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이 주류로 편입된 기념비적 사건은 분명
파행적 성윤리, 외설적 성관계, 엽기적 폭력 묘사
피해자 일방적 시선의 편향·왜곡된 역사인식 논란
왜곡된 페미니즘, 여성의 건강한 정체성에 악영향
사랑·용서·보편적 인권 등으로 문학세계 넓혀가길
고품격 기독 문인 출현 위해 한국교회가 노력해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부에 진입한 쾌거”라면서도 “건전하고 보편적인 윤리의식과 동떨어진 파격적인 성윤리를 보여 준다. 경기도교육청이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도서로 지정한 것은 정당한 처사”라고 밝혔다.
샬롬나비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논평’ 서두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그동안 변방의 소수자 언어로 여겨져 왔던 한국어의 지역적 한계를 탈피함으로써,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의 주류로 편입시키는 기념비적인 사건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다른 한편 성경적·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매우 난감한 현실”이라며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파행적인 성윤리와 지나치게 외설적인 성관계 묘사, 시종일관 음울한 상처와 엽기적인 폭력으로 점철된 소설 플롯, 피해자의 일방적 시선으로 바라본 편향적이고 왜곡된 역사 인식 등으로 인해 많은 논란이 불거진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먼저 샬롬나비는 “한글은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그 자체로 매우 우수한 문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담은 한국 문학은 장구한 세월, 언어적 한계가 굴레처럼 인식돼 왔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어가 주변부에 있던 언어 장벽을 뚫고 세계 문학의 중심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국가적 경사”라고 했다.
하지만 ‘파격적 성윤리’에 대해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처제와 형부 간 불륜 및 근친상간, 이들의 성관계 동영상 촬영이 소설의 핵심 내용을 관통하는데, 성관계 묘사가 포르노그래피를 연상시키듯 긴 지면에 걸쳐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왜 그토록 여성을 성적 도구화하면서까지 자극적이고 적나라하게 성관계 묘사를 해야만 했는지 독자의 관음증 충족 이외에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며 “도덕적 금기(禁忌) 앞에서 일말의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오히려 성관계 촬영을 통해 욕망을 느끼고 악몽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면서 스스럼없이 성적 일탈을 탐하는 모습을 통해 불륜 및 근친상간을 은밀히 미화하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의구심마저 들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이런 맥락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도서로 지정한 것은 정당한 처사다. 청소년에게 유해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노벨상 수상 자체가 아닌 책 내용을 근거로 엄정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강의 작품을 페미니즘, 특히 에코 페미니즘(eco-feminism, 환경운동과 여성해방 운동의 사상을 통합한 생태 여성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며 “한강 작가가 상처받은 여성의 극단적인 자기 파멸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왜곡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점은 여성의 건강한 정체성 형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샬롬나비는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결정적 계기는 역사문제를 다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며 “문제는 1980년의 광주를 직접 겪지 않은 한강이 문학에 논쟁 중인 역사를 담으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문학의 중요한 기능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힌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지만, 그렇다 하여 문학은 역사의 기준으로 재단해선 안 되며, 역으로 역사 역시 문학의 기준으로 재단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 한강의 작품에도 해당된다”고 했다.
아울러 “작품의 세계를 대문호의 소재들, 사랑과 용서라는 인간성, 보편적인 인권 옹호, 민족의 화해, 전체주의 체제 고발 등으로 넓혀가기를 바란다”고 했으며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를 넘어설 고품격 기독교 문인의 출현을 위해 기독교계가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논평 전문.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부에 진입한 쾌거이다.
한강 작가의 문학 세계가 청소년과 모든 계층에 유익하고 즐겨 읽힐 수 있는 용서, 사랑, 윤리 보편주의와 인도주의로 성숙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2024년 10월 10일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마침내 대한민국은 그토록 숙원하던 노벨 문학상에 대한 염원을 달성하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그동안 변방의 소수자 언어로 여겨져 왔던 한국어의 지역적 한계를 탈피함으로써,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의 주류로 편입시키는 기념비적인 사건임이 분명하다.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 대다수가 서구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최초일 뿐 아니라 첫 아시아 여성의 수상은 많은 국민에게 남달리 영예로운 일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 작가들이 이미 지명도 높은 국제 문학상을 수상하여 한국 문학이 ‘K-문학’으로 불리는 상황 속에서 한국이 명실상부 대중문화는 물론 순수 예술 분야에서도 세계 중심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성경적·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매우 난감한 현실이기도 하다. 한강의 작품세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파행적인 성윤리와 지나치게 외설적인 성관계 묘사, 시종일관 음울한 상처와 엽기적인 폭력으로 점철된 소설 플롯, 피해자의 일방적 시선으로 바라본 편향적이고 왜곡된 역사 인식 등으로 인해 많은 논란이 불거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교육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을 담은 책들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라 하여 초중고 미성년 학생들에게 권장도서로 지정할 수 없는 딜레마를 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적·기독교 가치관 및 세계관을 제시하는 고품격 크리스천 문인 양성의 시급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샬롬나비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어떤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논평서를 발표하고자 한다.
1. 대한민국 국민의 열망을 이룩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어가 통용 가능한 국제어가 될 수 있다는 이정표적인 사건이다
2024년 10월 10일 한글날 다음 날 스웨덴 한림원에서 전해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낭보는 전 세계에서 약 8천만 명만이 사용하는 한국어가 국제적 인증을 받은 역사적 쾌거다. 음운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만든 한글은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그 자체로 매우 우수한 문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담은 한국 문학은 장구한 세월, 언어적 한계가 굴레처럼 인식돼왔다. 한국어 특유의 글맛이 번역으로는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인문학 위기가 당연시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어가 주변부에 있던 언어 장벽을 뚫고 세계 문학의 중심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국가적 경사이다. 이미 음악과 미술 등 순수 예술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K-팝 열풍에 이어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K-컬처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확산함으로써, 대한민국이 글로벌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계기가 되길 바란다.
2. 한강 작가의 작품세계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건전하고 보편적인 윤리의식과 동떨어진 파격적인 성윤리를 보여준다.
한강 작가를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2016년 맨부커상 수상)시킨 대표작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에 상당한 기틀을 놓은 소설 <채식주의자>는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는 처제와 형부 간 불륜 및 근친상간, 이들의 성관계 동영상 촬영이 소설의 핵심 내용을 관통하는데, 성관계 묘사가 포르노그래피를 연상시키듯 긴 지면에 걸쳐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 전개상 작가가 왜 주인공들을 굳이 불륜 및 근친상간으로 몰아갔는지, 왜 그토록 여성을 성적 도구화하면서까지 자극적이고 적나라하게 성관계 묘사를 해야만 했는지 독자의 관음증 충족 이외에 납득할만한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근친상간적 코드는 처형에 대한 제부의 은밀한 유혹의 시선에도 등장한다. 비록 한강이 불륜 및 근친상간을 직접적으로 옹호하거나 조장하는 발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도덕적 금기(禁忌) 앞에서 일말의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오히려 성관계 촬영을 통해 욕망을 느끼고 악몽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면서 스스럼없이 성적 일탈을 탐하는 모습을 통해 불륜 및 근친상간을 은밀히 미화하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의구심마저 들기도 한다. 이런 부도덕한 성적 일탈이 정당화된 도서는 성결한 삶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리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도 결코 권장할 수 없을 것이다.
3. 노벨 문학상 수상 도서와 청소년 권장도서는 교육적 내용을 근간으로 지혜롭게 분별해야 한다.
한강의 작품세계를 검증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작가의 모든 도서를 청소년 권장도서로 지정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판단이다. 한강의 작품세계는 청소년기에 반드시 키워주어야 할 건전하고 보편적인 윤리의식을 함양시키지 못하고 예술표현 자유의 명목으로 부도덕한 성윤리를 정당화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사료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도서로 지정한 것은 정당한 처사다. 청소년에게 유해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노벨상 수상 자체가 아닌 책 내용을 근거로 엄정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을 담은 비교육적이고 비윤리적인 책을 자라나는 청소년 권장도서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초중고 학생들이 이용하는 공공 도서관에 배치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이번 차제에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등급의 19금 제도를 운영하는 것처럼, 문학작품에도 독서 연령 등급이 지정되어야 할 것이다(청소년보호법 제9조 1항: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이 포함되어 있고, 이에 해당하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결정하여야 한다”)
4. 한강 작가가 상처받은 여성의 극단적인 자기 파멸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왜곡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점은 여성의 건강한 정체성 형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강의 작품을 페미니즘, 특히 에코 페미니즘(eco-feminism, 환경운동과 여성해방 운동의 사상을 통합한 생태 여성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에코 페미니즘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 것처럼 남성이 여성을 지배한다고 비판하는 시대사조다. <채식주의자>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집중하는데, 특히 주인공 영혜가 육식을 거부한 것을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력(성장과정에서 영혜를 때리고 채식을 고집하자 고기를 강제로 먹이고 개를 잔인하게 잡아먹음)에 대한 저항으로 그린다. 급기야 채식을 넘어 모든 음식을 거부(거식)하고 물구나무를 서면서 나무를 형제로 여기는 모습은 자연과의 합일로 해석되기도 한다. 문제는 한강이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서 억압당하는 여성을 그리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신경증 환자나 트라우마를 지닌 존재로 표현함으로써 왜곡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점이다. 급기야 한 작가는 영혜로 하여금 스스로의 몸에 폭력을 가하도록(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고 해방을 위해 형부와 근친상간하고 나무가 되겠다며 곡기를 끊다가 비극적 운명에 이르는) 유도한다.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택한 방식마저 결국은 자신을 향한 폭력(자학)으로 치닫고, 또다시 폭력의 굴레에 빠져들면서 폭력을 재생산하는 형국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몸을 성적 도구화하는데, 이렇게까지 여성을 대상화할 필요가 있었는지 한강 작가는 답변할 필요가 있다. 한강이 상처받은 여성의 치유에 대해 좀더 진정성있게 접근하고, 더 나아가 상처와 아픔을 딛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건강한 여성의 모습을 제시한다면 건전한 페미니즘 담론에 기여할 수도 있을 텐데 그 가능성이 일체 고려되지 않고 애초에 차단된 듯하여 매우 안타깝다.
5.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강 작가의 편향된 역사인식이 고정되고 확대 재생산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한강은 개인적 트라우마를 다룬 <채식주의자>에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룬 <소년이 온다>(5.18 광주민주화운동), <작별하지 않는다>(제주 4.3 사건)로 나아간다. 한강 수준으로 수려하게 글을 쓰는 일련의 여류작가들 중에서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결정적 계기는 역사문제를 다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장은 한강을 선정하면서 “역사의 상처를 마주보고 인간 삶의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낸 점”이라고 평가). 문제는 1980년의 광주를 직접 겪지 않은 한강이 문학에 논쟁 중인 역사를 담으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은 논란에 휩싸이기 쉬운데, 이는 역사와 문학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 기인하지만 구별을 유지하는 일도 수월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문학의 중요한 기능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힌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지만, 그렇다 하여 문학은 역사의 기준으로 재단해선 안 되며, 역으로 역사 역시 문학의 기준으로 재단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 한강의 작품에도 해당된다.
이런 맥락에서 한강이 두 소설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왜곡한 일부 표현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일례로 5.18때 고문으로 인해 “열 손톱이 다 뽑혔다”, “유방을 칼로 갈랐고 뱃속의 애기를 끄집어냈다”는 주장이 항간에 떠돌았지만, 이는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이어서 문제시된다. 광주 시민을 향해 화염 방사기와 집단 발포 또한 일부에서 주장이 나왔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검증 절차를 거친 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난 바 있다. 제주 4.3 역시 치열한 논쟁이 종식되지 않은 사건이다. 이외에도 의구심을 자아내는 한강의 일부 발언이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문학은 질문을 던지면 그만이지만, 책임윤리 영역인 역사는 답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이 국가 폭력에 대해 역사적 진실과 차이나는 내용을 담은 책이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 된 사실은 편향된 역사인식을 고정시키고 확대 재생산할 위험성이 있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제부터라도 한강 작가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무게를 깊이 성찰하여 단순 문학인이 아닌 역사적으로 책임있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6. 작품의 세계를 대문호의 소재들, 사랑과 용서라는 인간성, 보편적인 인권 옹호, 민족의 화해, 전체주의 체제 고발 등으로 넓혀가기를 바란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1832년 파리의 6월 혁명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레 미제라블>(장발장) 소설에서 빵 하나 훔친 죄로 5년이나 복역한 전과자인 장발장이 출소 후 묵게 된 성당에서 은식기를 훔쳐 도망가다가 헌병에게 잡히고 마는데, 담당 사제 미리엘 주교가 헌병에게 그 물건들은 자신이 준 것이라고 말한 후에 은촛대까지 선물로 주며 그를 용서했다. 이에 감화된 후 장발장은 회개하고 일생동안 선을 추구하며 살려고 한다. 그는 마들렌이란 새 이름으로 살게되고 공장을 운영해 성공한 사업가로 선행을 베풀어 마을의 시장이 된다. 그는 자신이 19년 형을 살고 가석방된 전과자 신분을 숨긴 채 신분 세탁을 해왔다는 것을 자백한다. 경찰서장 자베르가 혁명군의 봉기를 진압하려다 정체가 발각되어 사형에 처해질 순간에 장발장은 혁명군 일원으로 그를 죽이는 척 살려준다. 작가 위고는 작품에서 자신을 추적한 자베르를 용서한 장발장의 진정성과 희생적인 사랑의 승리를 주제화하고 있다. 인도주의의 궁극적 승리를 말하고 있다. <장발장>이야 말로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권장도서가 되고 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엡스키(1821-1881)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 성향의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849년 총살형을 받게되어 사형장에서 사형집행 직전에 황제 집행중지 전갈을 받아 8년간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면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삶의 체험 그리고 8년간 유형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었던 성경에서 박애의 정신을 체득한다. 그의 작품 <죄와 벌>에서 가난한 법학도 라스콜리니코프는 약자를 등쳐먹는 전당포 할머니 머리를 도끼로 내려쳐 죽이고, 살인을 목격한 할머니 이복 여동생도 죽인다. 그리고 귀중품을 훔치고 유유히 빠져 나간다. 훔친 물건을 땅 속에 묻고 살해한 도끼를 부러뜨려 물증을 없앤다. 노련한 예심판사 포르피리의 유도심문을 피한다. 예심판사가 그를 쫓는 상황에서 몸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매춘부 소냐를 알게된다. 그는 소냐에게 자신이 살인마임을 털어놓는다. 소냐의 설득 끝에 라스콜니코프는 자산의 죄를 자백한다. 이후 소냐와 함께 떠난 시베리아 유배형에서 그는 회개의 길을 걷는다. 작가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보편적 용서와 사랑의 인도주의가 이상적 체제라는 것을 그의 심리적 묘사가 탁월한 작품에서 당시 러시아와 오늘날 독자들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위고와 도스토옙스키의 두 작품은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떠나 보편적 인간애와 인도주의적 세계관을 제시함으로서 인종, 계층, 남녀,노소 빈부를 너머서서 모든 인류의 칭송을 받고 있다.
아직도 젊은 작가 한강은 작품의 소재를 북한과 중국 등으로 확장해서 탈북자, 북한 주민, 해외 입양 북한 아이들, 신장 위구르 주민들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등 작품의 세계를 넓게 해주기를 소망해본다.
7.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를 넘어설 고품격 기독교 문인의 출현을 위해 기독교계가 노력해야 한다.
한강 작가가 가진 문학적 능력은 한국인을 넘어 세계인들에게도 호소하는 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능력이 오늘날 세계적인 문제인 다양한 폭력성을 페미니즘의 시각과 한국의 다양한 역사 현장에서 나타난 국가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비기독교적인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문학 세계를 극복하고 기독교 세계관을 반영하면서도 한국을 넘어서서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을 쓸 수 있는 기독교 문인들이 출현할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한국 교계가 노력해야 하겠다. 앞으로 한강의 문학적 세계가 한국 사회에서 어느 한쪽에 편향된 시각에 묶이지 않고 대립된 관점을 모두 포용하는 용서, 사랑, 희생이라는 가치 세계를 향하여 문학적 상상력을 펴서 연세대 4년 다니면서 채플에서 들었던 설교를 기억해 내면서 보편적 인간애와 세계관, 깊은 신앙적 차원까지 표현해주기를 기대한다.
한국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역할을 하려면 한국 문학을 비롯한 문화세계에서 한국인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건전한 심성을 개발할 수 있는 고품격의 기독교 인재들을 육성해야 할 것이다.
2024년 11월 25일
샬롬을 꿈꾸는 니비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