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디즈니+ <삼식이 삼촌> (2)
박욱주 박사님의 이번 주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는 지난 주에 이어 5월 15일 OTT 디즈니플러스에서 5부까지 공개된 후 순차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16부작 드라마 <삼식이 삼촌>을 해부합니다. 제작사는 ‘전쟁 중에도 하루 세 끼를 반드시 먹인다는 삼식이 삼촌(송강호)과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엘리트 청년 김산(변요한)이 혼돈의 시대 속 함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이야기’라고 소개합니다.
드라마 첫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신인(新人·神人) 배우 송강호·변요한 씨 외에도 이규형·진기주·서현우·오승훈·주진모·티파니 영·유재명 등의 배우가 출연합니다. 이 드라마는 영화 ‘로마서 8:37’을 연출했던 신연식 감독이 극본과 제작을 맡았습니다. -편집자 주
사회와 교회 양적 성장 치우쳐
대한민국, 정점 지나 하락 시기
분배중심 정책, 대안 되지 못해
<삼식이 삼촌>, 넋두리 콘텐츠
교회, 번영신학 붙들지 말아야
삶과 신앙 인식, 근본 바꿀 때
◈성장경제 시대의 열망: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고도성장기
<삼식이 삼촌>의 시대 배경은 1950년대 중후반이다. 이 시기는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기에 접어들기 직전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 소비경제, 수입의존 경제구축 요구를 거절하고 자립적 산업생산 역량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였다. 이승만 정부는 1958년 4월부터 산업개발위원회를 통해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1960년 4월 국무회의에 제출했다.
흔히 한국 경제개발 계획의 시작이라고 하면 1962년 박정희 대통령 집권 직후 개시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떠올릴 것이다. 이 1차 계획의 초안이 바로 이승만 정부 시절 수립된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이다. <삼식이 삼촌>의 서사에서 내무부 직원 김산(변요한 분)이 힘써 기획했지만 정치권 인사들이 그 공로를 가로챘다는 식으로 포장된 바로 그 계획이다.
이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은 아직 농업국가 단계에 머물러 있던 대한민국을 중화학공업 중심 공업국가로 바꾸어 놓는 것을 골자로 삼고 있었다. 내수 경제만 생각하면 수입대체 산업화를 위한 경공업 진흥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휴전이 이루어진 지 불과 5-6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고,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는 북한의 재침공 위협 아래 있었다. 따라서 군수공업 육성이 반드시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중화학 공업 육성이 반드시 이뤄져야 했다.
경제개발과 군수산업, 두 가지를 한 데 묶어 국가주도 경제개발 계획을 진행하는 방식은 멀게는 프로이센 왕국의 비스마르크가, 가깝게는 소련의 스탈린이 원조라고 볼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처럼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산업혁명을 이룩한 선진국들과 달리 19세기의 프로이센, 그리고 20세기 초 소련은 농업국가에서 근대 공업국가로 빠르게 변화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주도 경제개발 계획을 시행했다.
소련의 경우 이 과정에서 농민들에게(자영농은 물론 소작농들에게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한 희생을 강요했지만, 어쨌든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기존 경제 선진국에 못지 않는 공업 생산력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한국전쟁을 진두지휘한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 고위 경제관료들에게 소련은 철천지 원수였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의 경제개발 계획이 한국 경제력 증강에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의 지혜를 빌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승만 정부의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은 국무회의에 올라온 지 얼마되지 않아 1960년 4.19 혁명이 발발하면서 시행이 유보됐고, 장면 정부 시기와 박정희 정권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시기 중 약간의 보완을 거쳐 1961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완성됐다.
이 계획의 핵심은 자본과 기술이 없는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중화학 공업 육성의 과제를 국가 지원으로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자본이 없어 계획을 시행하지 못했지만, 박정희 정부는 1965년 한일 수교와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통해 획득한 외화로 경제개발 계획을 본격적으로 현실화했다.
<삼식이 삼촌> 서사는 이 경제개발 계획을 둘러싼 정치모략과 암투, 그 가운데서 활약한 한 정치깡패와 내무부 직원, 그리고 군 소장파 장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삼식이 삼촌> 주인공 박두칠(송강호 분)과 그가 포섭한 주요인사 모두는 특권의식과 이권을 향한 탐욕에 찌든 기득권층 인사들을 도태시키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세워 정체된 국가의 발전을 이룩하려는 야심을 위해 움직인다.
이들은 새로운 정치질서 수립 과정에서 자신들이 부, 명예, 권력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박두칠과 동조자들은 그들이 얻을 권력과 부가 그들이 달성할 과업에 대한 마땅한 보상이라 생각한다. 배를 곯는 수많은 대한민국 민중을 빈곤에서 해방시키는 대업을 이룰 텐데, 그만한 보상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수축경제 시대의 반성: 성장 이데올로기와 번영신학을 포기해야 하는 수축의 시대
<삼식이 삼촌>은 이 박두칠 일당의 행적을 통해, 경제의 양적 성장이 절대적 선(善)이라는 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공유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일본에서 먼저 유행했다.
1990-2000년대 일본 사회는 경제성장 정점에 도달한 뒤, 수축경제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의 강력한 견제와 함께 일본 내부 인구구조 급변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 경제구조가 수축경제 체제로 전환된 초기, 일본 기업경영 상황은 암울했고 청장년층 할 것 없이 실업률이 급증했다. 당시 일본 미디어를 보면 세 부류의 콘텐츠가 크게 유행했다.
첫째는 경제가 어려운 시기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코믹물(쿠도 칸쿠로의 <키사라기 캐츠아이>와 <맨하탄 러브 스토리>가 대표적), 둘째는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심리물이나 범죄물(<에반게리온> 같은 세카이계 애니메이션이나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백야행>이 대표적), 셋째는 지나간 경제 고도성장 시기를 그리워하는 기업 및 금융 관련 시대물(<화려한 일족>이나 <관료들의 여름>이 대표적)이다.
<삼식이 삼촌>의 캐릭터들은 <화려한 일족>과 <관료들의 여름>에서 엿보이는 기업인들과 경제부처 관료들의 경제성장을 향한 열정과 야심을 공유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고 비슷한 경제개발 과정을 거쳤던 두 나라이다 보니 경제의 양적 성장을 향한 열정 역시 비슷하게 닮아 있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1960년대 이후 약 60년이 넘도록 우리 한국 사회는 주로 양적 성장에 치우친 경제 이데올로기를 추종해 왔다.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가 가져다 준 안락함과 풍요에 취해 경제적 측면이 아닌 삶의 모든 가치 판단에까지 양적 성장 이데올로기를 적용시켜 왔다.
한 개인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가정을 꾸리고, 어떤 사회적 지위를 얻으며,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지, 이 모든 삶의 측면에 ‘양적 성장’이라는 가치관이 기본 가치판단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다. 현 의대 진학 열풍은 그 대표적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정서적 안정과 풍요, 윤리적 책임 수행, 가정의 유대감,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 등은 상대적으로 무가치하게 취급돼 왔다.
이와 비슷하게 교회에서는 신앙의 신실함을 판단하는 기준마저 양적 성장으로 환원해 버리는 기복적 번영신학이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교회의 출석성도 수, 헌금 금액, 예배당 크기가 곧 교역자의 신실함의 입증자료로 여겨지는 현재, 교회의 세태는 복음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나라의 지속적 경제성장에 확고한 믿음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는 참으로 아쉽게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이제 정점을 지나 끝없는 하락의 시기로 접어들려 하고 있다. 양적 성장의 광기에 질려버린 이들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자녀 출산을 포기했고, 그 덕분에 인구구조는 무너지고 있다.
혹자는 인공지능을 비롯한 최첨단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경제부흥의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소비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생산도 활성화될 수 없다. 인공지능은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의 주체이다.
그렇다 해서 진보정치 진영에서 신봉하는 분배중심 정책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 분배는 성장이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분배할 자원의 총량 자체가 급격하게 수축되는 사회에서는 분배정책 축소만이 해답이다.
한때 분배정책의 이상향으로 알려졌던 북유럽 국가들이 막대한 복지비용과 인구감소, 기술발전 정체로 결국 복지비용을 크게 줄이고 증세와 민영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향후 대한민국 사회는 성장경제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는 절대 대응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들을 겪게 될 것이다. 자녀 세대의 수는 급감하고, 복지혜택은 줄고, 연금과 의료보험 재원은 고갈되고,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 하락이 장기화되고, 세금 부담은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며, 이런 악조건에 질린 능력 있는 젊은 세대는 보다 나은 삶의 여건을 지닌 국가들로 떠나게 될 것이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삼식이 삼촌> 같은 작품은 우리 대한민국이 한때 활기차고, 강한 노동력을 지닌 젊은이들이 넘쳤으며,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한 희망과 야심이 넘쳤던 나라였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지나간 옛날을 회상하며 위안을 얻게 해주지만, 수축경제 사회의 현실에 맞는 지혜를 선사해주지는 않는다. <삼식이 삼촌>은 사실상 그저 지나간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도 지나간 양적 성장의 신화, 번영신학의 헛된 메시지에 붙들려 있게 된다면, 향후 궤멸적인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다원주의 문화 범람으로 이미 교회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들으려는 이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여기에 더해 인구구조 붕괴로 아예 교회에 출석할 젊은 세대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금도 한국교회 교역자들과 신자들의 고령화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앞으로는 이 문제가 사회 전체의 인구구조 붕괴와 맞물려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한국 사회와 교회 모두 양적 성장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무엇이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지 고민하면서 삶의 방식을 근본부터 바꿔나가야 할 시점이다. 소비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던 허영심을 버리고, 절약으로 다져진 검소한 삶이 생활화돼야 하며, 물질이 주는 만족감에 눈이 멀어버린 정서적 피폐함을 치유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상적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교회 역시 청빈의 정신을 되살려,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영적 부요함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고도성장 시대의 시작점을 배경 삼아 양적 성장의 경제적,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삼식이 삼촌>의 서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구시대의 것이 되어버린 성장 중심의 삶의 방식을 포기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고지한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물질의 양이 아니라 복음과 윤리적 책임에 대한 충실함이라는 것을 되새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