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웹툰 기반 시리즈 <정년이> (2)
<정년이>는 웹툰 원작의 tvN 12부작 드라마로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유행했던 여성들만의 창극인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천재 소리꾼’ 정년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윤정년(김태리)을 비롯해 허영서(신예은), 강소복(라미란), 문옥경(정은채), 서혜랑(김윤혜), 홍주란(우다비), 박초록(오마이걸 승희), 서복실(정라엘), 진연홍(조아영), 백도앵(이세영), 고대일(류승수), 서용례(문소리), 한기주(장혜진), 박종국(김태훈) 등이 주요 배역을 맡았습니다. -편집자 주
여성들 교회 내 활동기회 보장은
성경 가르침 부합, 권장해야 하나
좌경·세속화 여성우월주의 사상
교회 침투하는 건 경각심 가져야
비기독교 넘어 반기독교적 성향
비이성 집단주의 퇴락하고 있어
페미니즘 발흥 배경: 여성들의 성경 및 신앙 교육을 위한 기독교 교역자들의 노력
기독교 신앙은 서구 페미니즘의 발흥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이 물음을 놓고 생각해볼 때 먼저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기독교 신앙이 부분적으로는 서구 페미니즘의 직접적 기원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서구 페미니즘 전체가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서구 페미니즘의 가장 오래된 조상격 인물로 여겨지는 18세기 여류 계몽주의 문인이자 사상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는 남성중심적 위계질서를 고수하는 당대 신앙 체계의 비합리성을 질타했다. 그녀가 무신론자였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다고 그녀가 신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당대 영국 사회와 교회는 전통적 가정의 틀에 얽매이지 않았던 그녀의 연애와 출산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20세기 초 철학적 페미니즘을 처음 창안한 이들(대표적으로 보부아르) 역시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여성의 삶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으로서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이 서구 페미니즘 발흥에 유리한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다. 이는 여성의 교육에 대한 생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서구 기독교 문화권, 특히 부르주아지(bourgeoisie)가 주로 활약했던 대도시 지역에서는 여성 자녀들에 대한 교육이 중세 후기부터 제법 활발하게 이뤄졌다.
부르주아지에 속한 이들은 서로 급이 맞는 가문에 딸들을 시집보내기 위해, 그리고 주변인들과 교회로부터 딸들이 좋은 평판을 얻도록 최소한의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부르주아지 가문 여성들은 집안에서 자녀들에게 성경과 사교법, 예절을 가르쳐야 했으므로 일찍부터 언어와 문학, 그리고 화법과 예절 교육을 받았다.
이런 현상은 시대를 건너뛰어 19세기 말 조선 사회에서도 재현되었다. 구한말 조선에 파송된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여사는 한국 사회 전체에 일반 여성들을 위한 교육 기회가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여성들을 위한 성경 교육을 시작하기 위해 이화학당을 건립했다.
원래 스크랜튼 여사는 이 조선 최초 여성교육기관 이름을 전신학교(專信學校, Entire Trust School), 즉 ‘온전한 믿음’의 학교로 지으려 했으나, 조선 왕실이 학교 설립에 상당한 재정 지원을 해준 사실을 기려 조선 왕실의 상징인 배꽃, 즉 ‘이화(梨花)’로 정했다.
이 이화학당을 시작으로 한국에도 여러 여성교육기관들이 생겨났고, 여성들의 지식의 폭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근대화된 사회에서 여성들이 갖춰야 할 실력과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도 인지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교육자들에 의해 여성 교육이 전문화되고 난 뒤 여성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힘쓰는 여성 사회운동가, 교육자, 관료, 정치인, 문인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역사적 수순이었다.
드라마 <정년이>의 배경인 1950년대 중후반 서울에는 비록 지금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적어도 전통 조선 향촌사회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여성의 교육과 삶의 자주성에 대한 의식이 어느 정도 생각이 ‘깨인’ 여성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여성의 교육과 자주적 삶을 위해 인생을 바쳤던 개신교 선교사들의 노력이 그나마 여성들에게 사회적 활동의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페미니즘의 퇴락 배경: 여성인권신장운동,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의 야합
<정년이>의 서사와 기독교 신앙은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작품의 중심서사인 주인공 윤정년(김태리 분)의 상경기 및 성장기는 기독교 여성 교육이 바꾸어 놓은 건국 초기 대한민국의 시대적 분위기를 십분 반영하고 있다. 목포에서 수산물을 팔던 시골 소녀가 우연한 기회에 가출하듯 서울로 올라와, 여성들을 위해 마련된 사회적 성공 기회를 잡으려 발버둥친다는 서사는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하나는 성리학 전통에 매몰되어 있던 당시 한국 향촌에서 여성의 교육에 대한 의식이나 의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그나마 여성들이 대도시로 나오면 도시에 몰린 자본의 혜택, 교육과 취업 혜택을 누릴 실낱 같은 가능성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전쟁 전까지 서울과 평양,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로 서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여성들을 위한 기회였다. 서울의 이런 분위기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여성 교육기회 확대 노력, 그리고 그 노력에 힘입어 여러 ‘신여성’들이 등장했기에 조성될 수 있었다. 이런 사회적 기반이나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비로소 페미니즘이 등장할 수 있다.
남성들에게 집중된 자본을 조금이라도 끌어와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문화적 기반, 그리고 교육받은 여성들에게는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 상승의 길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갖춰져 있어야 페미니즘이 발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 페미니즘 지도자들은 기독교 신앙에 아주 우호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생각 정도는 갖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청교도 신앙 전통이 강했던 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1세대 페미니스트와 기독교 여성운동가들이 긴밀하게 협력해 여성 참정권과 금주법 통과라는 성과를 얻어냈다(금주법은 성과보다는 폐해가 많아 나중에 폐지되었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상당수가 기독교인 여성이었다. 이들은 “남종과 여종(욜 2:29, 행 2:18)”의 평등이라는 성경적 믿음에 입각해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과 페미니즘의 이런 우호적 관계는 68혁명 이후 전 세계 여성운동계를 휩쓴 2세대 페미니즘의 등장과 함께 완전하게 무너져 내렸다.
68혁명을 주도했던 학생들과 사회운동가 가운데 상당수는 사회주의자이거나 무정부주의자였다. 사회주의는 유물론을 신봉하고 무정부주의자들은 공적 권위를 부정하니, 기독교 신앙과는 상극의 생각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러니 이 시기 이후의 페미니즘은 기독교회에 적대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이 2세대 페미니즘보다 몇 배는 더 급진화된 3세대 페미니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3세대 페미니즘은 자유로운 낙태를 전면 찬성하고, 여성들의 삶에 남성이 접근하거나 관여하는 일 자체를 범죄시하는 기형화된 인간 이해를 표방하기에, 기독교회 입장에서는 아예 상종하기 어려운 사상이다. 그러니 현재 한국에서 이 급진화된 통속적 페미니즘에 물든 이들 가운데서는 신앙생활에 열심을 가진 기독교인들을 찾아볼 수 없다.
문제는 이렇게 여성들만의 배타적 특권이 보장된 세계를 꿈꾸는, 그러면서도 남성들의 노동력과 그로 인해 산출된 재화는 마음대로 이용해 먹기를 바라는, 이 모순된 사상의 유입에 대해 한국교회가 매우 취약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일단 교회 구성원의 상당 부분이 여성들이고, 현재 꽤 오래 지속된 좌편향 교육의 영향, 그리고 역시 좌편향된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여성들이 어려서부터 한국의 기형적인 통속적 페미니즘에 크든 작든 영향을 받아 왔다.
이번 동덕여대 불법시위 사태는 그런 문화적·교육적 배경 속에서 자라온 세대가 급진화된 기형적 페미니즘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과 만날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의 대표적 사례다. 남녀를 완전하게 분리해 여성만의 공간과 특권을 확보하려는 여대 학생들 다수의 근거 없는 피해의식과 집단이기주의는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청소년 여성들 사이에서 점차 지배적 정서로 굳어지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애초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섬기는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갖지도 않을뿐더러, 혹 교회에 들어오더라도 회개의 ‘책임’을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에 마음을 두지 못할 공산이 크다. 여성의 권리 보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던 이들이 회개와 헌신과 순종의 책임을 흔쾌히 지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근래 들어 페미니즘은 사회주의 사상의 한 지류 혹은 파생형 사상으로서, 사회주의 못지 않게 교회의 복음화 노력을 근본으로부터 무력화시키는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다.
드라마 <정년이>가 내세우는 오직 여성의 성공을 위한 삶의 공간, 오직 여성이 주도하는 문화조류 확립이라는 메시지는, 남성과 여성을 서로 소외시키는 ‘분리주의적’ 페미니즘의 바람을 순화해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교회 내 여성 목회자 직립이나 여성 교역자들의 활동기회 확장은 “남종과 여종”의 평등함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도 부합하기에, 거부하거나 꺼릴 이유가 없다. 성별에 상관없이 신실한 신앙을 가진 이, 분명한 소명을 받은 이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하는 것을 막을 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좌경화되고 세속화된 여성우월주의 사상이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교회에 침투하는 데 대해서는 교역자들과 신자들 모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 한국 많은 여성들 사이에 떠돌고 있는 통속적 페미니즘이 ‘비기독교적’ 성향의 단계를 넘어, ‘반기독교적’ 성향을 가진 비이성적 집단주의로 퇴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