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대한민국을 향해 계속해서 ‘오물 풍선’을 보내고 있다. 21세기 첨단문명 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오물’을 보내 공격하는 행태와 수준라니, 그야말로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다.
북측은 이에 앞서 남한의 대북전단에 맞서 오물을 살포하겠다고 도발한 바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 풍선을 통해 보내는 것들은 대개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내용들, 먹을거리, 옷가지, 1달러, 각종 한국 문화 콘텐츠, 그리고 성경 등으로, 북한 주민들의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물론 그 ‘진실’과 ‘지원’이 북한 독재 정권의 체제를 뒤흔드는 것일 터다. 그래서 북한 정권은 오래 전부터 대북전단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특히 지난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이로 인해 대한민국 역사에 전무후무한, 끔찍하고 참담한 ‘대북전단금지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2020년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이 대북전단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자, 당시 국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점하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이 마치 지령을 수행하듯 이를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때문에 해당 법은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굴욕적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당 법은 단지 대북 굴종이라는 측면의 문제만 안고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을 말살하는 것이었다. 김씨왕조의 폭압적 독재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의식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희망이고, 그 희망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대북전단이다. 대북전단은 거짓 선전과 세뇌교육 속에 갇힌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대북전단이 금지되면 자연히 북한에 대북전단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해진다.
이뿐 아니라 당시에는 풍선을 통해 북한에 성경을 보내는 사역을 해 오고 있는 선교단체 한국순교자의소리(한국 VOM)에도 엄청난 압박이 가해졌다. 한국 VOM은 주로 풍선을 통해 북한에 성경을 보내는데, 당국은 이조차도 마치 악질 범죄를 대하듯 했다.
일각에서는 이와 전혀 관계도 없는, 한국 VOM의 재정 문제까지 지적했지만, 한국 VOM은 지난 2017년 2월 18일 한국기독교재정투명성협회(CCFK) 1호 인증 회원으로 선정된 바 있을 정도로 재정의 건전성이 입증된 곳으로, 오히려 성북구 경찰과 서울시 문화정책과의 합동 조사에 앞서 2019년 외부 회계감사자료와 비영리법인 설립허가증을 온라인상에 공개할 정도로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정권이 교체된 뒤 대북전단금지법이 위헌 결정이 나고, 이에 대북 시민단체 및 선교단체들의 활동도 점차 다시금 활기를 띠자, 북측은 (현 정권에는 ‘하명’이 통하질 않으니) 이번에는 ‘오물’로 응수한 것이다.
위정자들은 제발 거짓된 평화, 굴종의 평화, 임시방편적 평화에 더 이상 속지 말고, 진정으로 민족의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결단하기를 바란다.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과 종교 박해에 신음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돕고자 하는 이들이 왜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민주당에 기독교인 의원들도 상당수인데 그들은 이 같은 일들에 왜 침묵하는가. 여러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북한 주민들과 북한인권단체 및 선교단체들을 직접적으로 돕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앞장서서 싸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앞장서 싸우는 이들의 등에 칼을 꽂는 만행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심지어 민주당 계열 인사들 중 상당수는 인권변호사 출신이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투사를 자처해 온 인물들 아닌가.
기독교계는 북한의 이 같은 도발을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북한의 복음화와 자유화를 위해 더욱 힘써야 한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교회의 제일 가는 사명이고, 또한 북한 동포들이야말로 우리가 복음 전파에 가장 힘써야 할 대상들인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단을 막아버리려는 일에 침묵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다.
특별히 기독교계는 북한에 성경을 보내는 일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자유도 인권도 모두 빼앗기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에게 우리 기독교인들은, 한국교회는 무엇을 주어야 하나. 혹은 식량, 혹은 의약품, 연료, 기술 등을 꼽을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가 주어야 할 것이 단지 그것뿐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그러했듯, 교회는 고통받는 자들의 영혼의 필요에 주목해야 한다. 당장 굶어 죽어가는 이들이 있다면 속히 손을 뻗어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더욱 궁극적인 목표를 놓쳐서는 안 된다.
물론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많은 제약과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턱대고 복음을 전하려 든다면 오히려 부작용으로 더 많은 동포들에게 피해만 남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교회는 저 암흑의 땅이 되어버린 북한 땅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전략을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