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서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 같은 언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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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윤 박사.
▲신성윤 박사.

몇 년 전 가을, 강원도 봉평에 있는 이효석의 생가와 그의 문학관을 찾은 적이 있었다.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로 불리는 『메밀꽃 필 무렵』은 그가 1936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국어 시간에 한 번쯤 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90년 전쯤에 나온 이 소설을 그 원작 형태로 읽어 본 일이 있는가? 국어 교과서에서는 보지 못했던 생소한 어휘들과 표현들 때문에 많은 분들은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1979년, 당대 저명했던 다섯 분의 히브리어 교수들이 작은 책상에 둘러앉아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주제는 고대 히브리어(성서 히브리어)와 오늘의 히브리어(현대 히브리어)가 하나의 언어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대담을 정리한 당시 언론 기사는 아래와 같이 시작된다. “이스라엘 아이에게 히브리어 글이 적힌 수천년 된 토기 조각을 건네준다면, 그 아이는 그 토기 조각 위에 새겨진 비문을 읽어내는 데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이해할 것이다.”

텔아비브대학교 언어학과의 루빈쉬타인 교수는 ‘하나의 언어’(לשון אחת)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부터 던진다. 두 언어가 어느 정도 유사해야 같은 언어로 정의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언어적 구성 요소들과 문법에서 모두 같아야만 두 언어가 같은 언어가 된다고 한다면, 성서 속의 인물이 사용했던 히브리어와 자신의 히브리어는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성서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는 철자법과 음운론과 형태론과 구문론과 어휘의 영역에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단편적으로 들어보자.

1) 그리 큰 차이는 아니지만 현대 히브리어는 철자법에서 ו[봐브]나 י[요드]를 최대한 사용한다. 히브리어 모음 중에 [오]나 [우] 그리고 [이]나 [에]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대표적인 예가 되는 것은 피엘 동사의 기록 방식이다. 성서 히브리어는 말하다(speak)를 דִּבֵּר [딥베르]로, 현대 히브리어는 דִּיבֵּר [딥베르]로 쓴다. [이] 모음 표시를 위하여 요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2) 사독은 우리에게 익숙한 히브리어 인명이다. 구약성서에는 צָדוֹק으로 기록되어 있고, 오늘의 유대인들은 [짜독]이라고 읽는다. 하지만 성서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발음했을까? [짜독]이 아니라 [사독]으로 발음했다. 이것은 헬라어 칠십인역이나 라틴어 불가타 번역을 통하여 확인된다. 성서 히브리어에서는 [ㅅ]였던 צ의 음가가 현대 히브리어에 와서 [ㅉ]로 변한 것이다.

3) 히브리어 동사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동사들 중 하나가 ‘지키다’라는 의미의 שָמַר [샤마르] 동사일 것이다. ‘너희들이 지켰다’라는 의미의 שְׁמַרְתֶּם이나 שְׁמַרְתֶּן은 성서 히브리어에서 [쉬마르템] [쉬마르텐]으로 발음됐다. 그러나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과거 시제 다른 인칭의 활용 형태와 일치하게 [샤마르템] [샤마르텐]으로 편하게 발음한다.

4) 가장 큰 차이는 보이는 부분은 시제의 영역이다. 성서 히브리어는 히브리어 동사를 보통 완료와 미완료로 구분한다. 동사를 시간 중심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끝났는지 안 끝났는지에 따라 구분한다. 성서 히브리어에서 미완료 동사는 현재를 포함하는 미래적 의미가 된다. 하지만 현대 히브리어는 성서 히브리어의 완료를 과거로, 분사를 현재로, 미완료를 미래로 단순화시켜 사용한다.

5) 성서 히브리어 구문에서 대표적인 특성으로 여겨지는 것은 학자들이 봐브연속법, 봐브계속법, 봐브보존법, 봐브반대법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는 연속봐브 구문이다. 일어난 사건을 묘사할 때 먼저는 완료 동사를 사용하지만, 이어서 사용되는 동사들은 연속봐브라고 불리는 접속사를 사용하면서 그 형태를 단축된 미완료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반대로 아직 완료되지 않은 일을 서술할 때는 미완료 동사로 시작하고 이어서는 연속봐브 접속사를 사용하면서 동사 형태를 완료로 사용하는 구문법이다. 하지만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연속봐브 구문법이 사용되지 않는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루빈쉬타인 교수는 성서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가 서로 다른 두 개의 언어가 아님을 단순하게 증명한다. 현대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이스라엘 꼬마가 수천년 전에 쓰인 구약성서 본문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서 히브리어로 쓰여진 본문이다.

하지만 성서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는 전혀 다른 언어임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11개의 언어를 구성하는 저명한 언어학자로서 『이스라엘어는 아름다운 언어다』 (ישראלית שפה יפה)를 저술한 호주 애들래이드대학교 길아드 쭈케르만 교수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쭈게르만은 오늘 유대인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히브리어가 아니라 이스라엘어라고 주장한다. 책 제목에서 보듯이, 그는 히브리어 대신에 ‘이스라엘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자면, 이스라엘어는 동유럽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이디쉬어의 틀에 히브리어 어휘를 집어넣어 만들어진 언어다. 이스라엘어는 본래의 히브리어, 이디쉬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라디노어, 독일어, 아랍어, 불어 그리고 아람어 어휘들이 뒤섞여 나타난 혼종어라고 그는 정의한다. 2세기 이후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히브리어로 저술하고, 히브리어로 서신 왕래도 했지만 아무도 히브리어를 구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의 이스라엘어는 고대 히브리어에서 발전된 것이 아니라고 그는 단언한다.

같은 언어인가, 다른 언어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성서 히브리어에서 찾을 수 있다. 제2성전시대의 히브리어의 대가로 알려진 히브리대학교 아비 후르비츠 교수는 구약성서가 대략 천 년에 걸쳐서 기록된 것이라 본다. 그냥 성서 히브리어라고 표현하지만 들여다 보면 성서 히브리어는 단일한 언어가 아니다. 근 천 년의 세월 속에 형성된 성서 히브리어를 학자들은 보통 고대 성서 히브리어, 표준 성서 히브리어, 후기 성서 히브리어, 이 세 층으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살아 있는 언어는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변화하고 발전한다(Diachronic Development). 내적 변화와 외적 영향 가운데 발생하는 언어적 교잡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략 1700년 동안 히브리어가 죽어 있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이스라엘 아동이 구약성서 본문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불가능했을 것이다.

성서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는 히브리 언어의 역사적 발전의 한 선상에서 관찰되어야 한다. 현대 히브리어는 성서 히브리어에서 시작된 히브리어의 역사적 발전에서 하나의 층이나 단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서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는 다른 언어가 아니다. 오늘의 한국 고등학생들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90여 년 전 이효석의 언어가 같은 한국어라면, 이스라엘 초등학생들이 읽고 이해하는 수천년 전의 구약성서 히브리어가 어찌 다른 히브리어란 말인가.

신성윤 박사
히브리대 구약성서학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강의교수(히브리어)
원포이스라엘성서대학 교수(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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