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묵시록적 세상 종말 - 인자의 강림(降臨)
나사렛 예수는 다가올 세상 종말에 관하여 예언적인 두 가지 특징적인 언급을 하신다. 종말은 우주의 재난을 동반하며, 재림하시는 예수는 구름 타고 오신다는 것이다.
1. 우주적 재난
첫째, 세상 종말은 우주적 재난과 더불어 올 것이다. 마가는 예수의 말씀을 다음같이 전해준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막 13:24-25). 누가는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눅 21:25-26). 마태도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 24:29).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께서 예언하신 종말에 일어날 우주적 재난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0-13). 종말이 올 때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는“ 우주적 재난을 동반하면서 약속하신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종말 때 일어나는 우주적 재난은 불신자들에게는 재앙과 절망이 되나 주의 강림을 고대하는 신자들에게는 약속의 성취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이 실현되는 소망의 때가 된다.
2. 구름 타고 능력과 영광으로 오신다
둘째, 예수는 자신을 “인자”(ὁ υίὁς τού άνθρώπου, the Son of Man)와 동일시 하신다.
예수를 지칭한 “인자”(ὁ υίὁς τού άνθρώπου, The Son of Man) 칭호는 공관복음에 69회 나오고, 요한복음에 13회 나온다. 동일맥락이나 문절에 반복된 것을 피하면 공관복음의 총계 69회가 39회가 된다. 여기에 요한복음의 것을 추가하면, 예수는 자기를 가리켜 59회나 “인자”라고 하였다(J. Jeremias, New Testament Theology,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 1971, 259f.). 독일 신약학자 불트만과 그를 추종하는 양식비평 학자들은 "인자" 칭호란 후에 초대교회 공동체가 창작한 표현이라고 보았다(R. Bultmann, The 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 New York: Harper & Row, 1963.). 이들은 예수의 “인자” 문장 중에서 심히 중요한 인자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언급이 있다. 불트만은 인자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언급이 있는(막 8:31; 막 9:31; 막 10:33 이하) 본문의 신빙성을 전적으로 부인하여, 예수의 예언이 아니라 초대교회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예언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해석한다(R. Bultmann,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Vol. I. New York: Scribner's 1952, 29ff.).
불트만 전통을 이어받은 포스트불트만 신약학자 본캄은 약간 온건하게 말한다: "예수가 자기에게 닥쳐올 고난과 죽음을 알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으나 이러한 상세한 지식은 예수의 말씀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세한 지식은 사건이 발생한 후의 지식이어야 한다"(G. Bornkamm, Jesus of Nazareth, 229.).
이러한 양식비평학자들의 견해는 성령론적 이해를 도외시하고 있다. 성령론적 이해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는 성령을 통하여 자신에게 다가올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미리 예견하셨다는 것이다. 예수가 "인자" 칭호를 사용하실 때 그는 구약의 예언자 다니엘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한 성경의 전통에 서 있었다. 다시 말하여 본문은 다음이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로 그를 섬기게 하셨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4). 예수는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중에 하나가 다니엘 7:13 이하이다.
역사적 예수는 다니엘서의 이 구절이 자신에게 성취되실 것으로 해석하였다. 예수의 인자(人子) 사상은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 하나님의 나라의 경이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와 치유사역에서 현재에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독일 신약학자 예레미아스의 다음 견해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평가한다. "처음부터 이 칭호는 예수의 말씀전승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아무도 그 원초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이 인자 칭호가 묵시문학적인 인자 맥락이라고 하면 본질적으로 예수 자신에게로 소급하여야 한다."(Joachim Jeremias, New Theology Theology, 266f.) 인자는 구름을 타고 능력과 영광으로 오신다. 마가는 예수의 말씀을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막 13:26-27). 누가는 다음같이 전한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눅 21:27). 구름타고 능력과 영광 가운데 오시는 인자는 바로 나사렛 예수 자신이다. 이러한 묵시록적 인자상은 나서렛 예수의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적 종말론적 모습이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 24장에 인자(人子)의 강림에 대한 예수의 말씀을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능력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0-31). 마태는 이어서 25장에도 세계 심판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 31-46).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인자는 역사를 종결시키는 심판자이시다. 이러한 인자(人子)상(像)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기대되었던 하나님의 왕국을 회복시키는 메시아상(像)이다. 그러나 이러한 묵시록적 인자상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과는 다르다. 나사렛 예수가 가졌던 인자상은 고난받는 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종말론적으로 오실 인자는 바로 자신임을 말하고 있다.
나사렛 예수는 체포되어 산헤드린의 공의회의 심문을 당할 때 자신에 대하여 고발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침묵하시는 예수에게 대제사장은 예수 자신의 증거를 제시하기를 요구한다: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 26:63). 이에 대하여 예수는 앞으로 인자로 재림할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 26:64). 예수의 이 증거에 대하여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으며 신성모독이라고 말하며 사형에 해당하다고 말하면서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렸다.
예수 당시에는 비통과 고통의 표시로서 옷을 찢는 것(마 26:65)은 일종의 관습이요 의식이었다. 재판관들이 재판 진행 중에 신성모독의 말을 청취해야 하거나 어떤 사람을 신성 모독죄로 판정을 내렸을 때에 그들은 자기들의 옷을 찢었다(마태복음 26장 62절-68절 해설, 해설 관주 성경전서. 독일성서공회판, 68). 그러나 예수가 증언에서 언급하신 종말의 때 인자의 영광으로 오시는 그의 강림은 고난의 종으로 오신 초림(初臨)의 자신이 진실로 메시아였다는 사실을 드러낼 것을 시사한 것이다. <계속>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