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식 목사(한국교회 목회자 검증 센터 대표)의 한국교회를 향한 고언
목회자인 우리들은 열심히 교회를 섬긴다. 세미나, 강의 등을 부지런히 좇아다니며 배우고, 그렇게 배운 것을 교인들에게 설교나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을 통해 열심히 가르친다.
특히 교인들에게 복을 받으라 권한다. 복! 우리 시대 최대의 화두다. “축복합니다!” 이것이 목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사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가 애초에 복의 종교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무엇을 두고 복이라 부르느냐’ 하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과 분리돼 거룩해야 하는데, 우리 시대 교회가 말하는 복은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첫째는 돈이다. 이 세상의 권세와 명예와 쾌락도 우리가 파는 복이다. 사업이 잘 되고, 좋은 집과 좋은 차 사고, 자녀들 대학에 잘 가고, 몸도 다 건강하고 골프 치며 여행 다니며 취미생활도 즐기는 것이다. 전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다. “구원 문제는 다 해결됐으니 잊어버리고, 이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마음껏 누리라” 부추긴다.
그런데 깜짝 놀라게 되는 사실은, 이 복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판다. 구원은 절대 내 공로로 얻는 것은 아니지만, 이 복을 얻기 위해서 공로가 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공로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다. 말씀 많이 보고 기도 많이 하고 일천 번제 예물도 드리고 전도도 많이 하면 하나님이 예쁘게 보시고 복을 주신다. 사업도 잘 되게 해 주시고, 승진도 시켜 주시고, 아이들도 공부 잘 하게 해 주신다. 공로 가운데 중요한 것은 역시 돈이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헌금을 많이 드리는 게 복 받는 비결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가르친다.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 목사들 가운데도 표현만 슬쩍 바꾸어 전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들의 교회가 진짜 교회인지 세속적인 도떼기 시장인지는 매 주일 하는 설교를 분석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 예수의 은혜를 전하는 설교는 한 달에 몇 번이나 되는가? 주님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하는가? 구원받은 성도가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한 달에, 아니 한 해에 몇 번이나 가르치고 있는가? 돈 문제나 인간관계 문제에서 정직하게, 성실하게,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는가? 한 주간 죄 많이 짓고 온 사람들에게 죄를 지적하고 꾸짖고 다시는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몇 번이나 들려주는가? 많은 교회가 회개하라 촉구하지도 않고, 그저 주님의 위로만 서둘러 전해준다. 가짜 위로, 가짜 은혜다. 그것이 바로 복 장사다. 회개라고 해야 그저 목회기도 시간에 지난 주간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문구 하나만 달랑 넣는 것이 전부라면 기도문 한 두 개 외고 죄를 용서받는 큰집(?) 종교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설교 내용도 내용이지만 스타일도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은 권면도 있지만 명령도 많다. 그런데 권위 자체를 싫어하는 시대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요즘 설교에서도 명령은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위로해 주고, 부드러운 솜방망이로 가려운 곳 긁어주고, 권고하고, 설득하다 못해 애원까지 하는 그런 설교로 바뀌어 버렸다. 성경도 교리나 율법을 전하는 본문은 거의 선택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내러티브, 곧 이야기 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 위주로 읽어 주고 시나 소설 같은 감동을 주려고 애를 쓴다.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사람의 상황도 어느 정도 고려해야 되지만, 방법을 넘어 원리까지 훼손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많은 교회들이 세속적인 도떼기 시장판으로 변질되어 공로를 받고 복을 파는 이 시대에, 진정한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것을 맡김과 동시에 말씀으로 무장하고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 말씀이 핵심이기에 첫째 관심이 신학교육에 있어야 하고, 기존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세상 풍조를 물리치고 복음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와 함께 한국교회 전 교단이 거룩하게 되는 그 하나에 모든 관심을 쏟고, 그것을 전체의 원리로, 또 정체성으로 삼아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우리가 이 시간 이후부터 다 함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핏값을 주고 사신 우리들의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가 되어야지, 엉터리 세상 복을 파는 도떼기 시장으로 타락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