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국 주도 세계 질서의 종언?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미국 대통령 선거 전에는 트럼프와 바이든-해리스 두 진영 사이에 남북전쟁 이후 볼 수 없었던 엄청난 내부 갈등이 표출됐는데, 거의 내전 수준이었다. 결국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일단 갈등은 수면 아래로 잠시 가라앉았다. 그러나 American Schism(미국이 둘로 쪼개짐) 현상은 심각하다.
“미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미국 국민은 왜 트럼프를 다시 선택했는가? 미국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서구 근대 사상과 기독교 가치의 역사적 역학관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기독교 국가로 기독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동시에, 프랑스 대혁명과 그 이후 프랑스 지성인들이 추구하는 인류 보편 가치를 추구해 왔다.
문제는 영국과 미국의 전통적 기독교 가치와 프랑스와 독일의 대륙 가치가 상호 병립이 어렵다는 점이다.
대륙의 법과 사상은 16-17세기 계몽주의 및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안티기독교적 그리스-로마 법과 철학사상을 기반으로 발달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은 로마 제국 이후 유럽에서 지속적으로 발달해온 법과 사상, 즉 대륙법과 사상적 가치를 받아들이면서도 기독교적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국가 체제가 발달하였다.
유럽 대륙은 지난 2세기 동안 기독교가 쇠퇴하더니 지금은 유럽에서 “나는 크리스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거의 사이코로 취급받는 상황이 됐다. 그리스-로마의 고대 가치에 기반한 서구 근대 사상이 기독교적 가치를 초토화시킨 것이다.
여기서 우파와 좌파 개념이 시작된다. 전통적 유럽의 기독교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우파, 이에 저항해 일어난 계몽주의 및 프랑스 혁명의 정신과 사상을 추종하는 근대적 가치를 좌파라고 한다. 즉 좌파 개념의 핵심은 인본주의적 안티기독교 근대사상이다.
미국은 청교도 정신의 영향으로 기독교적 가치와 비전 위에 세워진 나라이지만, 동시에 유럽 대륙의 사상, 즉 좌파적 계몽주의 및 근대주의 사상이 기반하는 나라로 시작됐는데, 이후 갈수록 인본주의적 근대주의 사상이 팽배해지고 심화되어 감으로써 기독교적 가치는 갈수록 현저히 주변 코너에 몰리게 됐다.
그러면 그리스-로마 사상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세계주의(globalism)라고 할 수 있다. 세계 평화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통합해야 한다는 세계통합주의 사상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서구 엘리트들과 지성인들은 부단히 세계주의 사상과 세계 통합을 추구해 왔다. 마침내 국제연맹 및 국제연합을 출범시켰고, 세계 통합의 선진 모델로 EU를 결성했으며, 통합 추진력을 강화하기 위해 G7, G20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에는 이러한 세계주의를 추구하는 세계통합주의자들(globalist)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팽배해졌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리스트들이 말로는 세계 평화를 위한다면서 국제 규범을 강화하고 세계 통합을 추구해 가지만, 실상은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사악한 글로벌 엘리트들이라는 의혹이 음모론으로 번져간 것이다. 증거는 그들이 계속 전쟁만 일으킨다는 것이다. 세계 전쟁들 배후에는 대부분 그들이 있다는 주장이다.
고대에 로마 제국이 스토아 철학사상을 기반으로 세계주의 사상과 비전을 내세워 지중해와 유럽을 정복하고 통치했으나, 사실은 세계 평화가 아니라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를 추구하는 제국주의적 야망이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주도로 유럽과 동맹해 NATO를 만들고 세계 곳곳에 군사 개입을 했지만, 실제로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야망을 위해 계속 전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신이 러시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 갈수록 팽배해졌는데, 문제는 미국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통령 후보가 나온 것이다.
트럼프는 바이든 대통령 이전 힐러리 민주당 후보와 다투며 선거 유세를 할 때, 글로벌리스트들을 강력히 비판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그들을 ‘사악한 글로벌리스트(evil globalist)’라 부르며 맹비난하면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쳤다. 미국만 잘 챙기면 되지, 왜 남의 나라들에 간섭하며 통제하려느냐는 것이다.
그는 사업가이다. 제국의 멸망 원인을 잘 안다. 제국이 세계를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많아지고 세계 관리비로 빼앗아오는 수입이 적어지면 붕괴된다. 미국은 큰 나라이고 자원도 많아 그 자체로 절대 강대국이니, 세계에 개입하지 말고 “미국에 도전하지 않는 한” 다른 나라들을 그냥 놔두고 미국을 우선하라는 것이다.
또 트럼프 진영은 글로벌리스트들이 미국의 전통 가치, 즉 기독교적 가치를 제거하려는 것에 강력히 반발한다. 왜 저들은 아동인권 과잉과 동성결혼 합법화 등 가정과 교회를 해체하는 안티기독교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그동안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기독교를 죽이려 하느냐고 강력 반발한다.
트럼프 진영은 유럽의 안티기독교 엘리트들과 동맹한 미국 민주당, 공화당 내 네오콘 등 글로벌리스트들이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접수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유럽을 장악했으니, 미국을 장악하면 이제 자신들에게 도전할 세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진영은 미국 내 글로벌리스트와 연대한 세력을 사악한 딥스테이트(Deep State)라고 부른다. 트럼프는 미국 내 저들 세력을 미국의 적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번 대선을 통하여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복귀한 것은 역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 세계 질서의 종언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스스로 ‘세계의 관리자’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이는 1991년 소련 해체와 유사한 논리다. 당시 15개국으로 결성된 소비에트 연방에서 러시아는 큰형님이며 절대 리더였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공화국 지도자 옐친은 “왜 우리 러시아가 가난한 저 국가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느냐?”면서 스스로 소비에트 연방을 탈퇴했고, 이게 소련 해체의 결정적 마침표가 되었다. 그러나 고르바쵸프 공산당 서기장은 형제 국가들을 배신할 수 없다며 끝까지 소련 체제 고수를 주장했다.
글로벌리스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와 유대교가 독선적이어서 세계 통합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은밀하게 가톨릭 및 WCC를 앞세워 종교통합운동을 전개해 왔다. “영구적 세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세계 주요 종교들을 통합해야 한다”는 논리다. 세계 갈등과 전쟁의 배후에는 대개 종교 갈등이 있다는 논리다. 따라서 세계 평화를 위해 종교 통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저들은 민족주의(nationalism)를 평화로운 인류 공동체 건설의 심각한 적으로 규정한다. 세계가 하나 되어야 하는데, 자기 민족 정체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글로벌리스트들에게는 원칙적으로 ‘오직 자민족 정체성만 강조하는 민족주의자들’과 ’오직 예수만을 강조하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언젠가 완전히 제거해야 할 인류의 적이다.
따라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과 유대교인들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글로벌리스트들의 프로젝트에 저항한다. 저명한 유대인 석학 요람 하조니(Yoram Hazony) 교수가 민족 국가(nation state)를 강조하고 글로벌리즘을 비판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민족이 사라지고 세계 시민으로 융합되는 세계 공동체 비전에 동의할 리 없다.
트럼프 진영은 사상적으로 글로벌리즘을 비판하며 국가민족주의(state nationalism)를 옹호한다. 사실 러시아 푸틴이나 사우디 살만 왕세자, 튀르키예 에르도안뿐 아니라 브라질, 이집트, 인도, 멕시코 등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이 모여서 글로벌리스트 체제에 대응하는 브릭스(Brics) 체제[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 머릿글자]를 출범시킨 것이다. Brics 체제는 갈수록 확대되고 강화되고 있다.
요한계시록 16장에서는 아마겟돈 전쟁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그 내용은 세계 국가들이 연대해 하나님께 대항하며 마지막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벨탑 사건에서 보듯 세계 통합 비전의 글로벌리즘은 근본적으로 사악한 반란이라는 사실을 알 수있다.
선거 막판 트럼프 진영 집회에서 “Jesus is King(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다)”이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해리스 진영 집회에서는 누군가 “Jesus is King”이라고 외치자, 해리스는 “당신 여기 잘못 왔다. 나가라!”고 군중 앞에서 소리쳤다. 이 극단적 대조를 보면 작금의 상황을 알 수있다.
트럼프는 승리의 연설에서 몇 번의 암살의 위기 가운데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셨다”고 고백 선언했다. 세계와 역사는 순진하지 않다. 극단적 이상주의자이면서 철저한 현실주의자 트럼프가 앞으로 어떻게 미국을 경영하고 세계에 영향을 줄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금의 현상은 극히 종말론적이라는 것이다.
최바울 선교사
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 총장
인터콥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