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를 강조했기 때문이고, 교황을 교회의 머리로 두려는 로마가톨릭에 맞서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두기 위해 분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이 두 가지 주제에 모든 생애를 바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조직신학 관점’에서 본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분명하게 독자에게 보여준다. 종교개혁자들이 믿고 있던 신학을 성경론, 삼위일체론, 신론, 구원론(예정과 선택, 칭의, 성화, 견인, 확신), 인간론, 기독론(속성과 사역), 성령론, 교회론, 성례론(세례와 성찬), 종말론 등으로 세분화하여 루터 이전 상황, 루터와 칼빈의 가르침, 츠빙글리와 그 이후 종교개혁자들의 교리, 재세례파, 영국 국교회 등의 신학을 비교-대조하고, 일반적으로 그들이 통일성 있게 개혁하려고 했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종교개혁에 관심을 거의 두지 않거나, 반대로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이 마치 무오한 성경의 가르침인 것처럼 숭배하기도 한다. 둘 다 잘못된 접근법이다.
종교개혁은 항상 필요하다. 우리는 현재 성경에서 멀어진 교리와 실천을 여전히 가르치고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한 상황과 시대적 배경이 빚어낸 비성경적 나아가 반성경적 사고가 오직 성경이 아니라 성경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개혁이 일으킨 개혁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속한 상황과 역사적 배경 가운데 성경으로 돌아가는 일에 성공했는지, 그 방식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을 우상처럼 떠받들지 말아야 한다. 매튜 바렛이 편집한 이 책이 보여주는 것처럼,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도 교리는 항상 완벽하게 일치되지 못했다. 그 말은 그들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우리에게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신학>을 통하여 독자는 오늘날 교회가 믿고 있는 바를 체계적으로 점검해 볼 수 있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처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전통적으로 행한 형식 그대로가 성경적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과연 그러한가?’ 질문했던 종교개혁자들처럼 믿고 행하는 모든 것들에 관하여 질문할 수 있다.
이 질문은 의심하고 무너뜨리려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믿고 있는 것을 견고하게 하고 확실하게 하기 위한 질문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가졌던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무엇을 믿든 상관없이 개인에게 위안과 격려가 된다면 종교 생활은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잘못된 생각을 제거하고,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의 지체로서 무엇을 믿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교리는 곧 우리가 전수해야 할 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굳건히 서 있는 교회를 물려줄 수도 있고, 무너진 교회를 남겨두고 떠날 수도 있다. 모든 교리가 교회를 서거나 무너지게 할 만큼 중대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모든 교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성경의 권위를 신뢰하고 올바른 진리를 고수하려는 열심에 있어 같아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신조를 만들어 서로의 믿음을 일치시키고 교리문답을 통해 모든 성도가 건전하고 바른 교리를 믿고 따르게 하는 일에 헌신했다. 오늘날 신조는 역할이 불분명하고, 교리문답은 일부 보수적 교회에서만 강조하는 추세다. 점점 교리적으로 빈약한 교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자들이 맞닥뜨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확실한 교리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리가 믿고 있는 바가 성경적인지 철저히 연구하고 점검해야 한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먼저 그 일을 한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는 것부터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종교개혁 신학>은 우리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