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시리즈 <돌풍> (1)
박욱주 교수님의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넷플릭스 화제작 ‘돌풍’을 다룹니다. 12부작인 이 시리즈에는 설경구(박동호), 김희애(정수진), 김미숙(최연숙), 김영민(강상운), 김홍파(장일준)를 중심으로 임세미(서정연), 전배수(이장석), 김종구(박창식), 장광(조상천), 박근형(강회장), 이해영(한민호), 강상원(이만길), 정해균(정필규), 오민애(유정미), 박경찬(서기태) 등의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정치 권력 본모습 고찰 느와르
한국판 <하우스 오브 카드>
진보 진영 위선·비리 잘 드러내
보수로 대체해도 위화감 없어
한국 정치 현실 훌륭하게 지적
주인공 박동호 총리, 흥미롭게
성경 공의·심판 개념 자주 인용
권력 속성에 대한 기독교적 고찰
◈정치권력의 본모습: 모략, 협잡, 비리와 기득권 사수를 위한 야합의 집약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돌풍>은 정치 복수극으로서 여러 진보 진영 정치인들을 연상시키는 주요인물이 등장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주인공 박동호 총리(설경구 분)는 절친한 동료들과 함께 대통령과 그 최측근, 그리고 재계서열 1위 재벌이 얽힌 정경유착 비리를 파헤친다. 그러다 오랜 친구인 서기태 의원(박경찬 분)이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박동호 자신도 긴급체포를 당할 위기에 놓인다.
친구의 죽음이 꾸며진 자살인 것을 확신한 박동호는 긴급체포 직전 부패한 대통령을 암살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정을 장악한다. 박동호는 권좌에 오래 앉아 있을 생각이 없다. 그는 단지 그의 친구를 죽음으로 이끌고 간, 그리고 대한민국 국정을 혼잡케 한 비리 정치인들과 재벌들을 한꺼번에 처단할 힘과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돌풍>이 공개된 후 정계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민주당 계열 진보 진영 정치인들을 연상시키는 인물 설정 때문에, 야권에서 이 작품에 대해 극렬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부패한 정치인들과 그 부패한 자들을 처단하는 주인공 모두 명백한 악인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전체가 현 민주당 계열 진보 진영 주요 정치인들을 마치 정치적 모략의 흑막이나 비리를 자행하는 모리배로 취급하는 듯하다.
당연하게도 보수우파 진영 인사들은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 정치인들의 위선과 비리 행각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아주 드물게 진보 정치 진영 정치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가 이루어지는 데 대해 반가움을 드러내는 중이다.
그렇지만 <돌풍>의 서사는 미디어 속 이미지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 정치 진영의 기싸움 차원에서 바라볼 사안은 아니다. 사실 이 작품 속 주요 인물을 진보 진영이 아닌 보수 진영 정치인들로 대체해도 서사에는 별 위화감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보수와 진보 정치 진영 모두 정치 모략이나 협잡, 비리와 기득권 사수를 위한 야합의 작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돌풍>의 서사는 보수, 진보 각 진영 인사들의 신경전 관점이 아니라, 정치 권력의 본모습에 대한 고찰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돌풍>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넷플릭스가 확실히 정치 느와르 장르에서 강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OTT 시장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준 최대 공신 역할을 한 작품은 <하우스 오브 카드>이다. 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시리즈 작품으로서 미국 정치판이 모략과 음모와 비윤리적 협잡으로 가득함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작품이다. <돌풍>에 등장하는 여러 설정과 장면들은 <하우스 오브 카드>의 오마주로 도배돼 있다.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걸림돌이 되는 이들을 비정하게 살해하는 주인공, 그리고 현 대통령을 모략으로 치워 버리고 대권을 잡는 권력 2인자의 치밀한 정치공학 같은 것은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설정과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많은 평론가들이 <돌풍>을 한국의 <하우스 오브 카드>라며 두 작품을 비교한 바 있다.
◈정치 권력의 한계: 빛으로 어두움을 이기지 못하는 탐심의 각축장
넷플릭스가 바라본 정치권력의 본모습은 극단적인 지배욕의 충돌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나 <돌풍>의 설정과 사건들이 조금 과장되고 자극적이긴 하지만, 부패한 권력을 견제하고 심판하려는 강직한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의문스러운 자살로 생을 마감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하는 일들은 우리 한국 사회 정치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일들이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없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더라도 세속 권력은 극단적 욕망의 집합체로서 매우 쉽게 타락하고 오용된다. 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 사도들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세속 권세자들에게 순복하라고 가르친다.
그렇다 해서 사도들이 세속 권력의 공정함을 신뢰했던 것은 아니다. 사도들은 죄로 타락한 세상에서의 정치 권력은 자원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집약되어 있는 탐욕의 덩어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탐욕은 우상숭배(골 3:5)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세속권력에 순복하라 가르쳤다. 신앙의 자유에 저해되지 않는 선에서는 임의로 권세자들에게 저항하지 말고 그들의 제도를 따르라고 지도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권세라는 것이 비록 인간의 탐심으로 오염되기는 했어도 그 원형은 하나님의 권세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세속 권력이 비록 부패하고 오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마저 없으면 평안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한 무법천지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 권세라는 개념 자체는 원래 하나님께서 선하고 신실하신 뜻을 따라 제정하신 것이다. 플라톤 철학 관점으로 설명하자면 이는 가장 보편적이고 완전한 원형, 즉 형상이다. 하지만 세속의 정치 현실에서는 정치 권세라는 원본 형상이 여러 양태로 분화되어 불완전하고 왜곡된 형태로 정치현상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돌풍>은 한국의 정치현실 속에서 정치 권세의 원형과 현상이 어떻게 서로 괴리되어 있는지를 훌륭한 연출과 서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 박동호가 정치 권력의 현실적인 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의 공의와 심판 개념을 자주 인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정치 드라마치고는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경우 애초 작품 전체 배경이 기독교 문화를 근간으로 삼는 미국의 일상과 정치 현실이므로 당연하게 기독교적 서사 요소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반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제작된 거의 모든 정치 드라마의 경우 종교적 서사 요소가 등장할 때는 유교, 불교, 혹은 무속 사상이나 소재를 끌어다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돌풍>은 드물게도 성경의 공의와 심판 개념을 가지고 한국 정치 현실의 암울함과 난맥상을 지적한다. 이런 연출은 서구권 정치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으로, 세속의 정치 권력이 그보다 상위 원리이자 질서인 하나님의 권세와 섭리에 맞춰 운용돼야 한다는 원칙을 상기시키는 장치로 활용된다.
<돌풍>은 이런 연출 방식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주인공 박동호의 다크 히어로(의로움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이나 살인과 같은 악행을 주저하지 않는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크게 비틀어서 인용한다.
박동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물음, 선한 자들의 기도가 상달되지 않는 데 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어두움을 빛이 아닌 더 지독한 어두움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신념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결단과 모략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이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런데 실상 이런 박동호의 자기 변론과 정당화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세속 정치 권력의 왜곡된 현실과 한계를 재차 확증하는 증거가 될 뿐이다. 성경에서 바라보는 세속 권력은 어떤 정치 체제와 이념을 따라 행사되든 간에 종국에는 늘 비리와 부패로 귀결된다. 이는 권력이라는 것이 항상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집단에만 연결되지 않고 특정 정치공동체 전체의 이해관계와 운명에 결부되기 때문이다.
집단화된 정치적 의지는 개개인의 윤리의식을 가볍게 짓밟는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로서 윤리적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이런 정치적 의지가 극단적 폭력과 포악함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한에서 정치인들은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돌풍>의 박동호는 이런 불완전한 현실 앞에서 좌절을 겪은 정치적 이상주의자로서, 부패하고 오염된 현실을 못 이겨 폭주하면서 결국에는 스스로마저 파괴하는 가련한 영혼일 뿐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