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나비 “성탄절 기다리는 이는 많아도 대림절에는 무관심”

송경호 기자  7twins@naver.com   |  

2024 대림절 논평 발표

형식적으로 아닌 마음으로 그분의 오심 기다려야
십자가 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기다리길
자연재해, 침략 전쟁 속에 하나님 구원 기도하자

▲대림절은 크리스마스 전 4주간 그리스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픽사베이

▲대림절은 크리스마스 전 4주간 그리스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픽사베이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이 2024년 대림절을 맞아, 9일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회개와 신앙의 각성을 촉구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대림절이 단순한 형식적인 절기가 아니라, 신앙의 회복과 재림의 준비를 위한 중요한 시간임을 강조했다.

대림절(待臨節, The Advent)은 기독교만의 교회력에 의해 대림 시기, 대강절, 강림절로 불리는 특별한 절기다. 대림절의 어원은 라틴어 ‘오다 (Adventus)’에서 유래한 것으로, 크리스마스 전 4주간 그리스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다. 그럼에도 “성탄절을 기다리는 사람은 많아도 대림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고 샬롬나비는 지적했다.

이들은 “구약에서의 기다림이 메시야였다면 오늘 우리의 대림은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에 있다. 대림절은 성육신하신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과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까지를 함유하고 있다”며 “대림절의 기다림을 갖게 하신 깊은 뜻은 곧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시간이요 공간”이라고 했다.

이어 “대림절이 기독교 교회력의 시작을 의미하듯이 성탄절은 예수의 탄생으로 성육신 사역이 시작하는 것을 뜻하고 있다. 예수님의 초림을 기뻐하고 축하하고 기념하는 절기가 성탄절이고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기쁨으로 기다리는 신앙이 재림 신앙”이라고 했다.

또 “주님이 오시는 날에는 사회의 변동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날에 임할 여러 가지 징조를 잘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하나는 영적인 일을 잘 분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위장한 죄를 물리치는 일이다. 지구촌 자연 재해, 침략전쟁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도하고 기다리자”고 당부했다.

샬롬나비는 “기다림의 대림절이란 오늘의 우리에게 이중성을 갖는다. 하나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앞둔 성탄의 메시지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소망이 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믿음이 연약한 자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이다. 이 절망 역시 구원의 확신에서 오는 소망과 기쁨을 함유하는 이중성을 갖는다”라고 했다.

이어 “대림절은 다음에 오는 성탄절과 그분의 성육신 다음에 오는 죽음을 전제하는 성탄이다. 이 전제에는 그분의 십자가 앞에서 처절하게 회개해야 하는 자아 인식과 믿음이 없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구원이 헛되고 말 것임을 알려주는 의미도 함유되어 있다”며 “오직 다시 오실 하나님의 주권과 뜻, 의지와 목적에 대한 철저한 인정과 기다림만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

2024년 대림절 논평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우리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자.
자연 재해와 지구촌 전쟁의 소용 속에서 우리는 대림절에 오실 주님 초림을 기쁨으로 기다리며 정의와 사랑의 실천으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자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크리스천투데이 DB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크리스천투데이 DB

대림절(待臨節, The Advent)은 기독교만의 교회력에 의해 대림 시기, 대강절, 강림절로 불리는 특별한 절기이다. 대림절의 어원은 라틴어 ‘오다 (Adventus)’에서 유래한 것으로 크리스마스 전 4주간 그리스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유대인들의 달력이 유월절을 기점으로 시작되듯 기독교의 교회력은 대림절로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뜻도 있어서 그 의미를 더해 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 대림절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또한 대림절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 역시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사람은 많아도 대림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대림절에 대한 뚜렷한 기대감도 없고, 설레는 마음이나 거룩한 다짐도 없어 보인다. 이러한 태도가 과연 옳은 신앙인의 자세인가 반문하게 한다. 샬롬나비는 올해의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다음같은 대림절 진리를 나누고자 한다.

1. 대림절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는 것이 요청된다.

대림절에 그리스도의 진리를 찾는 사람이 드물다면 성탄절에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참 뜻을 찾는 사람 역시 보기가 힘들 것이다. 성탄절이 산타할아버지와 즐겁게 놀자판을 벌이자는 것이 아니듯이 대림절 또한 아무 의미 없이 보내도 된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만약 성탄절은 요란스럽게, 대림절은 무심하게 보내겠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는 분명 대림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새해 새 출발하는 새 마음의 첫걸음이 진리로부터 완전히 빗나가 있기 때문이다. 대림도 성탄도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는다면 맹목적인 대림절, 무의미한 성탄절로 혼탁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위험천만한 기다림이요 위기의 신앙이다. 우리가 대림절을 지키려면 올바른 목적과 방향이 설정되어야 의미가 있다. 대림절이 참뜻을 먼저 올곧게 정립하려는 우리의 깨달음과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대림절이 품고 있는 궁극적인 의도와 목적은 무엇인가? 무작정 기다린다는 기다림의 의미인가를 묵상해야 한다. 대림절의 참뜻이 무엇이며 우리의 신앙적 자세와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2. 형식적 대림절 지킴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분의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

성경은 절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서를 통해서는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호 2:11)라고 말씀하시고, 말라기서를 통해서는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말 2:3)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바는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오래전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레 23:2)고 말씀하셨고, 모세는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다(레 23:44). 그리고 구약성경 곳곳에서는 절기 지킴에 관한 말씀들이 줄줄이 나온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 절기에 대해 똥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면서 받지 않겠다는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신 것일까? 여기에는 절기에 대한 우리의 보이지 않는 왜곡이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의를 올바로 깨닫지 못한 채 맞이하는 절기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 십상이라는 점을 밝혀 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 독사의 자식들아! 질책하시고,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 7:21a)라고 질책하신 것도 절기를 왜곡하여 지적하시는 바와 같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심령이 먼저 깨어져 열려야 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이미 보혜사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셔서 함께하고 계신다. 그 진리를 성경 말씀과 기도를 통해 깨닫고 기뻐하며 자유 해야 할 대림절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진리의 참뜻을 먼저 깨달아 알고 나서야 대림절에 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진리의 참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나’ 또한 죄악으로 오염된 현실 속에 갇혀 있음을 먼저 자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3. 대림절의 기다림은 인간의 몸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림이다.

구약에서의 기다림이 메시야였다면 오늘 우리의 대림은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에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초림이 가져온 결과로서의 재림이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셨던 뜻과 의미를 깊이 깨닫고 기다리는 초림이다. 이 깨달음이 전제되지 않는 대림(待臨)이란 바로 설 수 없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대림절은 성육신 하신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과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까지를 함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축하와 애도가 함께 농축되어 있는 절기이다.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결과를 미리 알게 된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넘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충분히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애통함과 기쁨의 공유된 감정과 소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자성하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나는 기다림 곧 대림은 종말론적이며 심판을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준비이기도 하다. 평강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은 그분의 다시 오심을 통해서 심판이 일어날 것이기에 죄인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죄인에게는 최대로 심각한 위기의 시간이 곧 대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불신자 포함)에게 대림절의 기다림을 갖게 하신 깊은 뜻은 곧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시간이요 공간이다.

4. 오시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분) 이심을 알고 기다리자

그러므로 대림절을 맞이하는 우리가 준비해야 할 급선무가 있다면 첫째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그분의 속성과 능력에 대한 것을 비롯하여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를 읽어가며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전제되지 않는 기다림이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누구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대림절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나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 나름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지만 만약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엉터리 대림절이 되고 말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서는 회개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 통렬한 자기 부인과 함께 하나님 은혜에 대한 깊은 이해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앗시리아, 바벨론, 그리고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월 동안 식민 치하에서 고생한 자기 백성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한다. 이사야서는 1장에서부터 39장까지 줄곧 너희들이 잘못해서 나라를 잃었다고 하면서 그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는 다시 돌아오라고 선포한다. 대림절 또한 누구에게나 절실한 절기가 되는 것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기다림이 없는 삶이란 왜곡의 시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특히 대림 신앙이 형식화 되거나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소망이 아니라 절망이 되고 말 것이다. 어찌하면 더 훌륭한 믿음의 신앙인으로 도약하는 대림절이 될까를 고심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멀지 않아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것이고 그때 인류의 역사는 마지막 페이지를 쓰며 완성될 것이다. 대림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두렵고도 긴장하게 하는 절기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마지막 날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생각할 때 우리가 현재 존재하는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여백도 점차 사라져 가고 얼마 남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만큼 더없이 좋은 기다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우리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날 새벽녘이 동트기 직전의 시간을 깨닫는 찰나이다.

5.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리자.

대림절은 우리에게 독특한 관점을 제공한다. 대림절은 성탄절과 연결되는 하나의 절기라는 점이다. 대림절이 기독교 교회력의 시작을 의미하듯이 성탄절은 예수의 탄생으로 성육신 사역이 시작하는 것을 뜻하고 있다. 예수님의 초림을 기뻐하고 축하하고 기념하는 절기가 성탄절이고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기쁨으로 기다리는 신앙이 재림 신앙이다. 모든 것이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실로 진실로 나의 신앙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림은 기다림을 의미하며 기다림은 곧 도착을 의미한다. 대림은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기다리는 것이며 동시에 그분과의 ‘연합과 동행’을 뜻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하는 동시적이고 실제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대림절이 의미가 깊은 절기가 되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영원한 생명의 길로 향하는 소망을 갖고 있는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전세계적으로 혼란스러운 오늘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대림절만큼 절대적인 의미를 주는 절기가 없다.

6. 지구촌 자연 재해, 침략전쟁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도하고 기다리자.

오늘날 지구촌 구석구석이 이상 기후로 인해 지진과 해일, 산불과 물 폭탄 등 돌발적인 자연재해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간의 중동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사회의 불신과 불안, 두려움은 심각할 정도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상처를 입고 신음하는 고통의 현실에는 핵전쟁의 위험과 기아와 환경, 대기 오염 등이 가중치를 더해가고 있다. 종말의 시대적 상황을 가시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는 현상들이다. 온갖 어려운 일들이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예수님이 오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확신하며 이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때이다. 주님이 오시는 날에는 사회의 변동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때에 우리의 왕 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며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날에 임할 여러 가지 징조를 잘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는 영적인 일을 잘 분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위장한 죄를 물리치는 일이다. 불신자들에게는 절망과 두려움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소망과 은총임을 믿는 믿음을 똑바로 세우고 주님의 재림을 대망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광야와 같다. 메시야 통치의 시기가 도래했었고, 주의 강림은 축복으로 회복되고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강림하신 주님의 은총과 미래에 임할 은총을 기대하면서 진정한 감사와 기쁨의 마음으로 오늘을 준비하고 오직 구속받은 영혼의 기쁜 찬양만 있는 대림, 즐거움이 넘치고 은총만이 있게 되는 그날을 위해 말씀과 기도에 더욱 정진해야 한다.

7. 기다림의 이중성: 다가오는 성탄의 예수를 기다리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자.

이제 기다림의 절기가 시작되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측면에서 대림절과 성탄절은 공통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대림절에서 준비된 우리의 마음은 성탄절에도 똑같아야 한다. 그것은 일년내내 한결같은 기다림, 대림의 마음이어야 한다. 죄인된 입장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은혜요 축복이다. 어떤 유혹이나 불평불만에 사로잡힐 수 없는 것이다. 대림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 의미와 재림하실 뜻과 목적에 대해 기억할 수 있었다면 성탄절에도 그와 똑같아야 한다. 성탄절이라고 해서 징글벨이나 산타할아버지에 눈을 팔며 마냥 마시고 농담이나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약 세상 풍조에 동조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의 신앙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의미에 대해 다시 묵상하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기다림의 대림절이란 오늘의 우리에게 이중성을 갖는다. 하나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앞둔 성탄의 메시지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소망이 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믿음이 연약한 자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이다. 이 절망 역시 구원의 확신에서 오는 소망과 기쁨을 함유하는 이중성을 갖는다. 대림절은 다음에 오는 성탄절과 그분의 성육신 다음에 오는 죽음을 전제하는 성탄이다. 이 전제에는 그분의 십자가 앞에서 처절하게 회개해야 하는 자아 인식과 믿음이 없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구원이 헛되고 말 것임을 알려주는 의미도 함유되어 있다. 여기서 분명한 깨달음은 대림이란 그 자체가 기다림이고 그 기다림에는 우리가 더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오직 다시 오실 하나님의 주권과 뜻, 의지와 목적에 대한 철저한 인정과 기다림만 있어야만 한다.

2024년 12월 9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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