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새 정부 수반을 만나 회담을 가졌으나 안전 보장에 대한 확답을 얻지 못하는 등, 급변하는 정치 환경 속에서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4일(이하 현지시각)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와 다른 성직자를 포함한 교회 대표자들이 지난주 수도의 인민궁에서 아부 모하메드 알 졸라니(Abu Mohammed Al Jolani)로도 알려진 아흐마드 알-샤라(Ahmad al-Sharaa)를 만났다며 가톨릭 매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알 졸라니는 2024년 12월 8일부터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다.
이날 회담에는 성지 관리 대리인 이브라힘 팔타스(Ibrahim Faltas) 신부와 SJ 라미 엘리아스(SJ Rami Elias) 신부가 함께한 가운데, 시리아 헌법, 민주주의 및 평등에 관한 문제들을 논의했다.
엘리아스 신부는 회의 결과와 관련해 “모호하다. 우리는 그의 진정한 의도를 알아낼 수 없다.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우리는 여전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알-샤라는 자신이 다마스쿠스와 다라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살았던 시절을 언급하며, 대표단에게 그들의 이익이 무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켰다.
그러나 엘리아스는 신부는 기자들에게 성직자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을 전달하며 “우리의 상황이 이전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미래 헌법에 대한 자체 권장안을 초안하도록 격려했고, 1950년 헌법의 가능한 개정안이 다양한 단체 사이에서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회의에 수도에 거주하는 안티오키아 교구의 세 명의 총대주교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대신 대표자들을 보냈으며, 정교회, 가톨릭, 아르메니아정교회, 성공회, 시리아정교회 성직자를 포함한 다른 기독교 교파도 참석했다.
이 모임은 이슬람주의 단체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이하 HTS)이 주도하는 세력의 정권 인수 이후,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소수민족 내에 두려움이 고조되는 와중에 이루어졌다.
시리아 사회는 약 14년 동안 계속된 내전으로 종교적·민족적·정치적 노선에 따른 분열이 심화됐다. 알-샤라 행정부는 파괴 및 종파적 공격으로 시위가 촉발된 지역을 안정시켜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외국 정부들은 새롭게 들어선 시리아 행정부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악시오스(Axios)에 따르면, 다니엘 루빈스타인(Daniel Rubinstein) 미국 특사는 최근 수도를 방문해 임시 외무장관인 아사드 하산 알-시바니(Asaad Hassan al-Shibani)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폭력 사태에 대한 우려를 논의했다.
악시오스는 “특사가 소수자 공동체, 특히 알라위트족을 학대하고 살인하는 모습이 담긴 여러 영상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며 “알-시바니 장관은 이는 다른 무장 세력에 의한 것이며, 새로운 정부는 그러한 행위를 반대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과도정부는 또한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시리아민주군(SDF)의 쿠르드 대표단과 회동했다. 미 정부의 지원을 받는 SDF는 역사적으로 이슬람주의 성향의 파벌과 갈등을 빚어 왔으며, 이로 인해 지상에서의 동맹이 복잡해졌다.
알-샤라는 당시 졸라니로 알려졌으나, 2016년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끊은 후 HTS를 설립했다. 미국의 PBS 프론트라인에 따르면, 졸라니가 이전에 자브하트 알-누스라로 알려졌던 자신의 그룹을 국제적 지하드주의 목표에서 거리를 두면서, 이 리브랜딩은 전략적 전환을 가져왔다.
무장 세력으로서의 그의 궤적은 이라크에서 시작됐는데, 그는 이라크 이슬람국가(ISI)에서 계급이 올라간 후 ISI의 후계자인 IS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에서 자바트 알-누스라(JAN)를 설립했다.
JAN은 초창기에 알카에다에 충성을 맹세했으며, 알카에다의 세계적 지하드 이념에 동조했다. 그러나 미들이스트아이는 “졸라니가 알카에다와 관계를 끊기로 했다. 이 결정은 더 광범위하게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한 시도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이러한 전환은 2017년 HTS의 형성으로 정점을 이뤘고, 민족주의적이고 초보수적인 이슬람주의 프레임워크에 따라 다양한 시리아 반대 세력을 통합했다.