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칼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성경엔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명령이 있다. 기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분명한 뜻이라고 밝힌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곧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도의 대상에는 자기 자신, 가족, 교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1-4)”.
그리스도인이 중보해야 할 “모든 사람” 중에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도 들어 있다. 그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일까?
계엄과 탄핵 등으로 비상시국에 들어간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이 땅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기다리면서, 동시에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로서 무엇을 긴급한 우선성을 가지고 구해야 하는 것일까?
1.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기도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먼저” 구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도 ①‘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②‘나라가 임하시오며’ ③‘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의 기도문을 먼저 언급하신 것이다.
성경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요구한 궁극적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서다.
예수께서 밝히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 18:36)”. 그 나라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 나라가 임할 때까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그분은 자기 백성을 그리스도를 안으로 불러모으고 계신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주신다.
그러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별개로 돌아가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세상 임금들과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면서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세상에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있도록. 그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은 국가와 별개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이용해 이루신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와 동떨어진, 국가를 위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위한 기도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롬 13:1)”라고 단언한다. 이 말씀이 기록된 당시 악명 높은 네로 황제, 그리고 종말에 세워질 적그리스도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권세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때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정부, 권력, 제도가 세워진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모든 권세를 완벽하게 통치하셔서 반드시 그분의 나라와 의를 이루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뿐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신실하게 찾으시고 붙드시며,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 나라를 주시길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사실을 굳게 믿고 오직 복음을 말과 행위로 전파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이 세상과 세상이 말하는 의를 위하여 먼저 기도한다. 특정 정당의 붕괴나 특정 정치인의 몰락을 위하여. 어떤 제도의 불의가 드러나거나 정치 이념의 의로움이 나타나기를 위하여.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가 된 자기 백성에게 적국의 형통을 위해 기도하라고 요구하셨고, 로마 속국이 된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백성의 속량을 위하여 간구하며 기다릴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 자기 백성을 찾아오셔서 나라를 되찾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도록 자기 몸을 바쳐 속량하셨다. 하나님의 먼저 된 관심사는 항상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안개 같은 인생의 형통이 아니라 영원한 인생의 구원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통치하시는 이 타락한 세상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부패한 세상 나라에 실망한 자들이 거룩하고 완벽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도록. 백성의 평안과 유익에 관심이 없는 정치인들에게 헛된 소망을 걸지 않고 돌이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되기를.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국가—모든 권세와 제도가 하나님의 사역자 역할을 하여 그분이 기뻐하시는 선을 장려하고 그분이 미워하시는 악을 처벌하는 나라—가 세워져 시민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통치 아래 기쁨으로 들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롬 13:1-7).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오늘 피었다 시들어 불에 던져질 인생과 정하신 때가 되면 불로 정화될 이 땅의 나라가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께 속한 그분의 나라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로 주시는 의가 택하신 백성에게 임하기를 ‘먼저’ 구하는 우선순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진리를 아는 데 이르도록 자라나는 데 많은 방해물과 얽매이기 쉬운 죄에 부딪쳐, 경건하고 단정한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먼저 기도하라.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고 있지만 하나님을 부정하고 세상 풍조와 악한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사랑하는 자녀의 비참한 운명을 위해 먼저 간절히 기도하라.
영원한 지옥으로 무섭게 떨어지고 있는 자기 인생의 결말을 모르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 것만 생각하는 모든 눈먼 사람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라. 지금의 정치적 혼란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기 영혼의 필요에 더욱 무관심해진 이들을 위하여, 기독교의 가치와 가르침에서 더욱 멀어진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먼저 간구하라. 언제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기도하라.
2. 국가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선을 베풀고 악을 보응하기를 구하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 13:4)”.
어떤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지금 기도에만 힘쓰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비판한다. 광장에 나가는 등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정치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정치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우선순위에 충실하여, 하나님께서 지금 일어난 모든 정치적 혼란과 무질서 가운데 선을 이루시고 영혼을 구원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독일 나치 정당이 국가를 지배하고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지도자가 대량 학살을 주도할 때, 많은 독일 교회가 대항하지 않은 사례를 지금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 적용하려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논리다.
대다수 그리스도인이 그런 극단적 정부가 들어선다면 적극 대항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만일 교회가 지금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은 어디란 말인가?
많은 그리스도인이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완전히 반대되는 정치 활동을 권장한다. 정치적 진보주의를 반대하는 이들은 대통령과 그의 지지 세력을 적극 보호하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반대로 정치적 보수주의를 반대하는 이들은 탄핵이라는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는 데 적극 힘을 더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양측에서 모두 ‘이것이 대부분의 국민 의견’이라는 것과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언론은 편향돼 있고, 여론은 정치적으로 조작 및 이용된다. 정치인은 권력을 쥐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 모두에게 공평과 정의를 실현해 줄 것이라고 믿고 만든 법과 제도는 수시로 악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무엇이 불의한 일이고 의로운 일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이 적극성을 가지고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가면 그곳에서는 우리가 확신할 수 없는, 그래서 완전히 동의한다고 말하기엔 찜찜한 정의와 공의를 주장하며 특정 정치인을 끌어내리고 특정 정당을 무너뜨리는 일에 함께하자고 선동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정치적 보수파를 지지한다. 그것의 의미와 실제 적용 방식은 웨인 그루뎀이 같은 관점에서 정리한 <성경과 정치(상)>에 자세히 설명된 내용에 거의 대부분 동의한다(언약, 2024). 성경의 원칙이 보수파가(현재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아니라 그들의 이상적인 이념이) 지향하는 가치와 많은 부분 일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지한다 해서, 보수파가 하는 모든 일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정치 이념이 많은 부분 반성경적 정당이라도 그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부합한다면, 그 일만큼은 반대하지 않고 지지하는 것이 맞다. 중요한 것은 보수와 진보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일꾼의 역할에 부합된 방식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베풀고 악을 징벌할 때, 이를 지지하고 복종해야 한다(롬 13:1).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당파싸움에 휘말리는지 지켜보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고 성경은 분명히 요구하지만, 최근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자기 의견을 적나라하게 SNS에 표출하는 그리스도인(심지어 목사) 중에서는 욕설부터 시작하여 보는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기는커녕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내 쪽을 지지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고, 다른 편을 지지하는 것은 사탄의 편에 서는 것처럼 비방한다. 야당과 여당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성경을 기준으로 무엇을 잘하고 잘못했는지 분별하기보다는 상대방은 잘한 것이 전혀 없고, 우리 쪽은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어서 혹은 대의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좋은 일을 한 것으로 포장한다.
사실상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적인 정치인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한다. 더 비극적인 일은 그 정치 활동에 하나님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낙태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것을 반대하지 못하게 막는 악법을 막으려 하는 것이다. 각각의 법을 제안한 정치인 개인을 미워하거나 정당 자체를 무너뜨리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당파 싸움을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정당이든 하나님의 일꾼 역할을 제대로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합법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우리가 국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기호에 맞춰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기대하며 요청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통하여 하신다고 해도 믿고 바라고 감사하며 구한다.
우리는 개인이 옳다고 여기는 정의를 하나님께서 마땅히 실현해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개인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결과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하나님께 따지지 않는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옳다고 생각하시는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고, 그때 겸손히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기쁨으로 따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 밖으로 한발 물러서서 모든 것을 밝히 알고 계신 하나님, 사람의 마음 중심까지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 참된 정의와 공의를 실현해 달라고 간절히 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침묵’이 항상 ‘동조’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는 건 아니다.
특별히 침묵을 비방하는 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을 무작정 불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인의 침묵은 기도를 위한 침묵이다. 하나님의 공의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침묵하신 그리스도처럼,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공의에 모든 것을 맡기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나타난 그분의 의가 모든 택하신 이들에게 주어지게 해 달라고 침묵하며 기도할 수 있다.
분노와 좌절과 염려와 공포와 야욕과 거짓과 속임수와 혼란이 가득한 지금의 시기를 그렇게 적극적으로 기도하며 이겨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 이 나라에 간절히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단합된 정치적 발언이나 활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단합된 기도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성경은 약속한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