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 주 인근서 급증, 경구용 낙태약 영향도
미국에서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폐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낙태 건수가 오히려 늘어 10여 년 사이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CNN에 따르면, 낙태권 지지단체인 미국 구트마허연구소(Guttmacher Institute)는 19일(현지시간) 관련 보고서를 통해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총 1,026,690건의 낙태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는 미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하기 전인 2020년과 비교해 10% 가량 늘어난 수치로, 미국 가임기 여성 1천 명 중 15.7명 꼴로 낙태를 했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미국의 연간 낙태 건수가 100만 건을 넘어선 건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결정 이후 낙태를 금지한 보수 성향의 14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만 따져 본다면 25% 이상 늘어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결과에는 낙태가 금지된 지역에 거주하지만 아기를 낳을 형편이 되지 않는 여성들이 낙태가 허용되는 인근의 다른 주로 이동해 낙태 시술을 받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한 해 낙태 건수가 특히 큰 폭으로 늘어난 곳은 대부분 낙태 시술을 엄격히 금지하는 위스콘신, 인디애나, 켄터키, 미주리, 텍사스 인근의 주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낙태를 금지하는 주와 지리적으로 가깝지 않은 여타 지역에서도 낙태 건수 자체는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그리고 낙태를 금지한 주들이 아닌 여타 주들은 여성의 건강권 보호 측면에서 낙태 접근권을 확대하거나 재정 지원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구용 낙태약이 널리 보급된 것도 낙태 건수의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구트마허연구소는 별도의 보고서에서 2023년 한 해 미국에서 이뤄진 모든 낙태의 63%에 해당하는 642,700건이 미페프리스톤 등 경구용 낙태약을 이용해 이뤄졌다고 추산했다.
이에 따르면, 2001년만 해도 경구용 낙태약을 이용한 낙태는 전체의 10%에도 못 미쳤으나, 2020년에는 전체의 53%를 차지하는 등 빠른 속도로 사용이 늘었다.
연구소 측은 “이번 조사는 공식적으로 낙태 시술을 제공하는 미국 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의료체계 바깥에서 이뤄지는 낙태나 낙태가 금지된 주에 비공식적으로 반입된 경구용 낙태약에 의한 낙태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따라서 실제 낙태 건수는 조사된 것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