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국’ 프랑스의 현주소 드러낸 파리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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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파리 올림픽의 PC주의 (2)

PC주의 뿌리, 포스트구조주의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철학 부상
톨레랑스, 종전 후 자리잡았으나
우월·자문화 중심주의 극복 못해
올림픽 개막식, 현대철학 주도권
열망과 자부심, 뒤틀린 발현인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2024년 하계 올림픽 개막식. ⓒParis 2024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2024년 하계 올림픽 개막식. ⓒParis 2024

독일 철학의 전성기: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철학계에 지배적 영향을 준 독일 철학

이번에 파리에서 개최된 올림픽 개막식과 경기운영 과정에서 확인되는 PC주의의 철학적 뿌리는 가깝게는 포스트구조주의, 조금 멀게는 실존철학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20세기 후반 실존철학과 포스트구조주의 분야에서 학문적으로 가장 앞서나가는 철학 선도국의 지위를 누렸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근현대 서구 철학은 크게 영미 철학과 대륙 철학으로 나뉘고, 이 가운데 대륙 철학은 다시 독일 철학, 프랑스 철학, 그리고 러시아-동유럽 철학으로 분류된다.

사실 이런 분류는 철학사 연구자들이 다소 편의적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근거가 없다고만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처럼 각 나라 학자들이 편하고 자유롭게 이동하고 교류할 수 없었던 과거에는 각 지역별로 철학 연구에 사용되는 언어가 나눠져 있었고, 각 언어별로 철학계의 스승-제자 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물론 후설과 레비나스의 경우처럼 지역과 언어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제 관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로서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전까지 서구 철학의 주도권은 독일 학계가 확보하고 있었다. 칸트의 선험론, 피히테, 쉘링, 헤겔의 독일관념론, 포이어바흐, 마르크스의 유물론, 니체의 무신론, 코헨, 빈델반트, 리츨, 트뢸취 등의 신칸트주의, 후설, 셸러,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이르기까지 19세기부터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독일에서는 유럽과 영미권, 그리고 전 세계 철학계 전체에 지배적 영향을 미치는 철학 사조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그리고 같은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에서도 슐리크, 노이라트, 카르납, 괴델 등이 주도한 논리실증주의가 등장해 수학과 과학에 대한 혁신적 이해방식을 제시했다. 이 시기 영국과 미국, 프랑스, 러시아-동유럽 방면에도 걸출한 사상가가 여럿 존재했지만,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들만큼 사상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독일이 한 세기 넘게 붙들고 있던 서구 철학 주도권은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영미 철학과 프랑스 철학계로 넘어온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다수의 신칸트주의자들은 프로이센 제국의 개전과 침략을 지지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아예 니체의 위버멘쉬(der Übermensch) 즉 ‘초인’ 사상이 히틀러를 신격화하는 데 도용됐으며,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들이 명백한 친나치 행보를 보였다.

독일 철학이 내세웠던 인간 이성 능력에 대한 신뢰, 혹은 인간 실존 고유성 같은 개념들이 종국에는 수많은 이들을 전쟁에서 죽게 만들고 홀로코스트 같은 극악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기에,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철학은 이전에 비하면 거의 몰락에 가까운 쇠퇴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피해를 입었던 프랑스 편으로 철학계의 주도권이 넘어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파리를 점령한 히틀러의 나치 독일. ⓒfrommers.com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파리를 점령한 히틀러의 나치 독일. ⓒfrommers.com

프랑스 철학의 전성기: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각광받은 프랑스 철학과 윤리학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유럽에서는 프랑스 철학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사르트르, 보르아르, 그리고 카뮈의 실존철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메를로-퐁티와 레비나스의 현상학, 리쾨르의 해석학, 레비나스, 푸코, 데리다, 들뢰즈, 리오타르, 알튀세르 등의 포스트구조주의가 등장하면서 프랑스가 세계 철학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국가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특징은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이다. 저명한 프랑스 철학자들 가운데 레비나스와 리쾨르, 그리고 데리다는 실제로 전쟁 중에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차별을 받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유대인이었던 레비나스는 프랑스군 소속으로 종군했다가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갇혔고, 부모와 형제들이 홀로코스트 때문에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프랑스인이었던 리쾨르 역시 전쟁 중 포로로 잡혀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몇 년간 수감돼 있었고, 레비나스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이었던 데리다는 나치 괴뢰정권이던 비시 프랑스에 의해 알제리에서 다니던 학교를 쫓겨나는 경험을 했다.

그 외에도 대다수 프랑스 철학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파시즘의 억압과 폭정을 경험했다. 이에 종전 이후 프랑스 철학계는 파시즘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타자 윤리, 개개인 삶의 고유성과 자유에 대한 절대적인 존중, 차이와 다름에 대한 포용을 위한 사상을 정립하고 전파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 사상가 중 한 사람인 자크 데리다. ⓒ위키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 사상가 중 한 사람인 자크 데리다. ⓒ위키

이로써 20세기 중후반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윤리적으로 대단히 정교하고 고아한 사상 체계를 정립했고,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철학과 문화의 대세를 주도했다. 전 세계에서 인권과 자유 그리고 다양성의 포용이라는 이념을 추종하던 연구자들은 거의 다 프랑스의 현상학, 해석학, 그리고 포스트구조주의를 참고하면서 철학적 윤리학을 연구했다.

1970년대 미국에서 발흥한 PC주의 역시 그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서 같은 시기의 프랑스 철학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하고 있었다.

과거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철학사상이 그러하듯, 프랑스 현상학과 해석학, 그리고 포스트구조주의 또한 하나의 절대적 한계가 존재한다. 바로 이론과 현실의 괴리이다.

과거 근현대 독일 철학이 온전히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이상에 다다르지 못하고 기괴한 결말을 맞이했듯, 20세기 중후반 전 세계 철학계에 지배적인 영향을 준 프랑스 철학 역시 현실에서 다수의 대중이 실천하기에는 과도하게 정교하고 이상적이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적·사회적 삶을 규정하는 원리, 톨레랑스(관용)는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정립됐지만, 대혁명 이후 오래도록 이어진 프랑스 내부의 사회혼란 때문에 19세기 후반 ‘벨 에포크’ 시대에 와서야 그나마 문화예술 분야에서 어느 정도 실천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1·2차 세계대전의 혼란으로 거의 사장돼 있다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야 비로소 프랑스 철학의 새로운 동향에 힘입어 더욱 강화된 모습으로 사회 전반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즉 프랑스 사회에서 다양성에 대한 포용 정서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라 볼 수 있고, 그나마도 프랑스인들 마음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와 자문화 중심주의를 충분히 극복하지 못한 기형적 형태로 사회 전반에 퍼진 것이다.

▲드래그퀸 복장의 ‘최후의 만찬’ 앞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거의 나체로 공연하는 모습. ⓒ인터넷 캡쳐

▲드래그퀸 복장의 ‘최후의 만찬’ 앞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거의 나체로 공연하는 모습. ⓒ인터넷 캡쳐

원래 현대 프랑스 철학의 중심 기조는 타인에 대한 책임을 우선시하는 윤리적 사유와 실천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명분삼아 개인의 권리, 자기 권리를 우선시하는 식으로 통속화된 것이 현주소라 볼 수 있다.

프랑스 사회는 자유와 평등을 그들의 삶의 원리로 부르짖지만, 막상 자국으로 받아들인 이민자들과 외국인들을 적절하게 환대하지 못하고 숱한 인종적 갈등으로 몸살을 앓으며 내부적으로 인종과 민족 간 혐오 및 멸시의 문제를 적절하게 풀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로써 프랑스는 속칭 ‘유럽의 중국’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번 프랑스 올림픽의 PC주의는 바로 이런 프랑스 사회의 사상적 부조화가 잘 드러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국가올림픽스포츠위원회는 ‘다양성 포용’이라는 명분으로 PC주의를 앞세우지만, 실상 자국의 철학적 주도권을 뽐내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대단히 정교하고 예리한 사상적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이 유산을 참된 윤리 실천을 위해 발전시키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함과 자부심을 입증하는 증거로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 정부와 체육계가 폐막식에서 다시금 어떤 사상적·윤리적 부조리를 드러낼지, 우려와 안타까움이 앞선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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