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칼럼] 믿어지시나요?
신비(神秘)란?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함, 또 그런 일이나 비밀(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정의한다. “과학적이며 자연현상을 뛰어넘는 기적 같은 일이나 사건을 의미한다”고 재해석해 본다. 무엇이 그렇게 신비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그렇다는 것이다. 왜?
1. 동정녀 탄생의 신비
예수 그리스도는 약 2천 년 전 출생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임에도 신비한 것은, 그의 출생이 보통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예수를 잉태하고 출산한 자는 다름 아닌 숫처녀(童貞女)였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로 숫처녀가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한 예가 없다. 이후에도 없을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예외 없이 부정모혈(父情母血), 즉 남자와 여자가 결혼제도로 결합해 아기가 생기고 출산되는 생물학적 원리에 따르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벗어나면 비생물학적이며, 초자연적 사건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동정녀(童貞女)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것은 초자연적 신비 사건이다. 그러면 그 초자연적 사건에 누가 개입하신 건가? 성령 하나님이다. 성경은 마리아가 잉태할 자는 예수 그리스도인데, 성령으로 잉태된다고 증언한다(마 1:18).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 말씀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게 믿음, 곧 신앙이다. 믿음을 가진 자의 생각에는 이런 신비스러운 출생의 비밀이 받아들여진다. 그게 믿음의 놀라운 효력이다.
하지만 불신앙의 사고에서는 그런 믿음의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학적이나 이성적 판단에 어긋나면 못 믿고 못 받아들인다. 이것은 죽은 자가 밥을 못 먹는 만큼이나 불가능한 이치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하는 믿음의 시각에서는 아멘이 된다. 그러니까 결국 믿는 자의 사고에서는 성탄의 신비스러운 사건이 가능해지지만, 불신자에게는 어리석어 보이기에 신화로 취급해 버린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믿음 안에서, 성탄의 신비는 은혜로운 사건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밭에 숨겨진 보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밭 속에 숨겨진 비밀 보화 이야기를 거짓으로 치부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밭에 숨겨진 보화를 발견한 자라면, 그 보화가 믿어지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보화를 소유하기 위한 노력(믿음 귀의)을 당연히 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대하는 독자들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성탄의 신비를 깨닫고 아멘 하고 기뻐할 수 있는 참된 믿음이 있기를 축원한다.
2. 성육신의 신비
그러면 보통 사람과 다르게 초자연적으로 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적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직면한다. 도대체 그런 신비한 출생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께서 본질적으로 어떤 존재이시기에, 그런 식으로 오시는가 말이다.
성경은 그가 곧 하나님과 동등으로 여겨지시는 성자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한다. 기독교 진리 중 삼위일체가 있는데, 이 말뜻은 본질적으로 한 분 하나님 안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3인격체로 존재하시는데, 그 위엄과 권세와 영광은 동등하시다는 교리이다.
이 역시 합리적 이성으로 받아들이기에 불가능하지만,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이단과 정통 교회를 구분하는 조건 진리로 여길 만큼 중요한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잉태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본질적으로 삼위일체 성자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 되신다는 증거는 그가 이 땅에서 메시아로서 공생애 기간 중 행하신 각종 가시와 이적을 베푸신 것이다. 그가 행하신 모든 기사와 이적들, 그 말씀 한마디에 귀신이 쫓겨 나가고, 노도풍랑이 잔잔해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등 온갖 기사와 이적들은 곧 그가 보통 인간과 근본이 다르신 본질적으로 하나님 되신다 하는 증거들이다. 그가 하나님 되심을 믿게 하려는 표적들인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되신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돼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에 대한 물음이다. 즉 뭐가 부족하고 아쉬워서 절대자 하나님이 인간의 피조물 몸을 입고 죄악 세상에 오셔야 했겠느냐는 물음이다. 여기에 대한 답이 없다면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 안에도 신비한 복음 진리 비밀이 숨겨져 있음이다. 무엇? 죄 사함을 위한 구속제물 역할, 즉 죄로부터 구원해내기 위한 메시아 사역을 위해 그렇게 오셔야만 했다. 이게 복음의 비밀 내용이 된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죄인들이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생을 통해 크고 작은 죄들, 그렇게 범한 죄목들을 책 한 권으로 쓸 만큼 짓고 사는 죄인임을 인정하는 게 솔직한 자기 발견이다.
그런데 그 모든 죄를 능가하는 죄 중의 죄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부하는 불신앙의 죄이다. 이것은 마치 자식이 자기를 낳은 부모를 안 봤다 해서 부정하는 격이다. 이런 죄를 해결 못하면, 세상 법정 말고 하나님 법정 앞에 설 때 그 죗값으로 심판받아 지옥 형벌을 면치 못한다.
그 지옥은 영원히 형벌 받는 곳으로, 죽고 싶으나 죽을 수도 없는 고통이 끝없이 계속되는 무서운 불못이라 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은 이 죗값을 심판해 영벌에 처하는 하는 의로운 판결을 행하신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는 또한 절대 사랑의 성품이 있는데, 그 사랑은 인간이 그 죄를 해결 못해 그 무서운 죗값으로 지옥 형벌에 처해지는 것을 가슴 아파하신다. 예를 들어 아비가 자식의 죄를 미워하지만, 자식이 저지른 죄 때문에 일생을 망치게 생겼을 때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구해주고 싶은 심정 같은 이치다.
세상에서는 그 어떤 인간도 그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자가 없기 때문에,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가 친히 이 세상에 오셔야 했다.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마음대로 죄를 사해 주실 수 없는 입장이다. 죄를 해결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스스로 세우신 영적 법칙이 있게 때문이다.
그 법은 죄를 해결하려면 의로운 핏값을 내놓아야 한다. 헌데 누가 의로운 핏값을 내줄 이가 있는가? 없다. 오직 예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그 죗값을 해결하기 위해 의로운 핏값을 지불하고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해 주시려 이 세상에 오시는 이유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정모혈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돼 죄 없는 인간 육체를 입고 오셔야만,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지 않고 죄 없으신 완전하신 사람의 육체로 피 흘려 죄를 사하는 구원을 이뤄낼 수 있음이다.
그렇게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 사함을 위해 피를 흘려주기 위한 구속 자격자로서, 마침내 갈보리 언덕 위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려 죽으신다. 그 흘리신 의로우신 피가 인간의 어떤 죄든, 크든 작든 무슨 죄든 간에 용서 못하고 사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 피가 죄인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해결하는 능력의 피다.
그가 하나님 자신일진대, 십자가 위에 달려 죽으심은 무능해서가 아니라, 죄가 있어서도 아니라, 바로 죄와 마귀 저주 아래에서 해방시키는 구속의 일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심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그렇게 속죄하시는 구속 제물 되어, 십자가 위에서 고통 당하시고 그 피를 흘리신다. 그때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한 손으로 죄인인 나를, 다른 한 손으로는 하나님 아버지 손을 잡고 “하나님 아버지, 내가 저 자의 죄를 대신해 이렇게 피 흘려 죽사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하며 그 심장의 피를 쏟으실 때, 그 피를 보는 순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고, 나는 하나님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원수 같은 죄의 막힌 담이 무너져 내리며,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화평이 이뤄진다.
그때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을 바라보시고 “그래,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선포하시며, 나 죄인은 그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 하고 감격하며 고백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그렇게 죽어 가시며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 외치시고 숨을 거두셨는데, 무슨 뜻인가? 죄를 해결하는 속죄의 일, 구원의 일을 100% 다 해내셨다는 승리의 고백과 선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나 대신 달려 내 모든 죗값을 대신 짊어지고 해결하는 속죄의 제물 되어 죽으시사, 내 죄를 해결하는 구원의 일을 100% 완벽하게 이루셨다는 선언이다.
그 말씀이 헛되지 않는 진실한 복음인 것을 증명하시기 위한 신비한 사건이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심이다. 부활은 예수를 믿는 자가 그 믿음으로써 예수 공로를 힘입어 은혜로써 거저 죄 사함과 의롭다 함과 하나님 자녀 신분과 영생 천국 상속에 참여할 수 있음에 대한 진리 보증이다.
그러므로 죄를 사함받고 의롭다 함 받는 길은 종교적 수고나 의로운 행위에 근거하지 않는다. 오직 그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며 믿을 때 그 은혜로 인하여 거져 받는 선물이다(엡 2:8-9). 이 같은 놀라운 복음의 비밀이 성육신 속에 담겨 있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한다는 진리의 신비이다.
이 믿음에 동참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영복을 받은 자들이다. 성육신의 신비가 믿어지고, 그 속에 담겨진 복음의 신비한 비밀을 깨닫고 믿어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진규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금현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