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진격한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 방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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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평화를 원한다면?

본지에 비대면 성지순례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를 2년 이상 절찬리에 연재하고 있는 권주혁 장로님(국제정치학 박사)께서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에 대해 소개해 주십니다. -편집자 주

국토 20% 빼앗기고 수세 몰리자
러시아 서남부 쿠르스크주 진격
러 본토 점령? 2차대전 후 처음
평화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쿠르스크 평원.
▲쿠르스크 평원.

지난 몇 개월 동안 거의 매일 신문과 TV에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쿠르스크(Kursk)’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단어를 접하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2022년 2월 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공하자, 세계의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3-4일 안에 우크라이나군을 패주시키고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이 군사위성을 통해 얻은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부대 배치 상황과 무기, 병력 등 양측의 제반 조건을 AI와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여 판단한 것임에도, 이들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 군대의 강한 저항으로 인해 3~4일이면 끝날 것이라던 전쟁은 이미 3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이 선방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무기 등의 열세로 우크라이나군은 국토의 20%(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대부분)를 이미 러시아군에 빼앗기고 수세에 몰려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은 2024년 8월 초 자국 북부 중앙 지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서남부 쿠르스크주(州)를 침공해 서울 면적의 2배나 되는 지역을 신속하게 점령했다. 러시아로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본토가 외국군에게 점령당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에 빼앗긴 영토를 탈환하려 병력을 집중하고 극초음속(마하 5 이상)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오레시니크’까지 동원해, 우크라이나군에 빼앗긴 영토의 절반을 11월 말까지 탈환했다.

▲쿠르스크 야외 군사박물관의 소련(러시아)군 T34 전차와 필자. 쿠르스크 전투에서 소련군이 사용한 T34는 76mm포를 장착한 구형이며 사진의 T34는 85mm 포를 장착한 신형으로서 6.25 남침시 북한군이 사용한 모델임.
▲쿠르스크 야외 군사박물관의 소련(러시아)군 T34 전차와 필자. 쿠르스크 전투에서 소련군이 사용한 T34는 76mm포를 장착한 구형이며 사진의 T34는 85mm 포를 장착한 신형으로서 6.25 남침시 북한군이 사용한 모델임.

개전 이후 이미 6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군은 부족한 병력을 보완하려 2024년 6월 사실상 군사 동맹(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맺은 북한군을 10월 중순경 쿠르스크와 돈바스 지역에 투입했다.

북한군은 러시아군의 총알받이로 약 1만 명 이상을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했으나, 현재 우크라이나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인원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용 드론에 의해 사망하고 있으며, 추가 병력이 조만간 파견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은 이미 러시아에 포탄 5백만 발과 수백 기의 미사일에 이어 병력까지 지원하고 있으므로, 러시아는 반대급부로 북한에 필요한 첨단 군사기술과 식량, 기름 등을 제공하면서 한반도에 직접적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현재 러시아군 5만 명(북한군과 체첸군 포함)과 우크라이나군 3만 명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쿠르스크는 어떤 곳인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하는 쿠르스크주 면적은 남한의 1/3보다 약간 작은 약 3만㎢, 인구 120만 명이고 쿠르스크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쿠르스크시(市) 면적은 서울의 1/3, 인구는 45만 명이다.

쿠르스크는 조그만 야산조차 보이지 않는 평원이다. 1943년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약 40일 동안 쿠르스크 평원에서 소련(러시아)과 독일 양측 합계 병력 200만 명, 전차 6천 대(소련 3,200대, 독일 2,800대), 항공기 4천 대를 동원한 거대한 전투가 일어났다.

▲쿠르스크 전투의 소련군 사령관 주코프 장군 동상. 뒤에 아침 안개에 가려진 개선문이 희미하게 보인다.
▲쿠르스크 전투의 소련군 사령관 주코프 장군 동상. 뒤에 아침 안개에 가려진 개선문이 희미하게 보인다.

쿠르스크주 주도(州都)인 쿠르스크에서 서쪽으로 돌출한 지역을 차단하려고, 독일군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북부 지역에서 출발해 돌출부 북쪽과 남쪽에서 7월 5일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북한군의 6·25 기습남침 이후, 남한 전 지역에서 전투 중이던 북한군 전차가 약 200대(국군은 전차가 없었음), 피아 병력 합계는 약 20만 명 정도였던 것을 감안할 때, 경기도 면적의 1/3밖에 되지 않는 작은 지역에서 양측 전차 6천 대, 병력 2백만 명, 항공기 4천 대가 엉켜서 싸운 것을 비교하면 쿠르스크 전투가 얼마나 격렬한 전투였는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큰 부대가 서로 엉켜 맹렬하게 싸웠으므로 전투 초기에는 앙측 지휘관들조차 도대체 어느 쪽이 이기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으나, 전투가 계속되면서 소련군의 승세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독일군은 8월 말까지 7만 명이 전사하고 수많은 전차와 항공기를 잃고 패배하여 후퇴했다. 쿠르스크 전투 6개월 전인 1943년 2월 소련군이 독일군에게 승리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소련-독일 전쟁의 분기점이 됐다면, 쿠르스크 전투는 소련군의 승리를 견고하게 다져 준 전투였다. 이처럼 러시아에서 ’쿠르스크‘라는 이름은 승리와 영광의 상징이므로, 러시아의 초대형 핵잠수함에도 이 이름이 붙여졌다.

쿠르스크시 인근 평원 한가운데에 쿠르스크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 기념비와 야외 군사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개선문과 비슷한 모양의 대형 개선문이 세워져 있고, 주위에는 쿠르스크 전투에서 사용했던 수많은 전차, 카츄사 다연장 로켓포, 각종 야포 등의 무기가 전시돼 있다.

▲쿠르스크 기차역. 필자는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30km 떨어진 쿠르스크까지 기차를 타고갔다.
▲쿠르스크 기차역. 필자는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30km 떨어진 쿠르스크까지 기차를 타고갔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에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방문객은 거의 보이지 않고, 아침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 않아 100m 이상은 안개 때문에 시야가 명확하지 않았다. 필자는 1979년부터 여태까지 45년 동안 전 세계 145개국 격전지와 군사박물관을 이 잡듯 찾아다니고 있는 바, 사상 최대 기갑전투가 벌어진 쿠르스크가 방문 리스트 상단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쿠르스크 시내의 기차역은 멋있는 현대적 디자인 건물이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기차역이 마음에 든다. 일단 역사(驛舍) 안에 들어가면 벽 사방에 쿠르스크 전투에 관련된 대형 전투지도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그리고 역사 외부 건물 윗부분에 돌아가면서 군인들의 동상을 수없이 많이 세워 놓았다. 역사 자체가 마치 군사박물관 같은 냄새가 풍긴다.

러시아 어느 도시에 가보아도 시내 중심에는 ‘영원한 불꽃(Eternal Flame)’이 항상 타고 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전사자들을 기리는 것이다. 국적을 넘어, 필자는 러시아 국민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상무정신을 나라 곳곳에서 자연히 만나는 것이 부럽다.

6·25 한국전쟁 초기에 낙동강까지 밀려간 국군은 풍전등화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대구 인근 다부동에서 북한군 대부대를 섬멸했다. 다부동에서 가까운 대구역에 당시 국군 장병들이 싸우는 사진과 전투 상황을 보여주는 지도, 무기 등을 대합실에 전시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 즉각 “평화를 깨고 전쟁을 하려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곳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4세기 로마 전략가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언을 남겼다.

권주혁 장로

세계 145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사도 베드로의 발자취를 찾아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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