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범죄도시 4>
이번 박욱주 교수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최근 개봉해 금주 내로 천만 돌파가 유력시되는 허명행 감독의 <범죄도시4>를 분석합니다. 지난 세 편처럼 마동석(마석도) 형사를 주인공으로, 빌런 김무열(백창기)과 이동휘(장동철)를 비롯해 박지환(장이수), 이범수(장태수), 김민재(김만재), 이지훈(양종수), 김도건(정다윗), 김지훈(조부장), 현봉식(권사장), 이주빈(한지수) 등도 출연했습니다.
영화 속 악역, 모두 외국과 연관
한국인 오만한 우월감 곳곳 깔려
성리학과 쇄국 집착 등 어리석음
철지난 민족주의 이념 벗어나야
◈수사극 속 악당: 주인공 마석도의 매력을 살리는 악역들의 캐릭터
<범죄도시> 시리즈는 현재까지 네 편이 제작·발표됐고, 앞으로 총 네 편이 더 제작될 예정이다. 속편이 이렇게 이어지는데도 1편과 마찬가지로 여전한 흥행력을 발휘하는 작품은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비교하자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 정도가 유사한 흥행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범죄도시4> 역시 개봉한지 불과 열흘 만에 600만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고, 5일 700만을 돌파했다. 현재의 흥행 추세로 볼 때, 이전 2·3편과 마찬가지로 <범죄도시4> 역시 거의 확실하게 1천만 관객을 달성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전후해 한국영화의 극장 흥행력이 현저히 감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도시> 시리즈는 그에 영향받지 않는 티켓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여러 영화평론가들이 자세하게 분석한 것처럼, <범죄도시> 시리즈의 최대 흥행요인은 첫째는 주인공 마석도 형사(마동석 분)의 호쾌한 성격 및 수사 방식이고(주먹질의 타격감 표현 또한 마석도 캐릭터의 중요 흥행 요인이다), 둘째는 각 편 악역들의 어두운 카리스마다. 이 둘이 충돌해 결국 악역이 처참하게 무너질 때 관객이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범죄도시 시리즈 흥행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석도 형사만큼, 혹은 마석도 형사보다 더 악역 캐릭터가 중요하다. 악역 캐릭터가 살면 마석도 형사도 돋보이고, 악역의 카리스마가 기대에 못미치면 마석도의 수사와 활극 역시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1편의 조선족 조직폭력배 두목 장첸(윤계상 분), 2편의 납치살해범 강해상(손석구 분), 3편의 부패한 비리경찰 주성철(이준혁 분), 그리고 이번 4편의 온라인 카지노 운영 조직폭력배 두목 백창기(김무열 분)까지, 각 편 악역들은 모두 나름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서사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악역은 당연하게도 1편의 장첸이다. 관객들 입장에서 마석도와 장첸의 대결은 이후 모든 <범죄도시> 시리즈 선악 대결의 지향점이자 평가 기준으로 인식된다.
<범죄도시> 1편은 이 막강한 흥행력을 가진 시리즈의 성공 공식을 정립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비판도 받았다. 무엇보다 장첸이라는 악역의 설정과 캐릭터를 통해 작품에 드러난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에 대한 혐오심과 반감) 정서가 비판 대상이 됐다.
1편이 개봉된 2017년까지 한국 사회에 들어와 살던 외국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던 것은 중국인이었고, 이 중국인들 가운데 다수는 길림, 연변과 같은 중국의 동북3성 지역, 즉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에 살던 조선족 이주민들이었다.
◈수사극 속 외국인: 주인공 마석도 매력을 살리는 악역들의 캐릭터
조선족 이주민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선은 이율배반적이었다. 그들 다수는 한국에 들어와 우리가 기피하는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맡았다. 그들은 중소기업, 소규모 사업장, 농촌 등에 들어와 일했는데, 언어 소통에 무리가 없고 문화적 공통점도 커서 한국 사회에 표면적으로나마 잘 동화됐다.
사실 우리 한국인들에게 조선족 이주민들이란, 민족적 기원을 따지는 민족주의 정서를 내려놓고서라도 현실적 이유로 반갑게 맞이해야 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중국 국적자들로서 우리 한국인들과 정치 이념이나 안보관이 크게 차이가 났다. 그래서 이들의 정착에 큰 우려감을 내비치는 이들도 많았지만, 어찌 됐든 조선족 이주민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귀화도 하고(약 15만 명) 결혼도 해서 이웃으로 잘 정착했다. 현재는 그 다음 세대들이 한국에서 교육받고 자라나 적지 않은 수가 전문직, 공무원 등으로 종사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이는 미국 이민 1세대 한인들이 비교적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가졌지만 높은 교육열을 가지고 자녀들을 교육시킨 결과, 많은 수의 2·3세대 한인들이 미국 사회 각지에서 정치인이나 법률가, 회계사, 의사 등으로 활동하며 중산층 이상 사회계층에 포섭되어 사는 것과 같은 현실이다.
한국인들과 조선족 이민자들 양측 사이에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국인들의 배타적 태도와 멸시하는 시선, 조선족 이민자들의 차별에 대한 반감, 이런 것들이 충돌하면서 양측 사이 감정적 갈등이 있었지만, 한중 수교 이후 35년째인 현 시점에서 양측의 조화로운 공존이 조금씩이나마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조선족 이주민들을 비롯해 한국에 들어오는 여러 개도국 이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불편과 멸시의 감정을 이용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길을 선택한 모양이다.
<방가? 방가!>나 <헤어질 결심>, <오징어 게임> 같은 예외적인 작품도 더러 있지만, 국내에서 외국인 이주민, 특히 개도국 이주민들에게 주요 배역을 맡긴 작품에서는 그들을 멀리해야 할 자들 혹은 희화화해 비웃을 자들로 그려내는 것들이 더 많다.
<범죄도시> 흥행에는 바로 이런 시노포비아(Sinophobia, 중국인들에 대하여 느끼는 혐오심과 반감), 나아가 전반적인 제노포비아의 정서가 큰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범죄도시> 악역은 1편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인이다. 그렇지만 2·4편 악역의 활동 무대는 베트남·필리핀 등 외국이다. 그리고 3편 악역은 외국 폭력조직인 야쿠자와 협업하며 악행을 저지른다.
<범죄도시> 시리즈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모두 외국으로부터 넘어온 자들 아니면 외국으로 넘어간 자들 아니면 외국 범죄자들을 뒷배로 둔 자들이다. <범죄도시> 속 모든 범죄의 뿌리는 우리 한국 사회가 아니라 해외에 있다.
<범죄도시> 속 한국인 범죄자들에 대한 설정을 자세히 들여다 봤을 때, 이들이 만일 외국 혹은 외국인과 접점이 없었다면 그렇게 악랄한 짓을 저지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고가 은연중에 작품 전체에 깔려 있다.
한국은 치안이 좋고 법치 체계가 잘 정착돼 있고 시민들의 의식수준도 높지만, 해외 특히 대한민국보다 경제적 발전도가 아직 낮은 중국·베트남·필리핀 등은 치안도 불안하고 행정력도 확고하지 않고 시민들의 의식수준도 뒤떨어져 있다는 오만한 우월감이 작품의 서사 이면에 깔려 있다.
그래서 외국의 영향을 받거나 외국에 나가기만 하면 한국인도 범죄자로 전락한다는 사고가 <범죄도시>의 악역 설정에 반영돼 있다.
이것은 19세기 말엽까지도 성리학 사대부들이 갈망했던 복고적 이상향을 꿈꾸며 쇄국에 집착했던 폐쇄적인 한민족의 서글프고도 어리석은 단상이다. 현재 대한민국 위정자들과 사회 지도층은 가족 공동체나 마을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공동체적 가치, 인격적 친교의 가치를 쓰레기통에 내던져버린 채 권력과 이권 다툼에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생각없는 대중은 이들 지도층 인사들의 정치적·경제적 횡포에 대책없이 휘둘리고 있다.
그 결과 현재 대한민국은 미래 세대의 존속 가능성 자체를 잃어버렸다. 이런 현실에서 민족적 우월감에 기댄 제노포비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 수많은 외국인 범죄를 근거로 들며, <범죄도시>에 반영된 외국인 인식이 비교적 정확하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외국인 범죄가 우리 사회를 불안케 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인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 사회 기득권층은 이런 불안 요인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이주민들을 대거 한국으로 데려오는 선택을 했고, 일반 시민들은 그런 기득권층을 투표로 뽑아줬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한 현실에 대비해 치안과 범죄예방 노력을 더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장에서의 치안 유지 능력이 거의 전무한 여성 경찰관들을 대거 임용하면서 격무에 시달리는 능력 있는 경찰들은 천대하는 우리 정부 운영의 현실로부터, 외국인 범죄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기대하기는 힘든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범죄도시>가 대중에게 더 큰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문화·다인종·다민족 사회로의 전환은 향후 한반도가 맞이해야 할 정해진 운명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낡은 민족주의 이념에 빠져, 변화하는 현실에 대비할 의지조차 내보이지 않고 있다.
외국인들에 대한 노동의 의존 정도는 더 심해질 것이고, 외국인들과의 결혼으로 다문화 가족 비중도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미디어는 다문화·다인종·다민족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은근히 부각시키는 데 열심을 내고 있다. 그래야 관객이 만족하고 시청자 반응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흥행은 그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이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에 동조하지 말고, 앞으로 한반도에 펼쳐질 다문화·다민족 사회의 정황을 전도와 선교를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낡아빠진, 그리고 우리 장래 현실에도 맞지 않는 자아도취에 불과한 자민족중심주의를 가지고는 이 사회의 변화, 전도 현장의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 이주민들,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 중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를 받으려 하는 진정성을 가진 이들을 교회로 초대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계속>
박욱주 교수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